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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최 Jul 07. 2019

복약안내서를 쓰는 밤의 야근

나는 왜 야근을 멈출 수 없는가.

      오늘도 복약안내서를 쓰느라 늦게 퇴근했다. 불을 끄고 보안 키를 설정한 뒤 나서면서 보니 건물 같은 층의 어느 한 곳에도 불이 켜진 곳이 없다. 이웃한 치과는 최근 야간진료를 주 이틀에서 그나마 하루로 줄였다. 우리는 월화수목금 주 5일 야간진료인데... 함께 불 밝히고 진료했으면 퇴근길에 미뤄둔 진료를 받으려는 환자들에게 아주 적당한 코스가 되었을 텐데! 가끔 화장실에서 만나 정답게 위로도 나누고! 어머 늦게까지 힘드시죠, 사는 게 다 그렇죠 뭐 하하.... 통탄하다 말고 어느샌가 확장하는 나의 오지랖을 주섬주섬 정리한다. 그래, 사는 게 다 그렇다는 건 나의 착각이다. 저녁이 있는 삶과 워라밸과 삶의 질은 얼마나 아름답고 트렌디한 말들인가. 단지 나의 말들이 아닐 뿐이다.


     타인의 삶의 질에 대해 나는 일언반구도 얹을 자격이 없다. 나도 삶의 질을 높이고 싶으니까.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를 누구보다 지키고 싶은 사람이야말로 바로 나다. 저녁이 있는 삶이 도대체 언제였더라... 어제는 함께 일하는 원장님과 저녁식사를 하다가 물었다. 그런데요 원장님, 다들 쉬면서 살죠? 그녀는 내가 안쓰러워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원장님...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예요. 결혼과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은 미친 짓이랍니다. (다행히) 실제로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표정이나 분위기로 볼 때 나 때문에 그녀의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나 개원하고 싶은 마음,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30%쯤 감소한 것이 분명하다. 미안해요, 지켜주지 못해서. 


     아무도 나에게 이 일을 시키진 않았다. 결혼도 신나서 했고 개원도 나 하고 싶은 진료 하겠다고 우겨서 했고 아이는 심지어 가지려고 꾸역꾸역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지금 나의 현재 스코어는 워킹맘, 개원한의사, 대표원장, 직원이 8명인 사업체의 고용주다. 자리를 비우면 바로 티가 나고 아기는 엄마보다 할머니 품을 더 편안해하고 일 잘하는 직원은 구하기 힘들고 은행빚은 꾸준히 많다. 같이 일하는 남편과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운다. 1년 반 전에 계약한 책은 여전히 원고 마감 중이다. 영화 보고 쇼핑하고 핫플에 힙쐬러 다녔던 때가 언제였던가. 정신 차려보니 집과 한의원, 한의원과 집, 일과 육아, 육아와 일 사이를 핑퐁처럼 오가는 생활이다. 가만, 이 일을 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단 말인가. 그때의 나, 제정신이야?




     문제의 복약안내서만 해도 그렇다. 아무도 복약안내서를 이렇게 쓰라고 한 적은 없다. 그저 처음 개원하고 환자에게 한약을 지어 보내면서 '어허 다 먹어두면 좋은 거야!'라고 휘뚜루마뚜루 둘러대기 싫었을 뿐이다. 꽤 긴 시간을 상담에 투자하는데 꼼꼼하게 진단해서 알려주는 현재 몸 상태에 관한 이야기를 환자가 절반도 채 흡수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도 아까웠다. 그래서 약을 보내면서 함께 보낼 복약안내서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 세 번, 식후 30분에 따뜻하게 데워서 드세요'나 '음주와 과식, 인스턴트 음식을 삼가세요' 같은 뻔한 소리 대신 환자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고 상담했던 내용을 요약하고 처방한 한약의 역할과 성분에 관해 안내하고 예상되는 호전 반응과 다음 치료 계획을 공유했다. 처음에는 '이까이꺼뭐'라고 생각하긴 했다.


     한동안은 하루 이틀에 하나나 두 개 정도였던 복약안내서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늘어났다. 진료하는 중간에 어찌어찌 짬을 내서 쓰면 되었던 것이 환자도 늘고 처방도 늘면서 감당이 안되기 시작했다. 하루에 대여섯 개, 정말 많을 때는 열 개씩 써야 할 때도 있다. 단순한 한 장짜리 문서 작업이 아니다. 환자에 대해 파악하고 진단의 정밀도를 점검하고 치료 계획을 설정하고 처방의 방향을 결정해야 비로소 쓰기 시작할 수 있다. 게다가 한의학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한의학적인 치료에 대해 설명하자니 어려운 개념과 용어도 쉬운 말로 풀어써야 했다. 안 해도 되는 일이지만 전문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일단 시작했으면 대충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진료가 끝날 때까지 도저히 짬을 낼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되자 9시가 넘어서도 혼자 남아 복약안내서를 쓰는 날이 늘어갔다.


     시작은 내 일을 '그냥 좀 더 잘' 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적어도 야근까지 하게 되리라고 짐작하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순간에도 문장의 앞뒤가 맞고 구조적으로도 균형이 잡힌 글을 써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내가 싫지만 한때 글 써서 먹고살아본 자의 알량한 자존심도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일단 한번 시작하고 나니 이 한 장의 복약안내서가 환자와의 약속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두는 개인 작업이 아니라 내가 운영하는 의료기관의 공공재 같은 것이 되었다. 그만둘 생각도 없었지만 그만둘 수도 없다. 계획에도 없었고 딱히 다른 보상도 없는 이 시간외업무에 대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까? 




     첫 직장 생활은 패션잡지사의 에디터였다. 늘 시간이 없었고 툭하면 마감에 시달렸다. 그 달 써야 할 원고를 일정한 시기에 넘겨주어야 미술팀이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원고 마감이 닥쳐오면 야근은 필수, 밤샘은 선택이었다. 평소에 조금씩 써두면 되지 않느냐고? 마감러들에게는 그 말은 '평소에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서울대 갈 수 있지 않아?'라는 말이랑 똑같다. 맞는 말 같기는 한데 들으면 이상하게 화부터 나니까. 물론 따박따박 원고를 적립해두었다가 깔끔하게 제출하고 칼퇴하는 (비인간적인) 선배도 있었지만 매사에 벼락치기 스타일이었던 나는 어김없이 한 달에 사나흘은 야근 당첨이었다. 한 달 두 달 그런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마감 때의 야근이 아니면 글이 잘 안 써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퇴근한 텅 빈 회사에 남아서 글을 쓰는 일은 힘들었지만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잡지사 일은 빡셌다. 직장 상사는 단 한 명도 예외가 없이 '쎈언니'들이고 적은 인원에게 많은 일을 해낼 것을 태연하게 요구했다. 거기에 초년생의 버벅거림이 더해지니 매일 눈물 콧물을 쏙 빼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런 나에게 원고와 일대일로 대면하는 시간은 외려 편안하기도 했다. 야근 중에는 같이 마감에 시달리는 선배들과 중간중간 야식도 시켜먹고 회의를 빙자한 수다도 떨고 해 뜰 때 나가서 술도 안 마신 주제에 해장도 했다. 그 시간이 내게는 고된 직장생활 속 작은 일탈이었다. 회사는 전쟁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전우애 같은 것이 있었고 야근은 그 공감대에 정점을 찍는 일이었다. 


      그게 정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다. 잡지사는 일반 회사와 일의 강도나 성격 자체가 다른데 애초에 일하는 방식을 거기서 그곳의 스타일로 배워버린 것이다. 그때는 남자 친구가 9시에 퇴근하면서 '야근하느라 힘들다'라고 말하면 '그게 뭐가 야근이야'하고 웃었다. 주말에 출근하면 수당으로 돈을 더 받는다는 말에 깜짝 놀라기도(부럽기도) 했다. 처음에는 야근을 밥먹듯 하는 것이 당연한 건 줄 알았고 나중에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처음은 중요하다. 새끼오리가 알에서 깨어난 뒤 어떤 대상을 어미로 각인하게 되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는 것처럼 맨 처음 익혔던 일하는 방식은 나에게 대체불가능한 것으로 각인되었다. 




     어쩌면 내가 야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딱히 멈출 생각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혼자 남아 일하면 더 집중이 잘되는 버릇, 야근하고 돌아가는 새벽에 '나 정말 열심히 일했구나'하고 느끼는 비뚤어진 충만감, 일할 땐 일 때문에 집에서는 육아에 치이기 때문에 근무외 시간에 근무지에 남아있을 때만 느껴지는 여유도 한몫한다. 더 잘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하지만 결국 야근을 별거 아닌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 남게 되는 것이다. 야근이 싫다고 말하는 건 나 자신마저 속이려는 고도의 연기일 뿐인지도 모른다! 이 직업이야말로 야근과는 거리가 멀 줄 알았는데 난 왜 지금도 이러고 있는가 고민했지만 정작 범인은 바로 나였다. 젠장.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마도 나이를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일하느라 밤을 새도 그걸 낭만이라고 느낄 만큼의 체력적인 여유가 있었다. 피곤할 때도 깜박 졸고 나면 재부팅한 컴퓨터처럼 다시 빠릿빠릿해질 수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야근이 며칠만 이어져도 피로가 안 풀려 죽을 것 같다. 혼자 남아있는 시간에 집중이 잘 되던 것도 졸리고 피곤하면 예전같지 않다. 게다가 기자로 일할 때에는 마감이 끝나면 하루 이틀 쉴 수도 있고 일 하면서도 중간중간 멍 때릴 수 있었지만 서비스직으로 전환한 지금은 근무시간에 대외용 미소를 탑재하고 반드시 제 자리를 지켜야만 한다. 그 피로도 상당하다. 이제는 일할 때 일하고 일 안할 때 일 안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써놓고 보니 이것 참 아름다운 삶이 아닌가.


     진료 원장을 더 고용하고 낮 시간을 효율적으로 쓴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복약안내서는 낮에 틈틈이 쓰고 미뤄둔 원고들은 점심시간에 쓰거나 집에 가서 쓰자. 공부할 것도 많지만 진료하는 사이사이에 조금씩 해나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미뤄둔 일들이 잘 해결된 적이 있었던가? 모든 일은 되려면 진작에 된다. 욕심껏 일을 벌여놓은 지금만 지나면 가능할까? 구상 중인 다음 프로젝트는? 한의원의 확장은? 출간이 되고 나면 마케팅은? 새로 시작한 브런치 연재는...? 시간을 들이면 들일 수록 노력을 기울이면 기울일 수록 일의 결과가 점점 나아지는 것을 나는 이미 이십대에 경험했고 그밖에 다른 일하는 방식은 아직 잘 모르겠다. 그게 문제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야근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번생은 틀렸다.




진료 중에는 집중해서 글 쓸 시간이 별로 없어서 

주로 진료가 끝난 뒤 혼자 남아 복약안내서를 쓰다가 남은 시간에(혹은 할 일을 미뤄두고) 씁니다. 

야간 진료를 끝내고 불 꺼진 한의원 내 방에 앉아 아무도 시키지 않은 글을 쓰고 있자면 

전용 작업실을 가진 작가라도 된 양 호사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그게 요즘 제가 일상에서 누리는 유일한 사치입니다. 


[복약안내서를 쓰는 밤. 2019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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