혼자 있고 싶다가도 같이 있고 싶다.

-한 가지 약속, 여러 갈래의 마음

by 코알라

"그럼 우리 내일도 만날까? 방금 말한 브런치 카페 가보자 어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젊은이들 사이에 껴 힙한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있었다. 요즘 주택을 개조한 이쁜 카페들이 골목골목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브런치로 유명한 어느 카페에 대해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다.

"내일?"

'오늘 만났는데, 내일도 또 보자고?'라는 의미를 함축한 듯한 나의 당황하는 말투와 방황하는 동공을 친구도 느껴 버린 것인지 조금 다운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안되면, 다른 날 가도 돼. 그냥 말 나온 김에 물어본 거야."


'휴,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물러나고 나서야 친구에게 미안해졌다.

혹시나 오늘 우리의 만남도 내가 억지로 나온 것으로 괜히 친구가 오해할까 봐 목소리톤을 한 단계 높여 관심 있는 척 과도하게 의미 없는 질문들을 해댔다.

난 꼭 이렇게 후회할 짓을 하고 나서는 아무도 모르게 수습하려고 혼자 전전긍긍이다.


약속은 하나인데, 이 하나의 약속이 여러 갈래의 감정을 만든다.

순서는 이러하다.

친구와 점심 약속을 잡는다. 약속 일자를 정할 때는 지금 당장이라도 보고 싶은 것처럼 적극적이다.

약속한 날이 다가온다. 감기라도 걸렸으면 좋겠다라던지 약속한 날에 무슨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 싶다.

약속한 날이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설렘보다는 지금이라도 약속이 미루어졌음 한다.

친구를 만난다. 순간 살짝 어색하지만 이내 언제 어색했냐는 듯 주도적으로 수다를 떤다.

아쉬워하며 친구와 헤어진다. 다음을 기약하지만, 그다음이 조금은 먼 다음이기를 바란다.

남아있는 여운을 용기삼아 집으로 돌아와 친구에게 잘 들어갔냐는 내용의 문자를 먼저 보낸다.

역시, 오늘 친구를 만나고 오길 잘했다며 기분 좋게 하루를 끝낸다.


나도 내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친구를 만나고 올뿐인데, 이 약속 하나에 내 마음은 수 가지 다른 감정들이 뒤섞이고 요동친다.

그리고 이런 마음의 요동은 나이가 들수록 나아지거나 무덤덤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해져,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점점 피곤해진다. 가끔은 가족과의 약속도 그러하다.




아직도 친척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내 어린 시절이 있다.

내가 5~7살 때 엄마 손잡고 자주 동네 시장을 갔었다는데, 들어보면 영특하기 그지없다.

우선 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내가 왔다.'를 알리듯 아주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라고 허공에 먼저 인사를 했더란다. 내 인사 소리에 시장 상인분들이 하나둘씩 가게 밖으로 나와 나를 쳐다보면, 나는 다시 한번 상인 개개인에게 인사를 했었다고 한다, 눈과 눈을 마주치며 아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런 내가 마냥 귀여웠던 시장 상인 분들은 한 두 개씩 먹을 것을 꺼내어 내 손에 쥐어주며, 누구 닮아 이렇게 똑소리 나냐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뻐했고 그렇게 얻은 진미채며 땅콩이며 귤이며 꼬치 떡볶이는 아무도 주지 않고 내가 다 먹어치웠더란다.

내가 시장을 갈 때마다 상인 분들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 양손에 먹을 것을 가득 쥐어 주셨고, 부모님의 아파트 청약 당첨으로 이사 가게 되었을 땐 상인 이모들이 울기까지 했었단다.


정작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용감무쌍한 어린 시절은 친척들이 모이기만 하면 안주삼아 꺼내었고, 그랬던 걔가 지금은 왜 저렇게 내성적으로 변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말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신이 나서 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현재의 나를 애석해하며 이야기가 끝나는 것을 보니, 친척들의 눈에는 지금의 나는 '새드엔딩'인 듯하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변한 것인지 신기할 때가 있다.

개구리 왕자처럼 나쁜 마녀의 주술에 걸려버려서 어떤 계기가 있어야 이 마법에서 풀려날 수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때도 있다.

아니면, 하늘이 점한 큰 인물임은 확실한데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자 시험을 치르고 있는 과정 중인 것은 아닌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혼잣말로 물어보기도 한다.

'아직 멀었나요?'




혼자 있고 싶다가도 같이 있고 싶은,

나가고 싶다가도 집에 있고 싶은,

혼밥이 편하다가도 왁자지껄한 저녁상이 그리운,

정말 알다가도 모를 복잡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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