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리_이 맥주의 반전은 목 넘김부터 시작 되었다
세상에 참지 못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반전영화의 결말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 나온 맥주의 맛일 것이다. 하이트진로에서 이번에 출시될 맥주를 보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많이 궁금하긴 했지만 심장이 뛴 것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맥주의 컨셉이 '라거의 반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미 택시에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라거의 반전... 아니 켈리(Kelly)가 있는 곳으로 가주세요. 마트로 가야 하나? 공장으로 가야 하나?"
반전영화의 결말도 새로 나온 맥주도 남들이 먼저 말해버리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태평하게 그들이 보낸 맥주를 기다리고 있으면 이미 세상사람들은 이 녀석의 반전에 대해 다 알고 있을 걸?
그렇게 반전이 숨어있다는 신상맥주를 누구보다 빠르게 맛보기 위한 모험이 시작되었다.
시간을 돌이켜보자. 사실 뭔가가 새로 나올 것이라는 소식은 이미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이트진로 켈리 담당자는 이 맥주에 대해 (아니 맥주인지도 몰랐다) 철저히 함구하다가 지난 30일 통화에서 광고가 드디어 나왔다는 이야기를 전달해 주었다. 동시에 텔레비전과 SNS 속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배우 손석구님이 이 맥주를 맛보고 있었다.
그렇다. 켈리는 일명 '손석구 맥주'로 불리고 있다. 맥주에서 모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손석구는 굉장히 '반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다. 특히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 역할에서 차가운 듯 따뜻하고, 악역인 듯 선역 같은 매력을 보여줬다. 대충 주워 입은듯한 옷에 깎지 않은 수염의 와일드한 모습에도 도시적인 느낌이 있다. 하지만 자칫 따라 했다간 구씨가 아니라 구황작물 비슷한 모습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아무튼.
배우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밟고 있으면서 반전의 매력을 보여주는 이가 '켈리'의 모델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관심 가는 맥주에 적절한 캐스팅까지. 내가 오늘 이 맥주를 마셔야 할 이유가 딱 들어섰다.
문제는 분명 출고기사를 아침에 봤는데... 왜 마트에 아직 없는 것이지?
동네 마트와 편의점에는 '켈리'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더욱 도심에 들어가 '켈리'를 찾아다녔다. 그것은 내가 '공장출고' 기사를 곧 동네에 깔린다고 오해를 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은 나중에 알게 된 일이고. 대형마트에서 켈리를 찾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으로 보아 벌써 맥주러들에게는 소문이 돌았다.
켈리를 찾으러 다니며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이미 맛본 기자들의 '일반적인 한국맥주 같지 않다'는 평에 심장이 더 뛰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그 누구도 켈리의 슬로건 '라거의 반전' 정체를 밝힌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빨리 구해서 마셔야 하는데, 그래야 내가 먼저 이 반전을 밝힐 텐데... 차라리 정말 강원도 공장을 먼저 갔어야 했을까? 마음만 타들어갔다.
결국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허탈한 마음에 평소 자주 가던 맥주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켈리를 만났다. 세상에 켈리가 왜 여기 있어?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나는 놈 위에 맥주 영업사원이 있다.
신기하게도 맥주집의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켈리를 마시고 있었다. 단번에 봐도 알 수 있다. 켈리는 다른 맥주병과 다르게 호박색(Amber) 병이기 때문이다. 컬러 자체가 독특해서 평범한 술병들 사이의 보석 아니 인피니티 스톤 같은 느낌이다.
아직 캔제품을 보진 못했지만 켈리는 병이 아름다웠다. 단순한 유리병 라인이 아닌 곡면이 들어가 있다. 또 보석을 세공하듯 병목 아래에 각을 내어서 깎아 만든 라인이 조명에 반짝인다. 한글이 붙어있지 않다면 어디 해외에서 온 고급맥주라고 믿어도 좋을 디자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맛. 그리고 반전의 정체이다.
켈리를 잔에 따라보았다. 컵에 적게 따라도, 많이 따라도 적당한 정도의 거품층이 생긴다. 그리고 향이 진하다. 보리의 담백한 향과 신선한 느낌을 주는 홉의 향이 느껴진다. 맥주의 맛을 영화로 치자면 괜찮은 오프닝이다. 아직 마시지 않았어도 이건 진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맥주겠다는 예상을 했다.
그리고 반전은 마신 후, 목 넘김에서 시작되었다.
재료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은 첫맛에도 느낄 수 있었다. 북대서양 해풍을 맞으며 자란 덴마크 몰트를 썼다고 말한다. 해풍을 맞으며 자란 농작물들은 당도가 높아지거나, 향이 진해지거나, 식감이 부드러워진다고들 말한다. 켈리에서 처음 느껴지는 부드러운 거품을 지나 몰아치는 맥주의 단단한 보리맛은 이런 환경에서 자란 몰트로만 맥주를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목을 넘기면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진한 풍미를 강조하는 올몰트 라거의 경우는 부드럽고 진할 수는 있지만 탄산감이 적어 아쉬운 일들이 많았다. 처음 마셔본 켈리는 입에 닿을 때는 부드러웠지만 목으로 넘길 때는 탄산감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마실 때와 넘길 때의 느낌이 다른 술이다.
왜 라거의 반전이라고 부르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자세한 내용을 스포일러 하지 않았는지도 알았다. 마셔봐야 이 감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두 가지 맛을 동시에 내기 위해 켈리는 두 번의 숙성을 거쳤다고 한다. 7℃에서 한 번 숙성해서 부드러운 맛을 내고, -1.5℃에서 숙성하여 강렬한 탄산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마실 줄만 알지, 만들 줄 모르는 나로서는 느낌으로나마 알 수 있는 즐거움이다.
예상 밖으로 좋았던 것은 향이었다. 처음 맡았던 신선한 (홉의) 향도 좋았는데. 모든 반전이 지나간 입안에 남아있는 향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고소한 보리의 맛은 깔끔하게 씻어주고, 강렬한 탄산감이 지나간 자리를 향기롭게 채워준다. 맛있는 차를 마시고 난 뒤에 입 안에 남는 여운 같다. 단순히 시원하게 마시는 라거는 절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명작은 반전을 알아도 언제나 즐길 수 있는 법이다. 켈리의 맛을 스포 당하지 않겠다며 하루 종일 이 맥주를 쫓아다녔지만, 마시고 나니 이건 오히려 맛을 알아도 두고두고 즐길 수 있는 맥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대중라거(혹은 레귤러맥주)에서 이렇게 색깔이 강한 맛을 찾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 먼저 마셔볼수록 즐거움이 더 강하다는 것도 알겠다.
반전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 아직 사람들이 만나지 못한 신상맥주가 나왔다. 켈리에 숨은 반전을 즐길 시간. 과연 여러분이 느낀 켈리의 반전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