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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Sep 01. 2017

혈액순환 되돌리기 실전

냉증(冷證)과 열증(熱證) 사이 下

몸이 차다는 것의 의미


    몸 어딘가가 차다는 것은 거기에 따뜻한 혈액이 충분히 돌고 있지 않다는 뜻이겠죠. 제가 환자들에게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 잘 드는 예 중 하나가 '예산 편성'입니다.


    우리 몸이 하나의 나라라고 생각해보는 겁니다. 뇌가 정부라면 신체 각 부분이 시도 지역이 될 겁니다. 뇌는 매일 매 순간마다 '혈액'이라는 예산을 편성합니다. 혈액은 세포를 먹여 살리는 산소나 양분을 날라주고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제때 수거해주어야 합니다. 갖고 있는 예산이 풍부해서 어디에나 넉넉히 보내주면 좋겠지만 예산은 어디까지나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많이 필요한 부분에 많이, 적어도 되는 부분에 적게 보낼 수밖에 없겠죠. 


    몸에서 혈액을 가장 많이 요구하는 기관은 아마도 뇌 자신일 겁니다. 잠시라도 공급이 안되면 나라가 망해버리거든요 무정부 상태가 되는 거죠. 그리고 심장, 신장과 같이 늘 일해야 살아있을 수 있는 필수적인 장기 체온 유지, 호흡과 같은 생명유지 활동도 우선순위가 높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케바케'입니다. 밥을 먹고 나면? 소화시키기 위해 위나 장에 많은 혈액을 보내야겠죠. 밤길에 강도와 마주쳐 도망쳐야 한다면? 교감신경을 자극하고 하체 근육에 집중적으로 혈액을 보내 전속력으로 달려야 합니다. 술 마신 다음 날 아침이면? 알코올 해독하느라 바쁜 간과 신장에 몰아줘야죠. 실시간으로 바뀌는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 몸의 예산 편성은 칼같이 진행됩니다. 

몸은 기가 막히게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기계입니다. 자비 없는 우선순위가 존재하죠.


    몸에 혈액이라는 예산이 적으면 우선순위가 낮은 것부터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 - 이를테면 피부의 윤기라든지 머리카락, 손발톱 같은 것들이지요. 마찬가지로 손발은 몸의 끝이고 혈액을 펌핑해주는 심장에서 가장 멀리 있기 때문에 예산을 편성받기가 언제나 불리합니다. 여자의 몸은 지방이 많고 근육량이 적어 빈혈에 노출되기 쉬운 데다 심지어 가임기 내내 주기적으로 출혈이 있습니다. 즉 적은 예산이 그나마도 어딘가로 새고 있는 거죠. 남성보다 여성에게 수족냉증이 많은 한 가지 이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수족냉증과 자궁냉증의 상관관계


    그렇다면 자궁과 난소는 어떨까요? 여자 몸에서 자궁과 난소는 매우 중요한 장기이긴 하지만  '생존'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손발과 마찬가지로 우선순위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관여할 뿐이기에 극단적인 경우 적출해도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장기지요. 이 경우 몸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면 우선순위가 뒤로 밀리게 됩니다. 평소 생리가 규칙적인 사람도 몸이 너무 힘들 때는 생리를 거르게 되곤 하잖아요? 사실 이 부분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힘들고 피곤하면 발기가 잘 안 되는 것과 같아요.


    조선 영조 42년 유중림(柳重臨)이란 학자가 쓴 <증보산림경제>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조선시대 생활백서'같은 책인데요. 건강과 생활관리에 관한 내용을 다룬 '섭생'편에 '유자상(有子相)'과 '무자상(無子相)'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자식을 쉽게 낳을 수 있는(혹은 반대의) 여성의 형상'에 대한 묘사인데요. 여러 내용이 있는 가운데 '손바닥이 붉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의외죠? 그렇지만 순환의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이 부분이 꽤 설득력 있는 주장일 수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아랫배를 '단전(丹田, 붉은 밭이라는 뜻입니다)'이라 부르고 인체의 혈과 양기가 모이는 곳으로 봅니다. 몸이 아랫배를 따뜻하게 하면 몸 전체가 훈훈해지는 경험 있으실 거예요. 임상에서 보면 손발이 찬 사람 중에 아랫배가 찬 사람이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이에요. 더불어 생리통 등 월경과 관련된 문제를 호소하는 빈도도 높죠. 즉 손발이 차다는 표증 아래에 있는 본질을 아랫배의 냉증으로 보고 치료해 보면 호전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전은 대략 '배꼽아래 세 치'를 이른다고 합니다. 배꼽과 치골뼈 사이를 5등분했을 때 배꼽에서부터 3/5지점이라고 보면 돼요.


    가볍게 생각한 수족냉증과 때마다 찾아오는 생리통을 연결해서 생각해보세요. 혈류가 원활하게 돌지 않으면 당연히 해당 장기의 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젊어서는 생리통, 덩어리 진 생리혈, 월경전 증후군과 생리불순일 뿐이지만 오래 지속되면 자궁근종이나 난소낭종, 난소 기능 저하와 같은 무시무시한 결론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임기 내내 단전의 냉기가 지속되면 '상열하한(上熱下寒)'이라는 갱년기의 증상도 더 악화될 거예요. 



냉증과 열증은 한 끗 차이


    양방 생리에서 말하는 '체온'과 달리 한의학에는 '몸이 차다(한, 寒)' 혹은 '뜨겁다(열, 熱)'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생리적인 한열도 있고(타고난 체질) 병리적인 한열(냉증과 열증)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후자에 대해서만 말하겠습니다. 특히 병리적인 한열은 실제 체온과는 무관합니다. 손발이 차도 심장에는 열이 몰려있어 불면증과 잦은 구내염이 시달리는 사람도 있고, 얼굴로 열이 화끈거리며 올라오지만 발은 양말을 아무리 껴신어도 시린 사람이 있거든요. 


    이 경우 한의학에서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는 조금 생소한 개념을 적용해 깨어진 밸런스를 바로 잡는 치료를 합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 물의 기운은 올라가고 불의 기운은 내려간다는 뜻

자연의 섭리라면 차가운 물은 아래로 내려가고 뜨거운 불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을 띱니다.
수승화강은 '인체'라는 유기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반대의 흐름이 있어서 양극화되지 않는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는 한방 생리 이론입니다. 

단전을 따뜻하게 하는 것도, '두한족열(頭寒足熱: 머리는 차갑게, 발은 따뜻하게 하라)'이라는 전통적인 건강의 지침도 모두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호르몬에 지배당해 부분적인 냉증과 열증 사이를 오가는 여자들이나 스트레스로 머리에 열이 몰려 두통과 불면에 현대인들에게 아주 유용한 치료죠. 

'수승화강'은 한의학적 인체생리의 핵심 개념입니다. 원래 자연의 방향성대로라면 우리 몸은 양극화 되어버리기 때문에 반대의 힘이 '순환'을 만든다는 이론이에요.


    우리 몸은 복잡한 기계와도 같아서 증상이 같아도 기실 전혀 다른 병리 현상일 경우도, 같은 원인인데 증상은 정반대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성의 냉증과 열증은 정반대 증상 같지만 같은 해법을 적용해야 하죠. '수승화강'을 이용해 한열의 밸런스를 잡는 것과 더불어 원활한 순환에 필요한 개념이 혈관의 운동성입니다. 



순환을 단련하는 방법


    혈관을 운동시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운동입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모두 도움이 되는데요. '운동'이라고 단순하게 썼지만 메커니즘을 뜯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순환의 주체인 심장의 출력을 높이고,

    2) 근육의 산소 요구량을 높여서 혈액이 인체 말단까지 속속들이 공급되도록 만든다.


    근육은 중력에 대항해서 서있거나 앉아있는 것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기 위한 자세 유지근 움직이거나 물건을 들었다 놓는 등 운동을 위한 운동근이 있는데요. 자세 유지근은 늘 일정한 양의 혈액을 사용하지만 운동근은 실제 운동할 때에만 혈액을 집중적으로 가져다 쓰거든요. 손발과 같은 인체 말단에는 운동근만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으면 혈관에 혈액이 충분히 채워질 일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몸 구석구석 근육의 혈관을 운동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에요. 


평상시의 심장과 운동할 때의 심장. 너무 평화로운 나라는 위기에 취약하게 마련입니다. 순환기도 마찬가지구요.


    차가운 부위를 인위적으로 따뜻하게 해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온찜질이나 뜸, 족욕이나 반신욕, 파라핀 요법 등이 대표적인 온열요법이죠. 국소 부위에 열을 가하면 혈관이 확장되고 확장된 공간에 혈액이 몰려 따뜻해지는 원리입니다. 일정 시간 따뜻하게 해 준 후 원래 체온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주면 나중에는 온열요법을 하지 않아도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죠. 어렸을 때라면 엄마한테 혼났을 일이지만 냉탕과 온탕을 10~15분 간격으로 오가는 것도 좋습니다. 


    혈액량이 기본적으로 부족하거나 빈혈이 있는 사람은 하체만 집중적으로 따뜻하게 해주었을 때 오히려 빈혈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예산 부족의 문제. 혈액량 자체가 부족한 경우를 한의학에서는 '혈허(血虛)'로 진단하는데 검사에서 빈혈이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우선 빈혈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받은 후 원인에 따라 철분 섭취를 보강하거나 식습관을 교정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빈혈이 아닌 경우라도 한의원에서 혈허라는 진단을 받는 경우에는 혈류량 자체를 늘리는 치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인체의 기관과 기능은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고받습니다. 순환이 잘 되지 않는 것을 내버려 두면 순환기능은 점점 더 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쓰지 않는 예산을 계속 편성해주는 정부는 없답니다. 운동이든 반신욕이든 찜질이든 매일 한 번은 체온이 내 정상체온보다 1도 이상 올라가게 만드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혈관을 운동시킬 뿐 아니라 내 몸의 면역력도 키워줄 거예요. 




(다음 주에는 '난임'에 관한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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