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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Jul 17. 2024

일로 만난 사이, 그게 우리 사이

일로 만난 사이에는 일 잘하는 게 다정일까

     지난봄, '민희진'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을 큰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습니다. K팝이나 민희진 씨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도 워낙 화제성이 폭발했던 사건이라 한때 유행했던 밈('맞다이로 들어와'라든가)을 아마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겁니다. 전대미문의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거침없는 말과 전형적이지 않은 태도, 예측을 뒤엎는 사건의 전개로 인해 몇 달간 도파민 터지는 모먼트의 연속이었지요.


그전에도 그녀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적 있습니다. SM 엔터테인먼트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등기이사에까지 오른 인물, 미대 출신으로 '콘셉트 장인'이라 불리던 독보적 크리에이터, 퇴사 후 BTS가 소속된 '하이브'에 스카우트되었고 이내 신인 걸그룹 '뉴진스'를 선보이며 K팝 신에 돌풍을 일으킨 사람. 단 몇 줄의 피상적인 문구뿐일지라도 일하는 여자의 이름 앞에 이렇게 근사한 수식어가 붙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이니까요.


일련의 사건은 대략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모회사 하이브에서 경영권 찬탈, 배임 등의 혐의를 씌워 감사를 진행하는 한편 그를 자회사 '어도어'의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려 시도한 것, 해임 권한을 하이브가 함부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민희진 씨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인용된 것, 잘잘못을 떠나 80%의 지분을 가진 모회사로 하여금 해임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세간의 예측을 깨고 결국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이 모든 일이 떠들썩하게 회자되는 동안 하이브의 시총은 1조 가까이 날아갔고 민희진이라는 개인의 브랜드 가치는 역설적으로 치솟았습니다.


누군가는 이 일이 K팝이 가진 위상의 실체를 밝히게 된 계기라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K직장인의 애환에 감정이입을 했고, 누군가는 성공한 여자가 사회생활에서 겪는 (더러운) 일들에 방점을 찍기도 했습니다. 각자 일하는 자아의 어느 면모를 투영해서 보는 가운데, 제가 가장 오래 생각했던 주제는 '일로 만난 사이'의 인간관계였습니다.




     민희진 씨에게 '일로 만난 사이'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한 회사를 이끄는 대표지만 모기업에서 월급을 받는 자회사의 월급사장이기도 하고, 경영자인 동시에 아티스트의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제작자이기도 합니다. 그 각각을 고려하면 그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1. 모기업에서 그를 평가하고 돈을 주는 사람들

2. 그가 경영하는 자회사(어도어)에 소속되어 일하는 사람들

3. 제작자로서 대등한 관계로 만나는 외부(업계) 사람들


맨 처음 갈등을 촉발하고 키운 것은 1번 관계입니다. 민희진 씨를 평가하고 임명하는 권한을 가진 이들은 배임을 주장하고 대표자격을 박탈하려 했지요.


그 사이 2번과 3번의 관계들이 그를 지지하고 나선 것은 인상적인 광경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성과는 좋지만 알고 보니 숨은 빌런이었던 개인의 일탈'에 대한 사회적 고발인 줄 알았는데, 당사자가 목소리를 내고 함께 일했던 개개인이 지지의 '샤라웃'을 보태면서 사건은 다른 국면을 맞이했기 때문이지요.  


작업을 하면서 저에 대한 존중이 어마어마하다고 느꼈고
이만큼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이런 제작자를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뉴진스의 <Ditto>와 <OMG> 뮤직비디오의 신우석 감독 @침착맨 유튜브 (이후 민희진 지지탄원서 제출)


단순히 주문된 콘텐츠가 아닌, '내 작업'이라는 마음을 처음으로
심어준 사람이고 지금까지 그 마음을 상기시기는 말을 매일 해준다.
그 덕에 일 중독이 아직까지 멈추지 않고 있다.

                                    <Hype Boy> 뮤비의 감독 @본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아티스트를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그의 진짜 모습을 끌어내는 데 집중하던 모습,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항상 챙기던 면모,
그리고 신뢰를 바탕으로 일을 믿고 맡기는 리더십이 인상적이었다.

                              BTS의 뷔 앨범 전곡 뮤비를 촬영한 감독 @본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3년간 같이 일하면서 안무가로서 퍼포먼스 디렉터로서
작업하는 방식을 전적으로 믿고 맡겨 주셨던 분,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뉴진스와 회사를 위해 묵묵히 일하는
어도어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사람

                           같은 회사에 소속된 퍼포먼스 디렉터 @본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강강약약의 표본 같은 사람, 평생 진심을 담아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

                            함께 오래 일했던 한 스타일리스트 @본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정말 열정이 가득하고 진심이신 분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Hype Boy>의 3D작업자 @본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일로 만난 관계에서 '함께 해서 보람 있었고 앞으로도 또 함께 일하고 싶다'는 지지의 선언을 받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그 개인에게는 굳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하는 선택지도 있었을 겁니다. 소위 '엔터판'이라는 곳이 좁디좁고, 이 지지 선언으로 인해 한편으로는 더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대기업과 척지는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면 더더욱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뚫고 지지해 주는 업계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외로운 싸움을 지속했던 민희진 씨에게 분명 힘이 되었을 겁니다. 아마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목소리를 낸 이유겠지요.


일로 만난 사이는 친절하고 다정한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좋은 말로 에둘러 말하면 소통이 안 되고, 상처 줄까 봐 나쁜 평가를 피하기만 하면 발전이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함께 했던 일의 성과가 좋았다는 것만으로 다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빛나는 성과를 냈지만 그 빛의 그늘 아래 함께 일한 사람들을 갈아 넣는 경우도 많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겁니다.


만약 내가 같은 입장에 처한다면 어땠을까, 고민해 보게 됩니다. 결백하다는 전제 하에 어떤 혐의가 씌워지고 언론에 매일 불리한 기사가 쏟아질 때, 함께 일했던 관계들 중 저렇게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 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지지를 얻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까?


위에서 받는 좋은 피드백보다 함께 일한 동료나 아랫사람들로부터 받는 지지가 더 어렵다고 느껴지는 건 지금 제가 리더의 위치이기 때문일 지 모릅니다. 소속된 직원들에게 받는 평가가 무겁기만 해서 민희진 씨가 더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거겠지요.




    일로 만난 관계 중에는 일이 아니었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도 있고, 사람은 좋은데 의외로 일 호흡이 맞지 않아 놀라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의 인간관계와 일로 만난 관계는 분명 다른 결이 있습니다. 그리고 관계의 성격은 지금 나의 위치가 어디인가와 관련이 깊습니다. 아랫사람일 때 참 마음이 편했던 저는 지금의 리더 자리가 그렇게 좌불안석일 수 없거든요.


일로 만난 관계에 대한 생각마저도 우리 부부는 서로 무척 다릅니다. 굳이 극단적으로 대비를 두자면 저는 싫은 말을 하지 않고 부드럽게 대하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사람이고 남편은 '일잘러'로서 서로의 시간을 아끼고 성과를 내는 것에 우위를 둡니다. 그 둘이 결코 상호 대체해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함께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서로 다투는 경우도 생기지요.


민희진 씨가 기자회견을 통해 했던 말 가운데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저는 회사를 친구 사귀려고 다니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말은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고, 예전에 저의 사수였던 에디터 선배가 제게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둘 다 (이제는 민희진 씨까지 셋다) 제가 인정하는 '일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그 말은 상당 부분 맞는 말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리더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성향을 갈아끼울 수가 없는 저는 늘 다정한 리더, 상처 주지 않는 리더십을 꿈꿉니다. 그냥 내 맘 편하자고 택한 쉬운 길은 아닌지 고민하고 애초에 그런 조합이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처럼 불가능한 건 아닐지 의심합니다. 그래도 나 자신을 잃지 않고 리더에도 어울리는 사람으로 거듭나려면,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으로 지속가능하게 일하려면 이 고민을 멈추지 말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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