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by 코알라

균형 없이 막 쪄가는 나의 몸뚱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운동을 '배워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불어나는 살뿐만 아니라 허리가 아파 잠을 설치며 깨는 횟수가 늘고, 1시간 이상 앉아있는 게 점점 버거워지는 일상에 이대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필라테스 학원을 검색하자 5개 이상의 학원이 나왔고, 블로그와 인스타의 리뷰를 읽으면 읽을수록 정보들이 뒤엉켜 점점 더 선택 장애의 늪에 빠졌다.

결국 리뷰만 읽고 읽다 시작도 전에 지쳐버릴 것 같아 '보건대 재활학과 교수'라는 타이틀에 이끌려 한 학원에 상담 예약을 신청했다. 최대 4:1의 수업도 있지만, 척추측만증과 거북목인 내가 1:1 수업으로 자세를 바로 잡은 뒤 다대일의 수업을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원장 선생님의 말에 캥거루족인 나는 큰맘 먹고 40회를 끊었다.


오랜만에 찾아 입은 딱 붙는 필라테스복을 입은 나의 전신을 거울로 보고 있자니 아주 가관이라 얼른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전신에 나잇살이 가득했지만, 가장 가득한 곳은 역시나 였다.

비록 주 1 회긴 했지만 기구 필라테스를 3년 정도 배웠던 경험이 있어서 어느 정도의 자세들을 해내는 데에 문제가 없었지만 역시 허리와 배 쪽엔 근력이 부족해 자세 잡는 것이 힘들었다. 꽤 잘 따라오고 있다며 조금만 노력하면 자세도 금방 좋아질 것 같다며 선생님께선 흡족해하며 이대로 결석 없이 꾸준히 잘 해나 가보자고 하셨다.


어디서 무얼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확실히 '꾸준함'이다.


원해서 제 발로 걸어가 등록한 운동인데 이상하게 운동하러 가는 발걸음은 소가 도살장 끌려가듯 느리고 묵직했고,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구름 위를 걷듯 사뿐사뿐 가벼웠다.

어쩔 땐 운동을 마치고 학원을 나와 바깥공기를 마시는 순간 '해방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운동 시작한 지 한 달 채 되지 않은 무렵부터 혹시나 살이 빠지진 않았을까 거울을 보며 배를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여전히 내가 알고 있던 그 배다.


"OO 씨는 알려주면 알려주는 대로 잘 따라오네요."

"자세를 한 번 알려주면 시키는 대로 곧 잘 따라오시네요."

처음엔 버벅대지만 가르쳐주면 가르쳐주는 대로 바로 자세가 올바르게 바뀌는 것이 가르칠 맛 난다며 자주 칭찬을 해주시는데, 그 말을 들으면 더 잘하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게 된다.

역시 나는 칭찬에 약한 고래다.


"나도 자주 집에서 하는 스트레칭인데, OO 씨 다리 부종이 좀 있네요. TV 보면서 골프공으로 발바닥을 3분이든 5분이든 매일 꾸준하게 마사지해주면 부종 빠지는데 효과 있어요. 한 번 해보세요."

캥거루족이지만 다리는 코끼리족에 가까운 나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집에서 3분~5분 정도 골프공으로 다리 마사지를 시작했고 다리가 시원해지는 것이 기분이 좋아 거르지 않고 매일 챙겨하게 되었다.


"OO 씨, 정말 FM이네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주 잘하네요! 아주 좋아요!"

알려주신 골프공 마사지를 매일 하고 있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놀라워하며 나에게 말했다.

분명 처음보다 자세가 좋아졌고 수업 진도에 맞게 잘 따라오고 있다는 좋은 뜻으로 해주신 말이지만, 사실 나는 FM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 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방면에서건 자주 들어온 말이다.


나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며 통통 튀는 발상을 갖고 살아가는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나이기를 바랐다.

나는,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죽을 때까지 철들지 않고 멋 모르고 살아가기를 바랐다.

내가 바라는 나이 든 나의 모습은 '피터팬'에 가까웠다.

그러나 FM이라 함은 정해진 규정의 테두리 안에서 제어가 불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예상 가능한 인물임을 지칭하는 것 같아 왠지 싫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 몇 개월의 시간을 오롯이 나와 지내 본 결과 새로운 길을 가보라고 등 떠밀어주면 주춤거리게 되는 나는 쫄보였다.

내가 쫄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벗어나려 하거나, 억지로 아귀를 맞추려 하면 꼭 탈이 났다.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는 방법이었다.



칭찬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며칠을 거부하다 오늘에서야 내가 FM인 것을,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부족하지만 알려준 길은 곧잘 따라가는 나를 스스로 우쭈쭈 우쭈쭈 잘했다하며 칭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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