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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ld P Jul 15. 2024

안도 다다오 : 빛과 그림자를 길어 올린 오사카

For 삼성물산 건설부문 From Bold P

“나는 오사카가 키워 준 건축가다. 그렇게 큰 은혜를 베푼 오사카를 위해 이제는 내가 진력할 차례라고 생각한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 4월이면 벚꽃이 만개하는 오사카는 더할 나위 없는 산책자의 도시로 변모한다.


ⓒ안도 타다오 건축 연구소/아라키 케이유


CHAPTER1. 안도 다다오가 건축계에 날린 잽

1995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며 건축계에 벽 하나를 허물어뜨린 안도 다다오. 으레 안도를 말할 땐 혈혈단신의 불도저 같은 건축가, 이단아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학벌과 엘리트주의의 세계로 일컬어지는 건축계에서 제도적 건축 교육을 받지 않고 독학한, 거기에 복싱 선수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건축가는 확실히 남달랐다. 그가 프로 복싱 선수에서 돌연 건축가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던 건 사실 아주 뜬금없는 꿈은 아니었다. 1941년 오사카 상인 출신의 집안에서 태어난 안도는 외할머니와 함께 시타마치 지역의 협소한 주택에서 살았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겨울이면 바람이 보인다 싶을 만큼 춥고, 여름이면 바람이 통하질 않아 무더웠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편치 못한 그 집”에서 자랐다. 그 덕분에 날숨과 들숨처럼 집이라는 공간의 불편함을 느끼며 생활 공간을 바꾸는 일에 늘 진심이었다. 오사카 외곽의 서민들이 다글다글 모여 사는 동네엔 목공소며 철공소, 유리 공예실처럼 무언가를 만드는 재주가 있는 이웃들이 많았던 것도 자양분이 됐다. 그의 놀이터가 곧 목공소였으므로 어릴 적부터 대공에게 배운 솜씨로 손으로 만드는 것에 일가견이 있었는데, 그의 쌍둥이 동생은 일찌감치 디자이너로 진로를 찾았고, 안도는 복싱 세계를 거쳐 건축의 세계에 이른 것이다. 이때 만든 배는 안도 다다오 건축사무소의 마스코트처럼 전시돼 있다. 

다행히 오로지 제 한 몸만 믿고 홀로 결투를 해야 하는 권투는 성공의 길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삶의 고난을 이겨내는 법을 알려줬다. 인간은 결국 홀로 싸워야 한다. 건축을 독학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헌책방에서 발견한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와 드로잉을 무작정 따라 그리며 시작한 건축 공부, 건축사무소를 전전하며 배운 실기를 무기로 20대 때 떠난 7개월 간의 유럽 여정은 지금도 그가 말하는 건축 스승이다. 아쉽게도 영원한 마음 속 스승이었던 르 코르뷔지에는 그가 파리에 도착하기 2주 전 별세해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게 영 아쉬웠는지, 안도는 반려견의 이름을 ‘코르뷔’로 짓고 깊은 애정을 쏟았다. 오사카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우메다에 건축사무소를 차린 후 생긴 가장 특별한 사건은 ‘스미요시 주택’ 설계였다. 비로소 오사카에서 쌓아 올린 모든 결정체들을 응집시켜 선보일 때가 온 것이다. 


CHAPTER2. 오사카의 노출 콘크리트 가정집

오사카 여행을 떠올리면 왁자한 번화가에서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 먼저 떠오르지만, 오사카성과 깨끗한 거리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작은 연립 주택들이 나란한 아기자기한 풍경의 봄날 오사카는 서정적인 감흥을 준다. 그러다 오래된 목조 주택을 훑다 문득 무표정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을 보고 멈춰 서게 될지도 모른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일 확률도 높다. 오사카에서 안도의 작품 순례를 하고 싶다면 1976년 설계해 처음 자신만의 스타일을 세상에 알린 ‘스미요시 주택’에 가보자. 기회가 된다면 그가 외할머니와 살며 유년을 보낸 생가(현재 안도가 직접 리모델링해 보존)에서 시작해도 좋겠지만, 실제로 그의 생가와 규모가 비슷한 스미요시 주택을 보는 것으로 대략 안도의 초기 작품에 녹여진 유년과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안도 또한 이 집을 얘기할 때면 자신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생가와 비교하곤 한다. 


ⓒ안도 타다오 건축 연구소


일반 가정집으로는 생활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아 당시에도 논쟁적인 건축이었다. 일단 단열성과 창이 없는 폐쇄적 구조 등, 기능적으로 취약점이 많았다. 안도는 ‘집 주인에게 번거로움을 강요하는 집’, ‘건축가의 이기심으로 만든 집’이라는 점에는 어느 정도 수긍하는 것 같지만 기능을 뺀 예술 작품 같은 집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본 경제가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던 1970년대엔 그만큼 주거 환경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있었고, 미국과는 다른 일본에 걸맞은 풍요를 추구해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그의 말대로 스미요시 주택은 밖에서 보면 철옹성처럼 무딘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무표정해 보이기만 하던 공간이 저마다의 표정을 만들어낸다. 1/3을 차지하는 건물 중앙의 천장 없는 중정, 계단을 통해 돌아가는 2층 구조의 앞뒤 공간들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얻을 수 있는 자연과의 공명이었다. 당시 ‘58회 요시다상’ 후보에 오른 뒤 이곳을 방문한 심사위원 고무라노 도고 선생은 ‘건물의 좋고 나쁨은 차치하고라도 이 좁은 곳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상은 여기 사시는 분들에게 줘야한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안도는 “문제는 이 장소에서 생활해 나가는 데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과연 주거란 무엇인가 하는 사상의 문제였다. 나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이 주거의 본질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 어릴 적 살던 집을 떠올리면서 이 중정이라는 자연적 공백이야말로 좁은 집안에 무한한 소우주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호불호는 극명했지만 이 작품이 건축가로의 삶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 건 사실이다. 실제로 이곳에 방문한다 해도 사유 공간이므로 바깥 외관을 구경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앞으로 돌아볼 안도의 건축물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스미요시 주택에서 전철을 타고 11km 남짓 떨어진 나카쓰역에 내려 도보로 600미터 걸으면 안도 다다오의 건축사무소에 닿는다. 1973년 사무소 설립 후 맡은 최초의 주택을 인수해 여러 번 증축을 거친 5층 건물은 지금의 사무소가 됐다. 독특하게도 1층부터 5층까지 트여 있는 구조로 안도가 머무는 가장 아래층엔 스태프들의 사소한 업무 대화와 통화 소리까지도 고인다. 안도는 전체 건물 중 가장 환경이 열악한 아래층에서 언젠가처럼 추위와 더위를 극렬하게 느끼며 분노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프로젝트를 밀고 나간다고.


CHAPTER3. 비로소 영적인 힘을 모으는 콘크리트

건축가만큼 별난 오사카의 건축주들을 위한 주택을 주로 설계하던 안도는 오사카 이바라키의 교회 건축을 의뢰 받았다. 바로 1989년 완공한 ‘빛의 교회’다. 안도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긴 이 작품은 오사카의 외곽에 있어 전철을 타고 1시간 반을 가야한다. 신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은 건물을 짓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안도가 권투로 배운 비기, 빠른 판단력과 적재적소의 훅은 건축에서도 필요한 덕목이었다. 건축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들엔 건축주의 예산에 맞는 설계, 법규를 비롯한 모든 제약 안에서 구현해야 할 그럴듯한 결과물이 있다. 건물에 군더더기를 최대한 빼내는 작업,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엄숙한 동경과 무한한 가능성의 믿음은 빛의 교회라는 역작을 만들어냈다.

지난 시절 영감을 얻었던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 헤이키&카이야 시렌의 ‘오타니에미 예배당’을 떠올린 그는 공백의 공간에 의도적으로 출입구와 주요 개구부를 박스와 벽이 교차하는 지점에 뒀다. 실내로 들어오는 빛을 최대한 줄이고, 정면의 십자형 창으로 쏟아지는 빛을 극대화한 것이다. 설계비라는 제약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지만 궁극적으로 이 작업은 안도에게 ‘빛과 그림자’라는 평생의 건축 철학을 스스로 각인시킨 경험이었다. 


ⓒ안도 타다오 건축 연구소


고베의 ‘록코 교회’와 홋카이도의 ‘물의 교회’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종교 건축물에도 일가견을 보인 안도는 이후 사원을 짓기도 했다. 오사카만을 낀 효고의 아와지섬 내 ‘혼푸쿠지 물의 절’이다. 장경 40미터, 단경 30미터의 타원형 연못을 만들고 가운데 법당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를 길게 두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를 상징하는 연꽃이 성스럽게 피어난 연못 한가운데로 줄지어 들어서는 승려들의 모습은 마치 내 안의 석가를 찾아 내면으로 들어서는 불교의 가르침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기존 불교건축의 전통성을 깨면서 안도는 자신의 인장인 직선과 곡선의 기하학 건축의 백미를 극적으로 끌어올린 동시에, 그에게 창조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 같은 콘크리트 물성의 순수성까지 보여줬다. 길 위에 깔린 하얀 자갈과 잔잔한 법당 위의 물결, 해질녘 붉게 쏟아져 들어오는 법당 내의 빛은 성서적 공간의 경험을 가능케하며, 안도를 따라가는 이 건축 여정이 사실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혼후쿠지 미즈미도(물의 절) ⓒ kobecco.hpg.co.jp


물의 절에서 이어지는 고베의 효고현은 발길 닿는 곳이 안도의 건축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젠 일본 전역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그의 작품을 만나게 됐다. 그럼에도 역시 안도의 내공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곳은 오사카다. “도쿄가 관(官)의 손으로 만든 도시라면 오사카는 민(民)의 도시로 만든 도시”라는 그의 말은 명실상부 대가가 되어도 일반 가정 주택을 꾸준히 짓는 건축가와 연결되고, 전 세계의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를 맡으면서도 우물 같은 오사카의 5층 건물 가장 아래에서, ‘빛과 그림자’의 건축을 길어 올리는 혈혈단신의 안도 다다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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