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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시험 존치! 로스쿨 폐지! 공정 교육을 실시하라!”
한국은 무척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다.
이런 외침을 변호사협회에서 외치던 시기가 있었다. 나아가 보혁구도, 전관/재야 구도 등으로 구분되던 전통적인 법조계 전선을 기성/청년 법조인 구도나 연수원/로스쿨 세대 법조인 구도로 뒤바꾸는 상황도 벌어지기도 했다.
변화는 너무 빨라서 법조계에서도 제대로 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
심지어 지난 2016년에는 한국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청와대조차 법조계의 대립 구도 변화를 잡아내지 못했다는 반증이 드러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청와대, 법조계도 길들이려 했나, 2016. 11. 10. TV조선>
[비망록에선 청와대가 법원과 변호사회 등에 개입하려 한 정황도 드러납니다. 김기춘 전 실장은 대한변협 선거 때도 애국단체의 관여가 요구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중략)
변호사협회들도 주시 대상이었습니다. 또 김 전 실장의 지시 사항중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에서 애국단체의 관여가 요구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 기사에 나온 비망록이 기록된 시기는 2014년 연말의 일이다.
당시 청와대는 재야법조인들이 이전 민주화운동 시대처럼 보혁구도(ex : 민변 vs 시변)의 구도로 구성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시변을 통해 대한변협 선거를 개입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2008년에만 해도 성세를 떨치던 시변(시민과 함께 하는 변호사들)은 이미 2014년 시기에는 크게 줄어든 상황이었고, 도리어 민변(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1,000명이 넘는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변협 선거가 아닌 현실 시민운동에 신경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이 시기에 대한변협 회장 선거 운동의 주된 이슈는 ‘사법시험 부활’을 둘러싼 저년차 연수원 출신 변호사들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갈등이었다.
로스쿨의 등장과 함께 재야법조계도 격변의 시기를 겪게 된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시변의 상대적 약세와 민변의 성세도 로스쿨 제도 도입으로 인한 ‘공변(공익변호사)’의 증가 때문인 점도 있다. 절대적인 변호사의 숫자가 늘어난 점 이상으로, 그동안 시민운동/노동운동을 하던 운동가들이 로스쿨에 진학하여 변호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민변은 1,000명이 넘는 변호사단체가 된 반면,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청와대와 법조계를 장악하던 시변은 한변(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과 통합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울러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난 2018년 현재. 더 이상 ‘로스쿨 폐지’나 ‘사시존치’의 목소리는 법조계에서는 그리 큰 이슈가 아니다.
(다만 법조인 배출 숫자 통제 문제는 여전히 주된 이슈 중 하나다.)
이렇게 되기까지 굉장히 많은 논란과 논쟁이 있었는데 잠깐 대략적인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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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은 물론 로스쿨 도입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非로스쿨 출신도 기회 줘야” “무제한 응시땐 파행 불보듯”, 2009. 2.24>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인 김현 변호사가 지난 19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변호사시험 제도를 놓고 의견을 나눴다.
강용석 의원은 “로스쿨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에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변호사시험 합격자의 10% 정도를 비(非)로스쿨 출신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 회장은 “비로스쿨 출신에게 변호사시험 응시자격을 주는 것은 로스쿨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주장이며 학비 문제는 장학금 제도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로스쿨 제도 도입 당시부터 기성 법조인들은 로스쿨 제도에 은연중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강용석 의원만이 아니라 율사 출신 국회의원들은 상당수 로스쿨 제도 도입을 반대했고, 그 근거로 이른바 ‘개천룡’, 곧 저소득층의 변호사시험 응시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물론 로스쿨 제도에는 오히려 5~10%의 저소득층, 장애인 등 특별전형 입학이 제도적으로 도입되어 있고, 이들에게는 장학금이 부여되도록 되어 있어서 이런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는다. 다만 이 문제는 현재는 변호사시험 합격률과 결부되어 다시 문제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시기까지는 법조계에서는 본격적인 논란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처음 배출되기 시작한 시점이 2012년이기 때문이다.
로스쿨은 2009년부터 첫 입학생을 받기 시작했고, 2012년에 졸업생을 배출해 2012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폐지가 예정된 사법연수원 세대 변호사들과 함께 법조계에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부터 법조계에서는 ‘로스쿨 제도 폐지론’과 ‘사법시험 존치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숫자’였다.
이전까지 사법연수원은 법조인이 부족하다는 국민적 여론 때문에 300명에서 1,000명까지 점진적으로 숫자를 확대하고 이 선에서 법조인 배출 숫자를 조절하고 있었다.
하지만 로스쿨 도입 당시, 사법연수원 제도를 함부로 폐지할 수 없다는 강력한 반대 세력이 있었고 결국 로스쿨 졸업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이수 변호사들이 동시에 ‘법조계’에 나타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그 결과 사법연수원 1,000명과 로스쿨 출신 1,500명이 한꺼번에 ‘법조 시장’에 나오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갑자기 인력 수급이 2.5배가 된 셈인데다 당시에는 아직 기업이나 사회 각 분야로 변호사가 진출한다는 인식이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이른바 송무 시장의 충격파가 훨씬 심한 편이었다.
이때부터 저년차 사법연수원 출신 변호사들 사이에서 강력한 ‘반로스쿨 여론’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법조계는 본래 대학, 시험(ex : 사법시험 vs 군법무관시험), 지역을 모두 따지는 ‘성골-진골’ 사회라 로스쿨에 대한 반감 자체는 존재했지만, 이 반감이 본격적인 여론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경력 4년 36세 서울변호사회 회장 … 나승철의 반란, 2013. 1.29, 중앙일보>
[나승철 변호사는 이른바 '청변' 그룹의 대표격이다. 그는 선거에서 사법시험 존치, 로스쿨 검사 즉시임용 폐지, 사건수임 지원, 근로조건 개선 등 업계 불황을 헤쳐 나갈 다양한 공약을 내세웠다. 그는 "솔직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쏟아져 나오면서 변호사의 특권도 점차 무너지고 있다"며 "변호사 공급을 1000명으로 제한하도록 추진하는 등 공약에는 변함없다"고 말했다. ]
이러한 여론을 타고 계속 청년 법조인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나승철 변호사’가 사상 최연소 서울변호사회 회장이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나승철 서울변호사회장은 본격적으로 ‘반 로스쿨-사법시험 부활 운동’을 개시한다.
하지만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많은 예산(100억원 대)과 편중된 회원 숫자(당시 전체 변호사 90% 가입)를 지녔어도 본격적인 입법 운동을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었다.
법조계에 퍼진 소문에 따르면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과 간부들이 국회 의원회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고 하는데, 성과는 적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스쿨 제도는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로 보장되며, 사법시험 폐지는 ‘변호사시험법 부칙’에 따라 예정되어 있는 입법 사안이었다.
때문에 이 문제를 다시 뒤엎기 위해서는 법을 개정해야만 했다.
국회가 법을 바꾸기 위해서는 해당 법의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해야 하고, 모든 법의 법 위반 사항 여부 등을 검사하는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어야 한다.
로스쿨 제도의 경우 참여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이 과정을 거쳐 통과할 수 있었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에는 이 문제에 관심있는 인사가 거의 없었다.
뒷소문에 따르면 우 모 전 수석이 약간 관심이 있는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언론에 보도된 해당 수석의 권세로 볼 때 정말 관심이 있었다면 진작에 이른바 ‘사시존치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법조계를 대표하는 법정 단체, 대한변호사협회가 움직여야 했다.
때문에 앞서 살펴본 대한변협 선거 쟁점으로 ‘사시존치’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대한변협 하창우 신임 회장. 2015. 3. 4. 법률신문>
[“공정한 판·검사 임용이 담보되도록 로스쿨 제도를 손보는 것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새로워진 하창우식 법조개혁이 어떻게 이뤄질지 기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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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대한변협 선거는 서울변회와 달리 간선제였다.
즉, 변호사들이 직접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원들을 먼저 선출하고 대의원들이 다시 변협 회장을 뽑는 구조였던 것이다. 2011년까지 간선제로 실시되었던 변협 선거는 2013년에 갑자기 직선제로 바뀌었다.
이전에 대의원들은 아무래도 원로나 중진 이상의 연차를 지닌 변호사들이 선출되었고 ‘청년’ 연수원 변호사들이 의사를 반영할 틈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직선제가 도입되었고 ‘청년’ 연수원 변호사들에게도 기회가 돌아온 것이다.
하창우 대한변협 회장은 ‘사시존치’를 약속했고, 이를 통해 청년 연수원 변호사들의 지지를 받는데 성공하여 회장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이 과정에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도 변협 회장을 선출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당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지지를 받았던 변호사가 특검으로 널리 알려진 박영수 특검이다.
<박영수 대한변협회장 후보, 공식 선거운동 첫 발, 2014. 12. 9, 머니투데이>
만약 대한변협 회장이 이때 되었다면 후일 특검에 임명될 수도 없었을테니 새옹지마라 할 것이다.
하창우 회장은 대한변협 회장이 된 후, 자신의 사시존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노력이 드러난 것은 어처구니 없게도 대한변협의 ‘사시존치 문건 유출’ 사건이 벌어졌을 때였다.
<수서경찰서, '사시 존치 TF 문건 유출' 수사 착수, 2015. 10. 19, 법률신문>
지금은 오히려 ‘대법원’으로부터 감시를 받았다고 보도되는 하창우 전 변협회장이지만, 당시만 해도 다른 일로 법조계에 회자되고 있었던 셈이다.
<하창우 "상고법원 반대한다고 세무자료까지 볼 줄은…치졸하다", 2018. 6. 29. 중앙일보>
위 사시존치 TF 문건 기사에 따르면, 하창우 변협 회장은 대한변협 감사를 압박하고 국회 법사위에 강한 로비를 진행하였으며, 사법시험 존치 시위를 위해 막대한 노력을 하는 등 다양한 각도의 활동을 진행했다.
그 결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단체인 한국법조인협회(한법협)에서 대한변협 회장을 업무방해로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대한변협 회장 대규모 퇴진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하창우 변협 회장 고발…"사시존치 TF 감사 방해했다", 2015. 12. 9>
<한법협, 하창우 대한변협회장 퇴진 요구 시위, 2015. 12. 9. 법률신문>
서울변회와 달리 대한변협의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
국회가 아니라 법무부가 움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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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일은 로스쿨 제도에는 법안 통과 이상으로 역사적인 날이다.
<법무부, "사법시험 2021년까지 폐지 유예", 2015. 12. 3, 법률신문>
[법무부(장관 김현웅)가 2021년까지 4년간 사법시험 폐지를 더 유예하겠다는 입장을 3일 밝혔다. 사시를 좀 더 존치시키면서 그 기간 동안 적절한 최종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도입에 따라 사시는 당초 2017년 폐지될 예정이었다.]
요컨대 본래 법안에 따르면 2017년 폐지 예정이었던 사법시험 제도를 2021년까지 유예하겠다는 방안이었다.
일반적으로 법안은 국회에서 의결하기는 하지만 70%(정부에서 의원을 통해 입법하는 경우까지 합하면 90%) 이상 정부 발의를 통해 입법된다. 바꿔 말하면 법무부에서 이와 같은 유예 안을 발의할 경우 국회 법사위 및 본회의에서 의결될 가능성은 거의 100%에 가까웠다.
이러한 법무부의 제도 도입은 대한변협의 로비에 더하여 당시 청와대에 있던 검찰 출신 법조인들이 움직였다는 후문이 있다. 물론 사실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운 소문이다.
다만 그 다음 해인 2016년에 대한변협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에게 이른바 ‘테러방지법’에 대한 논란이 많은 찬성의견서를 보냈다는 점, 하창우 당시 회장과 변협 법제이사 등 소수 인사의 논의만을 거쳐 찬성의견서를 보냈다는 제반사항을 고려해보면 꼭 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변협 "테러방지법, 人權대책 갖췄다", 2016. 2. 26. 대한변협>
이에 대해서는 민변과 한법협의 강력한 항의가 잇따랐고, 결국 하창우 회장이 대한변협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했다.
<하창우 변협 회장 “테러방지법 찬성 의견서 논란 유감”, 2016. 2. 29. 서울신문>
[하창우 회장은 오전 서울팔래스호텔에서 열린 2016년 정기총회에서 ”테러방지법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회원들의 중지를 모으지 못한 점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29일 말했다.
하 회장은 “변협의 정치적 중립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하며 “이런 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약속한다”고 말했다.
인사말 직전 대의원 중 한 명이 의견서 전달을 비난하는 발언을 외치다가 집행부의 제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법무부의 요구에 충격을 받은 것은 로스쿨 재학생들이었다.
로스쿨 재학생들은 자퇴서를 일괄 제출하고, 법무부 앞에서 3,000명의 시위를 벌이는 등 법무부와 극한 대치에 이르렀다.
<로스쿨 학생들 자퇴서 일괄 제출…곳곳서 1인 시위, 2015. 12. 8. 연합뉴스>
<로스쿨 변호사들 "사시폐지 '유예' 철회 않으면 법무부장관 퇴진 운동", 2015. 12. 6>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변호사로 구성된 한국법조인협회는 6일 법무부의 사법시험 폐지 '유예' 입장을 즉각 철회하고 법무부장관은 국민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한국법조인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유예 입장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법무부 장관의 퇴진운동을 강력히 진행할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운동은 법조계로 불붙어 로스쿨 출신 변호사 단체가 결성되고, 직접 법무부장관 퇴진 운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법무부는 사시유예안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법무부 사시유예안 사실상 철회"…로스쿨원장단 출제 거부 '철회', 2015. 12. 16. 머니투데이>
이후 변호사시험 거부, 행정소송 등의 사안이 있었지만 사실상 2주 정도의 시간 동안 중요한 일은 다 일어났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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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현재, 사법연수원은 마지막 사법연수원 입소식을 치렀다.
<'끝둥이' 마지막 사법연수생들 입소…역대 최대 여성 비율, 2018. 3. 2. 중앙일보>
여러 장점과 역사를 지녔지만 더 이상 사법연수원 시대는 법조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사법연수원 제도가 남긴 병폐는 법조계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한참 후 검찰의 병폐나 대법원의 문건 사건 등은 사법연수원의 ‘기수 문화’, ‘서열 문화’의 병폐가 낳은 결과라 할 것이다.
하지만 로스쿨 제도가 살아남았고, 또한 앞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법연수원의 실패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로 ‘대의명분’이다.
개인적인 경험담으로 당시에 일이 있어 국회를 다녀오다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는 서울대로스쿨 학생들을 본 적이 있는데, 자신의 권익과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을 조화시키며 행동하는 것이 이채로웠던 기억이 있다.
모든 사회운동이 그렇듯 결국 당사자가 가장 강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의 권익이나 피해가 걸려있다고 하더라도 그 행동이 사회적 이슈나 대의명분에 어긋난다면 그 운동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이 당시의 국민적 여론은 ‘사법시험 존치’에 더 가까웠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사법개혁’이라는 대의명분은 로스쿨이 태생부터 가지고 있는 강력한 명분이었고, 한국 법조계가 나가야 할 길이기도 했다.
앞으로 로스쿨 제도가 한국에서 정착하는 것도, 결국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을 얼마나 실현시키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