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난임 中
* 이번 글은 그 어느 때보다 '정보성'이 짙은 글이 될 거 같습니다. 재미없어서 죄송해요.. (평소엔 재밌었나)
나와 당신과 의사선생님과: 셋이서 준비하는 임신
난임클리닉을 방문하고부터는 임신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사람이 '나와 배우자' 둘이 아니라 '나와 배우자와 주치의' 세 사람이 됩니다. 원할 때 관계를 가지고 언제 수정이 될지 알 수 없으며 남편이 배란일에 옆에 없으면 임신이 불가능한 것이 당연한 일이었는데, 처음 난임 병원을 방문해서 의사가 지정해주는 날짜에 관계를 가지고 이미 수정된 수정란을 몸속에 넣을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오묘합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일련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게 되지요.
난임클리닉을 방문해서 받을 수 있는 도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병원에서 진료의 흐름과 순서를 말할 때 '플로우 차트'라는 말을 쓰는데요. 난임클리닉의 플로우 차트를 간단하게 그려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간단한 검사부터 시작해서 '자연임신'을 보조하는 단계부터 시작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케이스 중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나 웬일인지 1년 내에 임신이 되지 않았던' 15%의 부부는 배란이 주기를 조금 더 정확히 파악한다든가 하는 간단한 어시스트만으로 임신에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각 단계에서 임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지요.
단계별로 간단히 살펴봅시다.
사전검사: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병원을 방문하면 여자와 남자는 각각 검사를 하게 됩니다. 남자는 간단한 정액검사만 하면 됩니다. 채취된 정액에서는 주로 다음의 네 가지 항목을 봅니다.
정액의 양 한번 사정했을 때 나오는 정액의 부피
정자의 수 같은 양의 정액에 들어있는 정자의 수
정자의 형태 기형 정자와 정상 정자의 비율
정자의 운동성 정자의 직진 운동성
정자의 양과 단위 부피당 정자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수가 아무리 많아도 기형 정자 비율이 너무 높거나 정자가 직진해서 돌진하는 비율이 적으면 임신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상대적으로 생활습관이나 당시의 컨디션과도 연관이 깊어서 몸을 잘 관리하면 좋아질 수 있어요.
한편 여자는 그보다는 복잡합니다. 우선 혈액검사를 통해서 임신에 관련된 호르몬의 분비가 적절한지 체크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난소예비능을 파악하는 AMH(항뮬러관호르몬) 수치입니다. 난임클리닉에 다녀오신 분들은 '제 난소 나이가 몇 살이래요' 하는 말씀을 종종하시는데, 그 난소 나이를 결정하는 것이 AMH입니다. 사춘기 이후 AMH 수치가 점차 높아지다가 25세에 수치가 정점에 도달하고 폐경기가 가까워질수록 AMH 수치는 점점 떨어진다고 해요.1) 난소예비력을 파악하는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AMH가 가장 유효한 지표로 손꼽힙니다. 다만 이 수치가 임신의 성공률과 절대적인 관련이 있거나, 더 유효한 난임시술의 종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난임클리닉에 방문할 때에는 나의 이전 생리 시작일이 언제였는지 적어도 3주기 이상은 파악한 뒤, 생리가 시작된 지 2~3일 내에 방문하는 게 좋습니다. 생리주기를 통해 배란시기도 파악할 수 있거니와 딱 그때가 혈액검사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거든요. 생리주기가 불규칙하거나 생리가 아예 없거나 주기가 지나치게 길다면 배란 유도를 시도해보는 게 좋습니다.
1) “AMH 검사 활용으로 난임도 맞춤형 치료 가능해져” - 청년의사, 박기택 기자, 2016.11.14
배란 유도: 원할 때에 배란하기
배란 유도라는 과정은 난임클리닉의 기본 초식 중 하나입니다. 사전검사 후 자연임신을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하지만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시험관 시술) 과정에도 포함되어 있거든요. 차이점이라면 자연임신 시도 과정에서는 먹는 약으로 한 개의 배란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고, 시술을 앞두고 과배란을 유도할 때에는 배에 직접 놓는 주사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정도입니다.
약이든 주사든 성분은 우리 몸의 난포를 성숙게 하는 호르몬 성분이에요. 복용(또는 주사)하면서 주기적으로 난소에서 난포가 자라는 것을 초음파로 관찰해야 합니다. 난소가 거의 성숙했다고 생각이 되면 부부관계를 갖도록 일정을 짜주거나 '배란 주사'라는 또 다른 호르몬제를 놓아 정확한 타이밍에 배란이 되도록 대처를 해야 합니다. 지난한 준비과정 중에 딱 한 달에 한번, 며칠뿐인 기회가 시작되는 때이기 때문에 잘 관찰해야 하죠.
배란 유도, 특히 과배란을 유도하는 과정의 위험요소가 '난소 과자극 증후군(ovarian hyperstimulation syn- drome, OHSS)'입니다. 난포가 성숙할 때 나오는 호르몬의 자극이 몸에 영향을 미치는데 여러 개가 한꺼번에 성숙하면서 그 자극이 극대화되는 거지요. 가벼울 때는 '배가 좀 빵빵하다'는 느낌 정도지만 심해지면 복수가 차거나 호흡곤란이 오고 혈액의 구성이 바뀌는 등 위험한 상황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응급 관리를 받아야 해요.
자궁난관 조영술: 난자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여러 번의 배란 유도와 자연임신 시도에도 성과가 없을 경우 꼭 거치는 것이 '자궁난관 조영술'이라는 시술입니다. 자연임신에서 난자가 이동하는 경로가 고속도로처럼 잘 뚫려있는지 파악하는 검사인데요. 질에서 자궁경부를 통해 조영제를 주입해서 자궁부터 난관까지 빈 공간이란 공간은 꽉 채운 다음 X-선 촬영을 합니다. 조영제가 채워진 곳은 하얗게 보이게 되고 막혀있거나 찌그러진 부분은 어둡게 보이게 되겠죠. 이 검사를 통해 자궁의 기형이나 난관의 폐색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검사지만 좀 아플지도 모릅니다. 통증은 케바케.. 저는 되게 아팠어요ㅜ
많은 경우 그렇듯이 자궁난관 조영술도 '검사'인 동시에 '가벼운 치료'를 겸하기도 하는데요. 난관이 가볍게 막혀있다가 조영제가 지나가면서 뚫리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임신 출산 커뮤니티에서 간혹 '조영술 하고 나서 바로 임신이 되었어요!'라는 간증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검사 결과 양쪽 난관의 폐색이 유력하다면 자연임신, 인공수정을 모두 건너뛰고 체외수정으로 직행하는 것을 권장해요.
인공수정이냐, 체외수정이냐: 난임 끝판왕 깨기
위 과정을 모두 거치고도 임신이 되지 않은 경우 난임클리닉의 끝판왕, 보조생식술을 만나게 됩니다. 어느 검사에서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임신이 되지 않은 '원인불명'의 난임부부, 또는 사전검사에서 시험관 시술로 직행할 이유 정자의 심각한 문제, 남녀 체내의 항정자항체 등 가 발견된 부부들도 마지막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야 합니다.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시험관아기)이 대표적이고,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알파벳 약자로 된 여러 가지 기술이 동원되죠.
그렇기에 사실 보조생식술은 의사의 정확한 진단과 시술뿐 아니라 정자와 난자를 처리하는 연구소 기술진의 실력이 시너지를 일으켜야 완성되는 시술입니다. 대부분의 이름있는 난임 병원들이 규모있는 연구소 시설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이유기도 하지요. 이 부분은 난임병원을 선택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드디어 '인공수정이냐, 체외수정(시험관아기)이냐'에 대한 답을 할 차례네요.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의 간단한 개념은 아래와 같습니다.
인공수정 호르몬제로 조절된 여성의 배란 시기에 정액에서 뽑아낸 건강한 정자를 질 내로 주입
인공수정은 간단한 시술입니다. '인공'이라는 말의 어감 때문인지 뭔가 인공적으로 수정을 일으키는 건가 시험관에서 수정란을 직접 만드는 체외수정과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죠. 인공수정에서 '인공적'인 과정은 과배란을 유도하는 것, 정액을 정제해서 양질의 정자를 농축하는 것과 농축된 정자를 자궁에 직접 주입하는 것뿐입니다. 시술시간도 짧고(5분 이내) 시술 후 관리도 특별한 건 없지요.
원인이 발견되지 않은 난임의 경우 체외수정보다 인공수정을 먼저 시도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외수정이 성공률이 높긴 하지만 여러 모로 여자의 몸에 무리가 가고 비용도 비싸거든요. 인공수정은 3회까지, 정부지원이 됩니다. 지원에 대해서는 아래에 표로 정리해드릴게요.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여자의 몸에서 난자를 추출하고 남성의 정액에서 정자를 추출한 다음 시험관에서 수정란을 이루게 해 자궁 내에 직접 주입
체외수정은 시험관아기라고 흔히 부릅니다. 체외, 즉 몸 밖에 있는 어떤 '시험관'에서 난자와 정자를 수정시키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지요.
체외수정의 과정은 한층 복잡합니다. 주사제를 이용해 과배란을 유도하는 것까지는 인공수정과 동일해요. 가장 힘든 점은 여자의 몸에서 과배란 된 여러 개의 난자를 한꺼번에 채취하는 과정인데, 이 과정은 보통 수면마취상태에서 이뤄지죠. '난소 과자극 증후군'과 함께 보조 시술에서 여자가 가장 힘든 과정 중 하나가 아닐까 해요. 수정란을 주입하는 과정은 인공수정 때 정자를 넣듯이 간단히 끝납니다.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했기 때문에 여러 개의 수정란이 만들어질 수 있어요. 보통 연령에 따라 1~3개까지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하게 되는데 그러고도 남은 수정란은 최대 5년까지 냉동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이번의 체외수정 시술에 임신이 성립되지 않으면 원할 때에 냉동된 수정란을 다시 이식할 수 있지요. 아기를 점지해주는 삼신할머니의 역할을 현대의학이 대신하고 있는 셈이랄까요.
체외수정에 대한 정부지원은 난자를 채취해 바로 수정시킨 신선배아 이식 3번, 이전에 채취해 수정시켜놓은 동결배아 이식 3번 최대 6번까지 지원이 됩니다. 고가의 시술이라 인공수정보다 지원도 많이 되는 편이에요.
보조생식술 전 과정을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접근하지 못하는 과정이라면 '착상'이라고 의사들도 말합니다. 다 만들어서 자궁에 직접 넣어주기까지 하는데도 번번이 착상이 되지 않는다면 도리가 없다고요. 체외수정 시술이 완료된 후에 질정이나 주사제를 이용해서 착상을 돕는 호르몬을 공급하기는 하지만 유효한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인 부분이 많습니다. 평소 충실한 몸의 관리가 전제되어야 하는 부분이기도 하겠죠.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바로 그 '관리'라는 부분을 들여다보려고 해요. 무림 비기를 무색하게 하는 임신 잘되는 비법에 대한 각종 속설, 그 속에 숨어있는 각종 음식과 운동, 생활관리에 대한 '카더라'의 비밀을 제 능력이 되는 데까지 한번 파헤쳐볼까 합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스타일이 될 것 같네요.
(다음 글은 우리 시대의 난임 下 로 이어집니다.)
전직 패션 에디터, 현직 마르지엘라를 입은 한의사입니다.
요즘 여자를 위한 한의원, '달과궁한의원'에서 진료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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