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ODY MY CHOICE
몸이란 본질적으로 생명이 깃든 소중한 터전이라 했다. 뚱뚱한 몸도, 마른 몸도, 젊은 몸도, 늙은 몸도 모두 그러하다 했다. 그래서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왕왕 울어대는 젖먹이 어린아이를 신경 쓰는 것처럼, 작은 몸뚱이를 웅크린 길가의 고양이에게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들판을 수놓은 분홍빛 코스모스 함부로 쓰다듬지 못하는 것처럼 돌보고 가꾸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껴줘야지.
자기 자신이라는 유일무이의 생명이 깃든 이 아름답고 고결한 몸을 아껴줘야지.
그것이 뚱뚱하든 말랐든 젊었든 늙었든 아껴줘야지.
원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이 부쩍 힘들어졌다. 둘러보면 나 혼자만 헥헥거리기 일쑤였다. 밤에는 푹 자지를 못했고 아침에 개운함을 느껴본 지는 꽤 오래되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를 감당하는 것도 힘들었다. 고탄수 고지방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에 소주며 맥주며 마음껏 곁들여도 잘 버티던 몸은 사라졌다. 요즘에는 식단의 영양소를 따지게 되고 영양제에 관심이 간다.
운동을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뛰는 그런 건강한 삶을 만들어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참 어려웠다. 운동에는, 특히 여성의 운동에는 일종의 기준과 정답이 있었다. 근육은 근육인데 근육처럼 보이지 않는 근육을 강조한 얇은 허리, 판판한 배, 봉긋한 엉덩이. 마르기는 말랐는데 너무 마르지 않아 적당히 탄탄하고 탄력 있는 몸. 단, 튼튼해 보이는 건 절대 금물.
허리가 조금 더 가늘었더라면.
팔다리가 조금 더 길었더라면.
엉덩이는 또 어떻고.
이게 뭔 헛소리인가 싶으면서도 휩쓸렸다. 나 좋자고 시작한 일에 불평과 불만은 쌓여만 갔다. 내 몸을 관찰할수록 나를 알아갈수록 나는 그것이 보기 미워지고 싫어졌다. 여기는 이러쿵 저기는 저러쿵 도무지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지가 않았다. 거울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무서워지기도 했다. 뚱뚱한 몸도 마른 몸도 모두 돌봐야 할 것들인데 아껴주려 여기저기 들여다보면 볼수록 못난 마음만 들었다. 엉뚱한 땅만 파는 기분이었다.
바닥을 치는 나의 자존감.
이러려고 시작한 운동이 아니었는데!
그래, 아니다. 내가 바란 것은 땅을 속아내고 또 속아내어 더 단단하고 기름진 땅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땅을 돌보고 가꿔 온전히 제 힘으로 당당하게 자라날 두 다리를 갖는 것이었다. 그래, 그거였다. 남다른 구경거리 혹은 자랑거리가 될 우물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환호 그 눈빛 그 선망의 감정은 다른 무엇도 아닌 당찬 걸음으로 정진해 나갈 나의 발끝에서 느끼고 싶은 것이었다.
근력은 힘의 근간이 된다. 체중도 마찬가지다. 강인함은 특정 성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나는 들기 쉬운 몸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다. 그들이 원하면 쉽게 들어 올릴 수 있고 때로는 내리누를 수도 있는 여리여리함과 연약함은 바라지 않는다.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