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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ld P Jul 15. 2024

장 누벨 : 파리를 넘어선 건축 누벨바그

For 삼성물산 건설부문 From Bold P

빛의 건축가 장 누벨. 전 세계를 주름잡는 으리으리한 그의 건축물을 보노라면 경외감마저 드는 건축적 경험을 한다. 전통적 모더니즘을 거부하고 건축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장 누벨을 따라 프랑스 파리로 가본다. 


사진: Unsplash/Alexander Kagan


매년 여름 휴가 시즌이면 전 세계의 인파가 파리로 향한다. 여름날 파리는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는 결코 과한 얘기가 아니다. 파리를 여행한 사람들은 파리지앵보다 외국인을 더 많이 만났다며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유럽 여행지 리스트엔 파리를 줄곧 다시 올린다. 오르세 미술관과 루브르 박물관 등 예술과 문화를 집대성한 파리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이유는 너무도 많지만 그 중엔 건축가 장 누벨도 한 몫 한다. 오랜 건축의 역사를 지닌 도시만큼 신구의 조화를 살펴보는 즐거움이 큰 곳도 없으니 말이다. 


http://www.jeannouvel.com/

CHAPTER 1. 파리로 진격하는 건축의 거인

파리는 세계에서도 일찍 현대의 도시 정비를 마쳤다. 광장을 중심으로 쭉 뻗은 대로를 만들며 도시다운 도시의 시초, 늘 전위적인 상태로 전 세계의 예술가들을 불러들인 파리는 장 누벨에게도 건축가로서 광합성을 하기에 태양 같은 존재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8월, 장 누벨은 교사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예술보다 수학과 프랑스어 같은 과목에 더 집중하길 바랐지만 장 누벨이 유년기를 보낸 중세 건축의 도시, 살라는 예술적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당시 살았던 17세기 귀족 저택을 지은 이름 모를 건축가를 자신의 첫 건축 스승으로 삼았다.

원래 누벨의 꿈은 화가였지만 예술가의 길을 반대한 부모님은 그가 엔지니어나 교육자가 되길 바랐다. 그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안을 찾은 것이 건축학이었다. 다행히 누벨은 보르도에서 파리 에콜데보자르로 옮겨 건축을 공부하면서 회화보다 건축에 깊은 애정을 갖게 되었는데, 편입 시험 1등을 차지한 덕분에 학교를 다니면서 당대 프랑스의 저명한 건축가 클로드 파랑(Claude Parent)과 건축 이론가 폴 비릴리오(Paul Virilio)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에서 일했다. 이때의 경험은 장 누벨의 건축가 경력 시작점이 되었고, 클로드 파랑의 도움으로 학교를 졸업하기 전 자신만의 설계사무소를 설립할 수 있었다. 특히 <벙커의 고고학>을 쓴 폴 비릴리오의 방대한 지식에 관한 말상대를 하는 것도 하나의 업무였다(비록 파랑에게 설계는 안 하고 얘기만 듣고 있다며 꾸중을 듣더라도!). 그는 이런 경험을 통해 건축이 단순히 과거 유산을 반복하며 설계도로 형상화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념과 철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70년 사무소를 연 장 누벨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첫 도전은 파리 현대미술관 설계 공모였다. 현재는 퐁피두 센터로 불리는 미술관은 결국 렌초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 등의 건축가들이 공동 참여한 설계안이 채택됐다. 이후 프랑스 전역의 프로젝트를 담당했지만 장 누벨은 유난히 파리와는 특별한 인연이 되지 못했다. 어쩌면 이제 막 사무소 문을 연 젊은 건축가에겐 너무 큰 프로젝트들이었는지 모르지만 누벨은 끊임없이 파리의 굵직한 설계 공모에 참여했다. 파랑의 소개로 1982년 파리 비엔날레의 전시 이벤트, 무대미술 등을 맡으며 여러 예술계 인사들에게 자신을 각인 시키고 연달아 파리의 프로젝트들에 집중했지만 아쉽게도 성사된 일은 없었다. 


institut du monde arabe ⓒ http://www.jeannouvel.com/


하지만 기다림만큼 파리는 누벨에게 가장 큰 보상을 준 도시다. 바로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아랍세계연구소’의 설계를 맡게 된 것. 1987년 완공된 이 건물은 스물 다섯 살에 건축사무소를 연 이후부터 줄기차게 시도했던 파리 건축 공모전이 결코 헛되지 않은 도전이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1976년 브종의 외과의원을 설계하면서 알루미늄 소재의 외벽을 사용해 주목을 받았던 그는 아랍세계문화원도 기존의 건축물에선 보기 드문 커튼월 스타일을 가미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 옆 생루이섬을 바라보는 센강 근처 아랍세계문화원 건축을 의뢰한 19개 아랍 국가 대표자들은 그저 흔히 생각하던 대로 파리 속의 모스크를 예상했다. 누벨의 생각은 달랐다. 아랍권의 문화를 알리는 이정표 같은 건물이지만 동시에 파리라는 유럽에 위치한 공간이었다. 즉 아랍 건축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강철과 유리 소재를 적극 사용해 하이테크 건축의 표본이 된 이 건물은 카메라의 렌즈 기술에 착안해 빛 조리개처럼 내부로 쏟아지는 햇빛을 자체 제어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종종 건축가를 영화감독에 비유하는 누벨다운 발상이었다. 전체 건물은 동시대 예술품처럼 구성하되 커튼월에 아랍 전통 문양인 무샤라비에 패턴을 적용함으로써 아랍세계연구소라는 정체성을 새겼다. 

아랍세계연구소가 개관하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장 누벨 이전에 프랑스의 위대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그리고 미스 반 데어 로에 등으로 상징되는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전복, 아니 어쩌면 모더니즘 건축 양식 그 이전의 건축을 답습하는 건축계에 던진 장 누벨의 도발이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서 합리적이고 기능적인 군사적 기계로 전락한 모더니즘 건축과 68혁명을 통해 그가 배운 혁신의 의미는 어떤 문화적 모델의 복제가 아닌 ‘정당성 있는 진짜’를 상상하고 창조하는 행위였다. 


CHAPTER 2. 든 것을 포괄하는 차원의 특이성

건축 여정의 시작점으로 아랍세계연구소를 먼저 찾았다면 다음 목적지로는 여기서 3km 떨어진 ‘퐁다시옹 카르티에(카르티에 재단 현대미술관)’로 가보길 권한다. 아랍세계연구소의 루프탑이 센강변과 대성당을 조망할 수 있어 여행의 감성을 느끼기에 그만이라면 이 거리는 팡테옹과 조경이 아름다운 뤽상부르 공원을 끼고 있어 잠시 쉬어 가기에 좋다. 퐁다시옹 카르티에 프로젝트 이전에 누벨은 1987년 카르티에 문화 센터의 설계안을 제안하며 카르티에 재단과 관계를 맺었다. 이후 명품 시계의 성지, 스위스 쌍띠미에 지역에 카르티에 팩토리와 함께 파리의 재단 미술관 설계를 맡게 된 것이다. 먼저 완공된 카르티에 팩토리의 분위기를 이으면서 ‘실제와 가상’이라는 개념으로 탄생한 카르티에 재단 현대미술관엔 강철과 유리 소재를 사용해 가벼움과 경쾌함, 세련된 분위기를 담아냈다. “설계를 의뢰 받으면 먼저 형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석을 통해 특이성을 도출하고 맨 마직막에 형태를 결정한다.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는 것의 이런 전략상의 개념이다.” 이처럼 형태보다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신만의 건축적 특성을 살리면서 그는 평소 관심사였던 미래적 건축의 면모도 부각시켰다. 하계에는 1층 홀의 외벽을 걷어낼 수 있게끔 슬라이딩 베이 시스템을 설치해 미술관이 위치한 공원이 보다 확장되도록 한 것이다.


퐁다시옹 카르티에 ⓒ http://www.jeannouvel.com/


에펠탑 근처의 ‘케브랑리 박물관’은 퐁다시옹 카르티에를 통해 선보인 강철과 유리 소재에 대한 그의 애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동시에 평소 다소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하는 장 누벨의 언어와 철학까지도 담겨 있다. 공모전의 최종 경쟁 상대가 렌초 피아노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 개인적으로는 퐁피두 센터 공모전의 설움까지 씻어낸 프로젝트였을 듯하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비롯한 유럽 외 대륙의 원시적인 전시품들을 담아내는 공간을 염두에 둔 누벨의 설계는 외벽에 스물아홉 개의 조형물을 디자인하고, 유물을 보존하는 박물관답게 빛을 제한했다. 이때의 적은 빛은 전시품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이면서 원시적 전시 공간이라는 점에선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장치가 된다. 도시의 신성한 은신처가 된 박물관은 이어지는 바깥의 조경과 외벽의 식물들 역시 정돈되지 않은 상태의 날 것 그대로인 원시적 자연을 보여주며, 에펠탑이라는 파리의 상징적 조형물과 어우러져 근대와 현대,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가 교차하는 지점에 선 듯한 절묘한 감흥을 일으킨다. 

이런 그의 건축 철학은 2008년 프리츠커상 수상으로 이어졌고, 이제 장 누벨의 건축물은 파리를 넘어 세계 전역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됐다. 국내에선 삼성미술관 리움과 가장 최근작 서울 청담동의 돌체앤가바나 부티크 플래그십 스토어가 그의 작품이다. 뚜벅이 여행자로 파리에서 누벨 찾기를 하는 즐거움에 비할 순 없겠지만 두 공간 모두 파리로 직접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엔 부족함이 없다. “오늘날의 건축가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어떻게 분석하여 분명한 해답을 제안하는가에 존재 의의가 있다”고 말하는 장 누벨의 존재감을 직접 확인하게 될 것이다. 


케브랑리 박물관 ⓒ http://www.jeannouv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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