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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위 Apr 26. 2024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뭐 해?"

"내 폰이 어디 갔지?"


 아침부터 사부작사부작 소리가 들려와 무거운 눈을 떴다. 아직 잠이 덜 깬 것으로 보이는 아내가 스마트폰을 찾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보라며 침대 옆에 있던 내 스마트폰을 건넸다. 아내가 전화를 걸자 익숙한 방향에서 소리와 진동이 울렸다. 스마트폰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 이미 예감은 하고 있었다.

 

아내의 스마트폰은 침대와 벽사이에 있는 작은 틈 속에 빠져있었다. 스마트폰은 들어가지만 어른 손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 어둡고 깊은 공간. 그것은 오로지 아내의 스마트폰만을 잡아먹는 시커만 악마의 입이었다. 침대 아래로 들어간 걸 확인했으니 이제 내가 나설 차례였다. 눈을 뜨자마자 무거운 매트리스와 침대 프레임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일어났다. 게다가 몇 번째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그랬던 것 같다.

 

 벽틈에 잡아 먹힌 아내의 스마트폰과 구출에 나서는 나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아내의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멈추지 않는 소리를 듣고 아내가 눈을 뜬다. 바로는 잠이 잘 깨지 않는 아내가 스마트폰을 손에 든다. 정신을 차려 보려고 앱을 켠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다가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잠이 든다. 스르륵. 손을 빠져나간 스마트폰은 나이아가라 폭포 끝에 도달한 뗏목처럼 빠르게 침대와 벽사이 깊은 틈으로 추락한다. 잠에서 깬 아내가 스마트폰을 찾는다. 눈에 보일리가 없다. 아내가 눈을 뜬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잠에서 깬 나는 매트리스와 스프링매트, 침대 프레임을 옮긴다. 스마트폰을 구출해 아내의 손에 쥐어 준다. 


"미안... 잠결에 떨어뜨렸나 봐."

"휴... 왜 자꾸 저기 빠뜨리는 거야."


 처음 몇 번은 잔소리를 했었다. 당신이 왜 아침에 스마트폰을 빠뜨리게 되는지, 그걸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려고 했다. 그게 아내를 위한 일이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만들 거라는 흔한 착각을 하던 시절이었다. 아내도 이미 알고 있을 원인과 해결책을 다시 콕 집어내 잔소리를 했던 것이다. 그땐 내 기분만 생각하기 바빠서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던 아내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래서 요즘은 별말을 하지 않고 그냥 스마트폰만 꺼내주고 있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짜증을 많이 내버렸다. 사실 아내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벌어진 일이라서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을텐데... 나는 사정을 뻔히 알면서 왜 또 이렇게 행동했는지 후회가 됐다.


 오후에 아내와 카페를 갔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아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까 짜증을 냈던걸 후회하고 있다고. 시시 때때로 아내에게 높은 이해심을(아무 근거 없는) 자랑했었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며 부끄러워했다. 여기서 멈췄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아내에게 '처음에는 몇 번 얘기를 했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아무 얘기도 안 하는데 계속 반복되고 있잖아. 나는 매번 구출작전을 벌여야 하고. 딜레마에 빠지는 것 같아.'하고 잔소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머릿속에 담고 사는 이야기를 덧붙여 버렸다. 입에서 말이 빠져나가자마자 아차 했다. 나는 또 왜 이런 말을 내뱉었을까 하고 두 번째 후회를 했다. 이번에는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


"미안해. 기분 나빴지?"

"아니. 괜찮은데?"


 다행히 아내는 나보다 이해심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냥 '뭐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다고 했다. 어쨌든 자기가 잘못한 일이라서 내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아내가 그렇게 말하니 낯이 뜨거워졌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릴 때마다 자책하고 미안해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아내의 목소리로 직접 확인하게 되니 오히려 내가 더 미안했다. 오늘 하루만 벌써 세 번째 후회를 하고 있는 바보 같은 나였다.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개선이 되지 않을 거라는 착각. 실제로 잔소리는 행동개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잔소리의 사전적 정의에는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다. 일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하는 일, 이미 벌어진 일,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 때문에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필요가 있을까. 지금의 마음을 기억하자.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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