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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ld P Jul 15. 2024

모쉐 사프디 : 싱가포르를 짓는 건축가

For 삼성물산 건설부문 From Bold P

건축과 예술, 미식의 성지가 된 싱가포르. 다국적 감성을 정체성으로 삼은 싱가포르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나라다. 싱가포르를 친환경 건축의 나라로 만든 건축가 모쉐 사프디를 따라 건축 투어를 시작한다. 


사진: Unsplash/Hu Chen


CHAPTER 1. 가장 도시적이고, 가장 자연적인 싱가포르

영국의 식민지 시절과, 제2차세계대전 일본의 점령기를 거쳐,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완전히 독립한 후 동서양의 경계에서 경제 성장을 이룩한 싱가포르의 영리함이 도시 전체에서 아우라를 내뿜는다. 창이공항은 그런 싱가포르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제주도 면적의 반도 되지 않는 작은 국토를 가진 싱가포르는 제한된 면적을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남다른 방식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바로 1963년부터 시작한 ‘그린시티’ 프로젝트다. ‘가든스바이더베이’로 대표되는 도시 곳곳의 정원이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이유다. 

사실 국토의 면적이 작다는 건 여행자에겐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어느 지역을 먼저 갈 것인지 루트를 짜는 괴로움에서 해방된다는 점에선 좋아도, 건물과 차, 인파까지, 생각만 해도 숨막히는 도시 밀도를 생각하면 피곤함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단 며칠이면 웬만한 명소는 다녀볼 수 있다. 그러나 집약적 도시 안에 이토록 다양한 정원과 녹지를 품은 싱가포르는 도시 여행에서 오는 피로감을 확 낮춰준다. 모쉐 사프디를 따라 가는 건축 투어 역시 그런 의미에서 조금 여유롭게 다녀봐도 좋다. 


사진: Unsplash/Sasha India


1938년생, 아흔을 훌쩍 넘긴 노장 건축가의 흔적을 따라 가는 여정의 첫 시작점은 바로 싱가포르로 가는 관문, 공항에서부터다. 사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설계 공모의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모쉐 사프디였기에 만약 그의 설계안이 최종 수주됐다면, 싱가포르로 가는 모쉐 사프디 건축 투어는 한국에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별세한 미국 최대의 건축 그룹 겐슬러의 수장, 아서 겐슬러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맡았고, 아직 한국과 모쉐 사프디의 이렇다할 건축적 인연은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6시간이 넘는 비행 끝에 도착한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거대한 실내 정원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세련된 도시의 첫 인상은 오래된 역사와 전유물로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여타 국가들과는 달리, 인간을 위한 자연친화적 도시 지향점을 굳건하게 갖춘 실용적인 신국가의 면모를 새삼 느끼게 만든다. 

싱가포르 동쪽 끝에 자리잡은 창이공항은 1981년 개항해 4개의 터미널로 확장됐는데, 2018년 동서남북 터미널을 연결시키는 쥬얼창이공항으로 탈바꿈했다. 이 작업은 명실공히 싱가포르를 건축의 도시로 만든 건축가, 모쉐 사프디가 설계를 맡았다. 터미널의 허브로,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공간이 되는 어트랙션의 기능까지 더해 비행기를 탈 일이 없어도 굳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로 넘쳐날 정도라고. 그야말로 도심 속, 공항이 하나의 정원이 된 셈이다. 5층 규모로 돔 모양의 유리 파사드 형태인 쥬얼창이는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쏟아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폭포를 설계하고, 여기에 자주 강우가 내리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자연 빗물을 활용했다. 분당 3만8천 리터의 빗물이 수시로 쏟아져 내리면서 공항 내부 환경의 공기를 순환시키고 더위를 식혀준다. 밤에는 조명쇼가 펼쳐지기도 하고, 예술가들과의 협업하는 갤러리의 역할까지 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 예술의 성지로 부상하기 위해 발돋움하는 싱가포르의 야심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CHAPTER2. 싱가포르는 어떻게 현대 건축의 성지가 되었나?

모쉐 사프디는 어떻게 싱가포르의 신뢰를 듬뿍 받게 됐을까. 공항에서 해변가를 따라 불과 20분 남짓 달리면 닿는 곳, ‘마리나베이샌즈’의 불가능을 가능케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빌딩 3개와 그 위에 올린 배 형상의 구조물의 완공은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 프로젝트였다. 단순히 건물을 건설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을 재정비하는 사업이었던 마리나베이 일대 프로젝트는 사실 모쉐 사프디만한 적임자도 없었다. 한 건물의 건축보다 전체 도시를 설계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사프디는 고대 로마 도시에서 영감을 얻어, 16헥타르 면적에 55층 객실 2600여 개 규모의 고급 호텔과 환영하듯 펼쳐진 손 조형이 특징인 ‘아트사이언스뮤지엄’, 유명 명품 브랜드가 입점한 ‘크리스탈 파빌리온’, 마리나베이샌즈 세 개 빌딩 위에 얹어진 57층의 정원 ‘스카이파크’까지, 관광 특구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좋은 건물을 짓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마리나베이샌즈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복합리조트지구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는데, 이들이 모두 합쳐져 완전체로 복합공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도시의 기본에는 먼저 좋은 건물들이 모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싱가포르는 가장 도시적이면서, 자연적인 도시가 되었다. 현재 이곳 3개 빌딩에 더해 고급 호텔 빌딩을 추가하는 프로젝트 역시 사프디가 맡아 논의 중이다.

싱가포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찾는 으리으리한 마리나베이샌즈 일대만 봐도 싱가포르의 반은 봤다고 할 정도지만, 여기까지 왔다면 모쉐 사프디의 건축 철학에 보다 깊이 파고들기 좋은 건축물까지 봐야한다. 건축물 하나로 한 도시의 성공을 지켜본 사프디는 싱가포르의 주거로 눈을 돌렸다. 실제로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건축에 “인간화를 위한 창의적인 설계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하기도 했던 사프디는 자신을 세계에 알린 최초의 작품을 다시 한번 끄집어냈다. 마리나베이샌즈 지구에서 북쪽으로, 싱가포르의 중심으로 파고들면 닿는 ‘스카이해비타트’다. 

이스라엘 하이파 지역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무렵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한 사프디는 건축학을 전공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루이스 칸을 사사했다. 그는 학위를 위해 <도시 주거를 위한 사례-3차원 모듈러 빌딩 시스템> 같은 논문을 준비하는 등 도시 디자인과 신기술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1967년 열린 모듈러 프로젝트 엑스포에 참여한 사프디는 첫 작품 ‘해비타트67’이 알려지면서 큰 명성을 얻었는데, 이 프로젝트는 몬트리올의 아파트 주거 설계에 중동이나 지중해 언덕 마을에서 볼 법한 풍경에 3차원 모듈러 형태를 적용한 디자인이었다. 건축가 개인에게도 의미 있는 해비타트67의 시스템을 다시 오마주한 것이 싱가포르의 스카이해비타트였다. 2016년 완공한 건물은 고밀도화 된 도시에서의 새로운 주거 방식이었다. 그의 최초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언덕 마을처럼 건물에 계단을 적용하고 두 개 타워 사이 세 개의 브릿지를 연결했다. 옥상의 공중정원, 곳곳에 수영장과 산책로, 열대식물 정원을 조성해 주거 공간이지만 레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최근 사프디는 싱가포르 여행지의 마지막 지점인, 최대 쇼핑 천국 오차드로드에 주상복합건물 ‘오차드 블러바드(The Singapore EDITION and Boulevard 88)’에 집중하고 있다. 2023년 완공된 건물엔 레지던스 시설과 호텔 객실, 두 건물 사이에 연결되는 커뮤니티 테라스에 50미터 규모의 수영장과 정원을 조성한다. 이렇게 되면 사프디는 싱가포르의 세 가지 여행자 통과 의례 관문인 창이공항과 마리나베이샌즈 일대, 로차드 로드까지 완벽한 세 개 꼭지점을 완성하게 된다. 싱가포르 여행이 곧 모쉐 사프티 건축 투어가 되는 셈이다. 

ⓒ safdie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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