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삶의 결이 맞는 상대를 찾기 위한 길고 긴 여정의 중간
혼란형 애착유형을 포함 모든 이에게 통용하는 진리는
'나 자신 스스로를 알아야 사랑도 잘한다' 것이다.
나 역시 꽤 긴 기간 '자기 탐색'을 하고 있고, 삶의 적절한 균형감을 찾는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 제일 먼저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부터 말이다.
나 자신과의 적절한 관계를 갖는 시작은
온전히 나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부정적인 반응 기제도 가능하면 건강한 방식으로 다스려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가령 부정적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1) 좌절감, 우울, 불안 등의 감정을 애써 해석하거나 극복하기보다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2) 제삼자의 시선에서 상태를 관조하며 의식적으로 그 감정을 소화하는 연습을 하고,
3) 불안함과 외로움을 파고들기보다는 그것을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해소하는 방식을 알 때까지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앞선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과거를 바꿀 수 없기에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감정의 근원을 파고든다고 해도 해법은 없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렇기에 해결이 아니라 그 감정기제 또한 나 자신임을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슬기로운 방법을 찾을 뿐이다. '내가 살아있다'라고 느껴지는 두근거림이 진정한 자기 사랑의 시작이라고 여기며,
내 삶을 불안, 우울, 고독이 아니라 자기 사랑으로 충만한 삶이 되기를 바라며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가면서 말이다.
자, 여기까지 들으면 꽤 그럴듯하다.
마치 자기 사랑을 완성한 것만 같다.
그런데 긴 기간 동안 자기 탐색을 통해 깨달은 진리는,
내 삶은 결코 완성형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인정, 수용, 자기 존중 등 모든 단어들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막상 노력하면 할수록 여전히 그것들은 '이상'에 머물고 만다.
왜냐하면 삶은 매 순간 변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선택 앞에서 늘 의지적으로 연습하고 다짐했던 나와의 약속은 쉽게 매 순간 욕심과 후회, 미련, 통제욕구로 물거품이 된다. 그 때문에 어느 땐 지독하게 고독했고, 어느 땐 한 없이 지루했고, 어느 땐 인생 전체가 갑자기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정작 나 자신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가 다반사였다.
난 계속 안정형의 사람되는 법이 있는줄 알았다. 연습으로 가능한 일인 줄 알았던 것 같다. 훈련과 연습으로 부단히 노력하면, 나의 부정적인 감정기제 평온하게 다스려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란 사람, 나의 기질, 나의 개성은 내 뜻처럼 그물에 잡힌 물고기처럼 가만히 끌어올려지지 않았다.
결국 나를 사랑한다는 건, 노력으로 달성할 수 있는 도달점 같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자체가 매 순간 변화하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였고 자세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야 좀 깨달은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할 제대로 된 준비 상태에 도달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을.
이 글을 시작할 때 꿈이 하나 있었다. 언젠가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언젠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한 미래를 만드리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브런치에 오롯이 기록하여 나와 유사한 사람들에게 조금의 도움이라도 되는 글을 완성할 것이라고.
여기서 생각의 오류 하나가 있었다.
나는 사랑이 마치 릴레이 경주처럼 나를 사랑하는 도달 지점을 넘고 나야지만,
타인을 사랑할 다음 코스를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반년이 넘게 스스로와 여러 차례 실패와 좌절 속에서 대면하며 깨달은 결과,
나를 사랑하는 일과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 릴레이 코스처럼 다음 단계로 이어진 게 아니란 것이다.
나를 완전하게 사랑한 다음에야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불완전하게 사랑하며 삶을 살아가는 과정 안에서 그저 또 누군가를 불완전하게 사랑하면 될 뿐이었다. 사랑은 단지 삶을 대하는 태도였고,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었고, 결코 완성되지도 완성될 필요도 없는 불완전함 그 자체였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까, 마음이 희한하게 가벼워졌다.
그냥 나는 나대로 나를 계속 사랑해 나가면 되는 일이고, 타인을 사랑하는 건 그 자체로 불완전하게 사랑하면 되는 것이었다. 다만, 과거와의 차이는 나를 조금이라도 더 잘 알기 때문에 관계와 사랑을 다루는 데 조금은 똑똑하게 자신감과 기준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무엇이든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랑 하나면 무엇이든지 다 된다고. 사랑은 의지일 뿐이라고. 그런데 지금까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애써오며 깨달은 건, 불완전한 나를 평생 사랑하며 데리고 살기 위해서는 현명한 삶의 루틴이 필요하듯이 타인과의 사랑에 있어서도 내게 맞는 사랑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나는 평생을 완벽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때때로 외롭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서툰 방식으로 애정을 구할 때도 있다. 그렇기에 나를 억지로 고치거나 숨기기보다, 그런 나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삶의 루틴을 세우는 게 훨씬 더 현실적이고 건강하다. 사랑하는 상대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불완전한 내가 불완전한 상대를 채워주고, 반대로 내가 채워질 수 있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상대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주는 사람인지 스스로 알고 있어야 그 관계가 서로를 갉아먹는 방식이 아니라, 내 삶 안에서 지속 가능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의 글은 내게 적합한 상대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자기 이해부터 상대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까지,
서툴지만 스스로 터득한 방식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6개월 만에 새 글을 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연재를 시작하고 매 순간 깨달았다고 깨닫는 지점을 넘으면, 늘 더 큰 내적 혼란이 왔다.
아니깐 더 괴롭고, 아니깐 실패도 더 크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신을 알아가는 길고 지루한 이 과정이 내 인생에서 찾아온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적지 않은 나이에 여전히 풀지 못한 삶의 숙제만 가득한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길고 지루한 이 과정의 끝은 분명 내 팽팽한 삶의 긴장이 조금은 느슨해진 상태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왠지 혼자만 괴로운 것 같다고 느낀다면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게 늘 괴로움에 허덕이는 내가 있다고 위로해주고 싶다.
원래 삶의 좌우명 같은 게 없었는데, 요새는 딱 이 구절만 마음에 새기고 매일을 살아가려고 한다.
삶은 소풍이다. 잠시 머물렀다 가는 소풍. 소풍은 그저 주변의 아름다움을 찾고 그 순간 속에 온전하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는 그 자체일 뿐이라고. 삶은 어떤 숙제도, 어떤 의미도 아니다. 삶은 그 자체로 소풍일 뿐이다. 당신도 초여름 따뜻한 볕에 누워 그저 순간을 즐기던 어떤 소풍의 기억의 순간처럼 살아가기를 바란다.
흙냄새가 묻은 바람,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 조용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매 순간을 채우려 애쓰기보다는, 그 순간이 그냥 흘러가도록 두고 가만히 머물러보기를.
마음이 자꾸 바쁘고 쓸쓸할 때면, 당신이 이곳에 잠시 쉬어가기 위해 온 존재라는 걸 기억하기를.
소풍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러니 가능한 한 가볍게, 느긋하게, 따뜻하게 걸어가자.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