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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Aug 25. 2017

수족냉증과 안면홍조 사이

냉증(冷證)과 열증(熱證) 사이 上

냉수족증? 아니, 수족냉증!


    저는 언니가 셋, 딸만 넷인 집의 '또 딸'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산 셈이죠. 태아 성별 감별 따위 없이 '낳아봐야 아는' 그 시절의 출산은 여러 가지 의미로 짜릿했을 겁니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나온 제가 아들이 아닌 바람에 세네 곱절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부조리한 시절이었지요. 어쨌든 그 시절, 또래의 세 언니는 제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작은 사회였습니다. 이 형제관계야말로 제가 두고두고 여성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중에 저와 다섯 살 터울이 지는 큰 언니는 어릴 때부터 손이 차가웠습니다. 언니가 슥 다가와 갑자기 등짝이나 목에 손을 쑥 집어넣으면 동생들은 깜짝 놀라 펄쩍 뛰어오르곤 했지요. 손발이 차가운 언니를 두고 우리는 차가운 손발을 가진 병이라는 뜻으로 '냉수족증'이라는 없는 이름을 만들어 부르곤 했습니다. 사실 같은 증상을 일컫는 '수족냉증(手足症)'이라는 실제 이름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지요. 손발이 시린 증상에 시달리는 것이 비단 울 큰언니뿐만은 아니라는 것도 미처 알지 못했던 시절입니다.

안그래도 잘 놀라는 저는 펄쩍 뛸 만큼 놀라곤 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남편에게 곧잘 합니다. 흐흐.


    저 역시도 20대 때 손발이 차가운 편이었습니다. 배 아플 때 만져주는 엄마 손은 항상 따뜻한데 난 왜 엄마를 닮지 않았을까 생각하곤 했지요. 하다못해 남편과 사귀던 시절 처음 프러포즈 멘트가 '너의 차가운 손을 내가 잡아줄게' 였을 정도니까요.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남편의 손도 늘 따뜻했습니다. 손이 어쩜 그렇게 따뜻하냐고 물어봐도 남편 역시 답을 몰랐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서 그렇다는 뻘대답을 하곤 했지요. 나와 우리 언니들만 빼고는 손이 다 따뜻했던 걸까요?



차가운 손발, 당연하다고 느끼시나요? 
그 시절, 큰언니의 찬 손에 버금가는 차가운 손 때문에 누구 손을 잡는 게 미안할 지경인 때도 있었습니다


    저의 연애담 따위야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합니다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냉증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냉증을 겪는 이들 중 여자와 남자의 비율이 3:2 정도라고 하는데요. 또한 같은 연구에 따르면 서양 여성보다 동양 여성이 더 빈번하게 경험하고요. 일생 중 여러 시기에 경험하지만 특히 증상을 호소하는 연령대가 20~30대, 그리고 출산 후라고 합니다.1)2) 그러니 20~30대의 동양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아주 높은 확률로 냉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1) 배경미, 김규곤, and 이인선. "부인과 환자의 냉증과의 관계에 대한 조사 연구." 대한한방부인과학회지 15.2 (2002): 101-13.

2) 최석영, et al. "젊은 여성의 냉증과 건강지표들의 상관성에 관한 연구." 대한한방부인과학회지 24.4 (2011): 62-70.


    손이 좀 차갑다고 뭐가 대수일까. 저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연령에 따라 정상체온의 범위가 다르듯이 건강한 몸이라도 부위에 따라 체온이 다르긴 합니다. 우리가 체온이라고 부르는 것은 귓속이나 입안과 같은 몸속 깊은 곳의 심부체온이고 겉으로 드러난 피부나 신체 말단의 온도는 실제로 더 낮거든요. 하지만 언제나 차가운 손이란 여자의 몸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신호등의 노란 경고등이 깜박깜박거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이번에는 열증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몸 어딘가가 뜨겁다,라고 느낀 적 있으신가요? 감기로 인한 이마의 미열, 갑자기 두려움에 맞닥뜨린 순간에 피부 전체로 바짝 퍼지는 열기, 발바닥이 이유 없이 화끈거려서 회사인데도 양말을 벗어던지고 싶었던 기억. 발열이라고 하면 바이러스나 세균으로 인한 염증반응과정에서 생긴 열감을 가장 쉽게 떠올리지만 열은 생각보다 다양한 경우에 우리를 찾아옵니다. 몸 전체에서 열이 나는 경우도 있지만 심부체온은 떨어지고 있는데도 몸의 일부만 뜨끈뜨끈할 때도 있지요.


    한편 현실의 체온과 별개로 덥거나 추운 느낌이 있습니다. 매우 자각적인 이 느낌이 실제 체온과 조합되면 경우의 수는 더 다양해지죠. 


열은 나는데 추운 경우, 얼고 있는데 화끈거리는 경우. 냉증인가요 열증인가요?

    1) 실제로도 열이 있고 나도 덥다    

    2) 실제로 열이 있는데 춥게 느껴진다

    3) 실제로는 체온이 떨어지는데 열감이 느껴진다

    4) 실제로도 저체온이고 느껴지는 것도 춥다


    희한하게도 이 네 가지 경우가 모두 실화입니다. 더위는 식히고 추위는 데우면 되는데 매사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는 게 골치가 아픈 부분이죠. 




    여기까지는 그냥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흔한 열증입니다. 그렇다면 여자가 일생을 통해 겪는 가장 뚜렷한 열증은 무엇일까요? 이르면 30대 후반부터 대부분은 40대 후~50대 초반에 느끼는 '상열감'입니다. 보통은 시각적인 '안면홍조'를 동반하지만 보이는 홍조보다 자각하는 열감이 더 중요한 증상으로 여겨집니다. 수족냉증이 여자가 일생동안 겪는 냉증의 대표주자라면 열증의 대표주자는 갱년기에 나타나는 상열감이에요. 


갱년기는 물리적인 나이보다 개별 증상이 더 중요한 진단 포인트가 됩니다. 그 중에서도 상열감은 항상 증상 표의 맨 첫번째, 가장 높은 점수를 차지하죠. 



냉증과 열증 사이는 혈관 운동성의 문제


    근육도 아니고 혈관도 운동을 하나? 싶으시겠지만 혈관도 운동을 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순환기계는 심장+혈관+혈액이 협동하는 체계입니다. 심장에서 힘차게 밀어주고, 혈관이 깨끗한 벽과 탄력 있는 운동성으로 받아들여주고, 혈액이 끈적이지 않고 유동성 있게 흘러가면 순환에는 문제가 없죠. 혈관은 살아있는 고무줄처럼 만들어진 구조입니다. 그래야 혈액이 필요한 곳에 더 혈액을 모아주고 필요 없는 곳은 일시적으로 혈액 공급을 줄여 효율적인 순환을 가능하게 하거든요.  


    수족냉증은 평소 순환의 저하로 인체 말단에 분포한 모세혈관의 운동성이 떨어져서 생기는 증상입니다. 반면 갱년기의 상열감은 폐경에 즈음해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줄면서 정상적이던 혈관운동성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죠. 이 두 증상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평소 순환 기능이 떨어지는 여성들은 갱년기의 내분비 변화에 더 격렬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평소에 혈관의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근육이 약하면 근력 운동을 하면 됩니다. 심폐기능이 약하면 유산소 운동을 하면 되고요. 그렇다면 혈관 운동성도 모종의 트레이닝으로 단련할 수 있는 걸까요? '동양 여자로서 20대와 30대를 지나 출산과 산후 후유증을 겪어야만 하는 우리'라면, 일생을 거쳐 남자보다 훨씬 가혹한 호르몬 변화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여자라면, 순환 기능의 문제를 노년의 일로만 미뤄둘 순 없습니다. 미리미리 혈관의 건강을 관리해야 20대의 수족냉증도, 50대의 안면 홍조도 수월하게 넘길 수 있을 거예요.


(다음 주, 냉증과 열증 사이 '실전편'으로 찾아오겠습니다.)




미미최(최혜미)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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