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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 Dec 30. 2022

2022년 마지막 금요일을 전 직장동료와 보낼 예정이다

-가끔 이 모임이 그리워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

 언제부터 내 금요일의 주인이 그들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늘 금요일의 퇴근길은 다른 요일보다 차가 더 막혔다. 아무리 서둘러 퇴근준비를 하고 나와도 여유롭게 퇴근하던 다른 요일보다 더 늦게 집에 도착하곤 했다.  

 도로 위에 버려지는 내 시간들이 아까워 친했던 같은 부서 박대리와 구매팀 김 부장님께 "오늘 회사 근처에서 간단하게 저녁이나 먹고 갈까요?"라고 시작된 '간단한 저녁식사'가 그날 이후 금요일의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3년 정도의 시간 동안 회사 근처의 맛집이란 맛집, 예쁜 카페라는 카페는 다 다녔고, 금요일에 다른 약속이 생겼다고 하는 사람에겐 '배신자'라며 다신 상종하지 않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울분과 분노, 억울함, 짜증을 털어내는 의식을 이들과 무사히 치르고 잠자리에 들어야 뭔가 일주일이 정말 끝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부장님과 박대리 덕에 취할 듯 마시고 고주망태가 되어야 일주일간 쌓인 회사 스트레스가 풀렸던 나의 잘못된 습관도 고쳐졌다.


 우리가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서로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얘기 끝났어요? 이제 제 얘기해도 되죠?"와 "다들... 제 얘기 듣고 있어요?"이다.

 일주일간 회사에서 겪은 일들을 얼른 풀어내고 싶은 마음에 상대방의 이야기가 빨리 끝나길 기대하며, 별다른 호응 없이 먹기만 하는 상대방을 보며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있는지 의심하며 되묻곤 했다.



 "넌 나랑은 8살, 부장님이랑은 15살이나 차이 나는데 재밌어? 따분하지 않아?"

  집에 가는 길에 그것도 불금에 한두 번도 아니고 우리와 시간을 보내는 20대의 박대리가 이해되지 않아 물었더랬다.

 "네, 재밌어요. 제 진지한 얘기를 가볍게 받아줘서 그게 좋아요."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다. 가벼운 듯 격정적인, 무심한 듯 내 편이 되어주는 대화의 분위기가 이 모임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서로에게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하여 더 나은 대접을 받기를 진심으로 바라주었던 우리는, 부장님이 올해 1월, 내가 올해 4월, 박대리가 올해 7월 이렇게 순서대로 퇴사하게 되었다.

 휴식을 선택한 나를 제외하고 정말 말한 대로 그들은 더 나은 곳으로 일터를 옮겨갔다.


 각자의 퇴사일에 맞춰 상패를 제작하고, 케이크를 준비하고 꽃다발도 곁들이며 회사가 알아주지 않는 그간의 노고를 서로가 대신 위로하여 주었다. 그날들도 어느 주의 금요일이었다.



 

 박대리가 서울로 이직하면서 자연스레 우리의 정기모임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가끔 단톡에서 각자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안부를 묻곤 했고, 안부로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늘 그랬듯 '이제 내 얘기를 시작해도 되겠냐?', '내 얘기 듣고 있냐?'라는 물음들로 넘쳐났다.


 -저 12월 30일에 연차 쓰고 대구 내려가요! 그 날 보는 거 어때요? 다들 시간 괜찮아요?

 12월 초 박대리가 정기모임을 제안했다.


 -보자. 오랜만에.

 김 부장님이 짧지만 반가움이 묻어나는 답을 하셨다.


 -백수는 직장인 여러분이 정하는 시간과 장소에 모두 맞추겠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1도 없는 나는 환승의 환승을 거듭해서라도 이 모임에 참여할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한 달 전부터 정한 우리의 금요일 정기모임.

 5개월 간 쌓인 각자의 이야기보따리를 풀려면 오늘도 아마 서로의 이야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겠지? 그리고 또 정말 듣고 있는 게 맞는지 재차 확인을 하고 있겠지?


 이상하게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전혀 밉지 않다.
세상 무거운 이야기를, 세상 가볍게 들어주며 별 일 아니라고 다독여 주는 게 이 모임의 매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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