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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Sep 08. 2017

난임은 있어도 불임은 없다

우리 시대의 난임 上

 저출산의 시대에 난임을 외치다


   요즘 시대의 슬픈 농담이 있습니다. 학교 갈 때는 대학 가라고 성화고, 대학 가면 취업하라고 성화고, 취업하면 결혼하라고 성화고, 결혼하면 애는 안 낳냐고 성화고, 첫째 낳으면 첫째 외로울 테니 둘째 낳으라고 성화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식들 결혼시켜 놓으면 자식이 자기 애 데리고 와서 봐달라고 성화라고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 '성화' 시리즈는 돌림노래였던 겁니다소오름


일러스트: 순두부 / 출처: 경향신문(2017.01.02) - 2107 신년기획 [맘고리즘을 넘어서] 1편에 실린 일러스트.


    돌림노래의 한 소절 넘어가기도 녹록지 않은 현실이지만, 여기서는 그중에서도 '결혼했으면 애 낳아야지' 구절을 떼어서 볼까 합니다. 어느 하나 맘대로 되는 게 없지만 아이를 가지는 건 특히, 유난히, 절대적으로(부사를 세 개나 썼습니다) 전혀 (하나 더 썼네요) 맘대로 안됩니다. '자식은 내 맘대로 안된다'는 말은 알고 보니 잉태될 때부터 해당되는 말인 거죠. 임신 출산의 영역에서 '의느님'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긴 하지만 의도한 때에 척척 임신할 수 있는(혹은 임신 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없다고 할 수 있겠죠. 


공부할 수 있을 떄 공부하느라, 일할 수 있을 때 일하느라 늦었습니다만. 


    게다가 유례없는 저출산 시대입니다. 특히 35세 미만 여성의 출산율이 줄었다고 하죠.1)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실패로 돌아가고, 젊은 사람들은 대책도 없이 출산만 강조하는 정책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2) 저출산의 문제는 여러 측면이 있지만, 비혼이 늘고 결혼이 늦어지면서 출산을 원하게 되는 나이대 자체가 올라간 여성들에게는 생리적인 난임의 문제가 큽니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낳고자 하는데도 장벽에 직면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분명 중요한 접근 중 하나일 겁니다. 

1) "인구절벽 성큼"… 지난해 출생아 수 역대 최저치 조선비즈 2017.08.30

2) 출산 강조에 젊은 층 거부감... '가족행복 지원'에 방점 동아일보 2017.09.07



설마 내가 안될 리가, 설마 우리가 그럴 리가

 

    임신 출산 커뮤니티에서도 난임은 가장 뜨거운 주제입니다. 사연들은 비슷합니다. 결혼 초반에는 의도적으로 피임을 하기도 하고 언제쯤 낳으면 좋을지 시기를 가늠해보기도 하지만 이 정도면 됐다, 싶어 가지려고 노력할 때는 막상 생기지 않더라. 결혼은 내가 제일 먼저 했는데 친구들, 올케들, 동서들이 하나 둘 먼저 낳고 어쩌다 보니 나만 남았더라. 이 시점에 왜 하필 나일까,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은연중에 '나는 원할 때 임신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거든요. 문제는 임신은 해보기 전에는 될지 말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임신의 확률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두 가지 개념은 가임력수태능입니다. 

가임력(fecundity)            1회의 피임 없는 월경주기에서 임신하여 생존 태아를 출산할 수 있는 비율
수태능(fecundability)     1회의 피임 없는 월경주기에서 임신할 수 있는 비율

    수태능이 임신까지만의 확률을 본다면 가임력은 출산까지 성공할 확률을 보는 것이 차이입니다. 건강한 부부의 경우 정상적인 성생활을 통해 한 달 만에 임신에 성공할 확률(수태능)이 20-25% 정도 된다고 해요. 3개월 만에 성공확률이 절반이 조금 넘는 57%이고 6개월이면 72%, 1년간 노력한 경우에는 85%에 달합니다. 열 커플 중에 여덟아홉은 1년 안에 임신이 된다는 얘기죠. 


이런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 것이 진짜 건강한 부부!

    그래서 난임을 정의할 때 '1년'이라는 기간이 등장하는 겁니다. 1년 동안 특별히 피임하지 않고 주기적인 부부관계를 가졌는데도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건강한데도 왠지 운때가 안 맞아서 안된 15%'이거나 둘 중 누군가의 임신 관련 기능에 이상이 있다는 뜻이 될 겁니다. 전자는 열에 한두 명입니다. 이분들은 치료의 영역에 한 발만 들어서도 간단히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 후자라고 봐야 합니다. 원치 않으면 모르되, 원하면서도 '나는 전자겠지'라고 믿고 시간을 보내는 건 과하게 낙천적인 것이지요. 




난임에 관해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난임의 진단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부가 피임을 하지 않고 1년 이상(만 35세 이상은 6개월 이상)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여도 
임신이 안 되는 경우

    원래의 진단기준에는 나이 제한이 없습니다. 어떤 나이라도 1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난임으로 치료받을 수 있지요. 단 여성의 결혼 평균 연령도, 초산 연령도 이미 30대로 넘어온 지 오래기 때문에 연령에 따른 위험도에 대한 파악은 필수입니다. 난임의 경우에도 여성이 만 35세 이상일 경우는 좀 더 빨리(6개월 후) 원인을 체크해보길 권하고 만 40세 이상인 경우에는 기다리지 말고 곧장 검사를 받도록 권장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남자 쪽의 난임 요인도 점점 비율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느는 것 이상으로 '검사를 받는 비율' 자체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보는데요.3) 고무적입니다. 놀랍게도 '임신에 대해서라면 나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며 병원의 검사를 거부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있거든요근자감. 난임의 원인은 양쪽 누구에게든 있을 수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검사받고 치료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3) 남성 난임 환자 5년 새 55% 늘었다... 여성 증가율 압도 연합뉴스 2017.09.05


    나이가 많을수록 바로바로 병원에 가보길 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자꾸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임신에 대한 부부의 의지가 확실하다면 시간을 끌지 않는 게 곧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길이거든요. 이것은 비단 여성의 몸이 다달이 노화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가벼운 시술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게 치료의 정석입니다. 한두 단계에 성공한다면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앞일은 모릅니다. 


    현대의학에는 난임을 위해 보조생식술이라고 불리는 여러 시술(배란 유도, 인공수정, 체외수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다만 오늘 병원에 간다고 즉시 그런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내원하면 혈액 검사해야 하고 정액검사도 해야 하고 배란 유도도 해봐야 하고 안되면 나팔관 조영술도 해야 하고 그 와중에 근종이 있다면 근종도 제거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경과돼서 또 피검사해야 하고... 첩첩산중입니다. 게다가 생리주기가 맞지 않으면 검사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몇 달에서 일 년이 우습게 흘러갈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임은 없다


    그러나 '난임은 있어도 불임은 없다'는 말은 진짜입니다. 가지를 쳐내고 핵심만 쓰면 '불임은 없다'가 됩니다. 임신은 불가능(不) 한 게 아니라 어려울(難) 뿐이고 '언제 올지'는 여전히 모르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오긴 온다는 것이 요즘의 정석이고 상식입니다. 그러니 '내 나이 몇 살에 아이가 갖고 싶어 졌더라도' 막연히 포기하기에는 이른 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단은 갖고 싶어 진 그 순간에 행동하면 됩니다. 포기는 의사를 만나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아요. 


    서양의학이 발전시킨 보조생식술은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케 하는 수준까지 올라갔습니다거의 삼신할머니의 영역. 이 놀라운 기술의 발달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간혹 난임으로 고민하면서도 병원 시술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분도 만납니다. 물론 한의학은 내 몸의 원래 기능을 정상화시키는 데 특화되어 있긴 하지만 시간이 금이라는 골든룰은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지름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해야지요. 한의학의 치료는 평소 건강한 자궁을 관리하거나 임신 후 착상을 돕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산후관리에도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고요. 그때그때 가장 좋은 선택지를 선택하면 됩니다. 


    난임에 관한 글은 총 세 편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난임의 시술적 치료에 대해 효과와 부작용을 가감 없이 들춰볼 생각이고요. 마지막 글에서는 그 모든 시술을 둘러싸고 난무하는 '임신에 관한 속설'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난임 中 으로 이어집니다.)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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