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법고시(사법시험)를 치러 법조인이 되던 시절에는 아무도 사법고시를 공부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고도성장기와 급격한 근대화를 겪은 한국 사회에서 ‘법조인’이 되는 것은 조선 시대에 과거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출세와 입신양명, 꿈을 이루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었다.
공부를 조금 한다 싶거나 현재의 처지를 바꾸고자 신분 상승을 노리거나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사법고시 준비에 뛰어들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른바 ‘개천룡 신화’의 주역이 되어 TV와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사법시험은 치러지지 않는다. 법학전문대학원, 이른바 한국형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법조인을 탄생시키는 시스템은 ‘시험 선발’에서 ‘교육 양성’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그러자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생, 직장인, 시민들에게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어째서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하는가.
사법고시 제도가 사라진 것처럼 한국 사회도 변화한지 오래다. 더 이상 고도성장 시대의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어느 분야에서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이유만으로 커다란 과실을 얻을 수 없다.
명문대, 대기업, 고시. 옛날에는 입성하기만 하면 사회적 신분과 재력, 위치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졌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해지는 시대다. 모바일 앱 하나를 성공시키면 대기업 직원이 벌 수 있는 연봉 수십 배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반대로 인생을 보장받을 것 같던 공공기관이 갑자기 통폐합되어 거리에 나앉는 일도 일어난다.
법조인, 로스쿨을 진학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 진입할 수 있는 법률전문가 집단의 사회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이 법조인 바닥에서도 이른바 ‘대박’이 가능했다. 어렵고 높은 시험을 통해 법조 사회에 진입하는 사람들은 적었다. ‘고시’의 목적은 판사와 검사가 될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었고 처음부터 변호사가 되는 이들은 공부를 못했거나, 돈독이 올랐거나, ‘민주화운동’을 하려는 이들로 비춰지곤 했다. 법조인이 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자 일신을 영달할 수 있는 길이었고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사회변혁을 꿈꿀 수 있는 유력한 길이기도 했다.
특히 고도성장기와 함께 법조 사회도 함께 성장했기에 아직도 서초동 일대에는 성공보수로 건물을 사들여 성공했다는 전설이 괴담처럼 떠돌곤 한다. 실제로 성공한 변호사의 케이스도 얼마 전 사법농단 사태와 함께 뉴스로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1년에 변호사 1600명이 새롭게 진입하는 이른바 2만 변호사 시대다.
법관들은 법복을 함부로 벗으려 들지 않고 검사도 부장을 달기 전까지 퇴직하지 않으려 애쓴다. 저성장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과당 경쟁과 취업난이 법조계에도 들끓고 있다. 저년차 변호사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난리이며 고년차 변호사들은 새로 진입하는 변호사들을 줄이기 위해 애쓴다.
이쯤 되면 대체 왜 로스쿨에 왔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이른바 ‘소수 법조인’의 특권을 누릴 수도 없다. 법조인의 진로 자체가 입신양명과 영달의 길이 아니게 된지도 오래다.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는 일이라면 시민단체와 정당, 스타트업 기업을 창업하는 일이 훨씬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로스쿨에 진학하고자 ‘리트’ 시험을 치른 10,000명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법률이 도입된 이후 ‘로스쿨’ 제도에 대해 관심을 둔 것은 어떤 고시생이든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당시 행정고시를 목표로 준비 중에 있었다.
관료가 되고 싶은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단지 ‘콘텐츠 정책’을 다루는 일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콘텐츠 정책을 다루는 문화체육관광부는 행정고시 합격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매우 시험 성적이 높아야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대체 왜 콘텐츠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느냐고?
당신도 1,500만원을 눈앞에서 날려보면 정신이 번쩍 들게 될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법조인 지망생이었던 적이 없다. 법대생도 아니었고, 고시에도 별 관심 없었으며, 소설과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내 학창시절의 전부였다.
그러다 판타지 소설을 하나 출판하게 되었는데, 남자 대학생들이 보통 그렇듯이 군대 영장이 날아와 입대를 하게 되었다.
훈련소에 처박혀 만사를 잊고 지내던 중, 그만 출판사가 부도가 나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당시 나는 저작권이니 출판권이니 계약이니 하는 것들을 하나도 알지 못했고, 공중에 붕 떠버린 내 ‘권리’는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았다. 누구 하나 잘못한 사람도 없고 고의도 없었지만 어쨌든 내가 시간과 노력을 만들어낸 결과물(콘텐츠)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간신히 당시 유명한 작가 한 분의 호의로 E북에 대한 권리만을 보존하기는 했지만, 본래 받기로 되어 있던 1500만원 중 일부만을 초기에 받았고 나머지는 받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 와서 다시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내 ‘권리’를 온전히 보전받지는 못할 것이다. 법적으로 설명하면 내 계약금은 일종의 출판에 대한 인세(저작권료) 채권인데, 부도로 인해 인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이상 채무자인 출판사 입장에서 채권을 지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일을 겪은 당시에만 해도 나는 ‘권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게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e북에 대한 출판권이나 저작권을 제대로 확보하기까지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권리나 계약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군대를 전역한 이후 콘텐츠 정책이나 저작권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른바 사법고시를 준비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사법고시, 정식 명칭은 사법시험인 이 시험은 보통 평균 합격 기간을 5년으로 잡는다.
총 3차의 시험으로 구성되어 있고(1차 객관식, 2차 주관식 논술형, 3차 면접), 빨리 합격하는 사람은 재학 시절 2년만에 합격해서 나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1차 합격 후 동차합격하는 경우는 드물며 다음해에 유예 제도를 이용해 2년차에 2차 시험을 치르는데 2번 정도는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내가 시험 준비를 고려하던 2006년에는 이미 이른바 ‘신림동 고시학원 체제’가 확립되어 있어서 신림동 학원에서 고시 공부를 준비하지 않으면 합격이 어려운 상황이기도 했다. 학원비나 주거비, 독서실 비용 등의 비용을 아무런 보장도 없이 소비하는 선택은 쉽게 결정내릴 일이 아니었다.
행정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짧은 준비기간과 2~3년이면 적성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고, 만약 완전히 낙방한다 하더라도 다른 진로를 준비하기에 충분한 여유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러던 중 이른바 한국형 로스쿨이 도입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애초에 소설가를 꿈꾸었고 지금도 웹소설을 쓰는 내가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내 권리가 침해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콘텐츠 정책이나 법령을 만드는 행정부보다 오히려 사법기관, ‘변호사’가 더 직접 관련이 있지 않을까?
게다가 로스쿨은 이전의 고시와 달리 ‘특수목적대학원’에서 시험 합격과 법조인이 되는 과정을 직접 책임지고 지도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장점은 법조인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던 학원 고시생과 다른 큰 부분이다.
이것이 내가 로스쿨에 관심을 갖고 지금까지 법조인으로 6년간 살아오게 된 사소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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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듯 로스쿨을 선택하거나, 관심을 두거나, 로스쿨에 아는 사람이 진학하게 된 계기는 다를 것이다.
로스쿨 제도는 3년의 기간을 소모하게 만드는 교육 과정이고 단순한 관심만으로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기에 우리 인생은 생각보다 짧다.
다만 법조인을 꿈꾸지도 않았고, 로스쿨에 진학하기 전에는 법에 관심도 없었으며, 법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이기 때문에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
당신이 ‘법’을 알게 되고 활용할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돈’을 버는 것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해낼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법이란 이 사회를 구성하는 시스템을 기록한 것이며, 법을 배움으로써 우리는 시스템에 대해 알게 되고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되며 시스템을 실제로 움직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굉장히 어렵고 멀며 거대하게만 느껴지던 이 대한민국이라는 체제가 어떤 형태로 구성되어 어떤 형태로 공권력을 행사하며 어떤 형태로 규제를 해 사회와 시장과 국가를 구성하는지 정확하게 알게 된다.
내 관심사인 저작권과 콘텐츠, 문화 산업에 대한 부분도 법체제 안의 일부이다.
여기에 덧붙여 로스쿨에 진학해 법체계를 다루는 자, ‘법조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을 만나면 이전에 법조인이 되기를 꿈꾼 적이 없는 이들은 신기한 세상을 만나게 된다. 특히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면서 대학에서 다른 분야를 전공한 이들이 로스쿨에 입학하고, 사회 경험을 가진 직장인들이 함께 공부를 하고, 과거에 사법시험을 준비하다가 실패했던 옛 사회운동가들을 만나게 되면 더욱 그렇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는 내 개인적인 로스쿨 경험과 법조인으로서 겪었던 경험담,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1만 로스쿨 세대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로스쿨과 다를 수 있겠지만, 반대로 당신이 생각하는 로스쿨과 법조인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만약 그 모든 것을 본 이후에도 당신이 여전히 로스쿨을 꿈꾼다면, 당신은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첫 관문은 넘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