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gie》 메기만이 날 위로해줄 뿐.
이 글은 국내 유일의 OTT 미디어, <OTT뉴스>에 3월 8일 자로 기고된 글입니다.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전역해도 알바 자리가 없다. 글을 쓰는 것을 본업으로 삼고 싶지만 지금은 돈이 되질 않는다. 돈을 벌려면 오로지 공사판뿐. 그마저도 지금은 구하기 어렵다. 이런 세상에서 나를 위로해줄 만한 건은 말 못하는 동물, 반려견일 뿐. 여기는 물고기다, 《메기 (2018)》.
감독 : 이옥섭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개봉 : 2019.09.26.
시간 : 89분
연령제한 : 15세 관람가
국내 관객 수 : 39,442명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마리아 사랑병원에 근무하는 방사선사 (이경진)는 남자 친구 (윤정재)를 데려와 엑스레이를 찍었다. 남자 친구는 온갖 애교를 엑스레이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둘은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나눈다. 엑스레이실에서. 그러다가 사진이 찍힌다. 사랑병원에서 사랑이. 마리아상에는 그 엑스레이 사진이.
간호사 여윤영 (이주영)은 그 엑스레이 사진이 본인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과 남자 친구 성원 (구교환)의 사진일 것이라고. 그래서 사직서를 정성스레 붓펜으로 써본다. 이경진 (문소리) 부원장이 설치해놓은 널뛰기를 해야만 가능한 이상한 출근 서비스도, 구내식당의 맛없는 밥도, 이제는 윤영에게 마지막이다. 경진은 사직서를 내는 윤영에게 말하기를, 엑스레이 사진을 윤영이 갖고 간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했다. "유치해-"라는 말과 달리 윤영의 사직서는 유치하게 처리되지 않았다. 더 회의를 해본다고 한다. 쉬고 싶지 않은 윤영은 다시 한번 널뛰기와 함께 한다.
이상하게도 출근은 윤영과 경진만 한다. 팽팽한 전화선처럼 경진은 분노와 침착의 사이의 감정이 당겨지고 있다. 경진은 윤영에게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같이 토론한다. 전화를 돌려보지만 그 누구도 출근하지 않는다. 모두가 사랑꾼이어서 엑스레이실에서도 사랑을 공유한 게 아닐까. 모두가 의심스러워지지만 윤영은 모두가 아픈 게 아녔을까라고 말해본다. 신념이 자주 바뀌는 경진은 어릴 적의 경진을 윤영에게 소개한다.
경진은 "살인미수"였다. 시소에 앉아 있던 경진은 옥상에서 떨어진 남자아이 때문에 살인 미수라고 별명이 붙었다. 시소 반대쪽의 남자애가 올라갔다 떨어진 거라고 소문나면서 따돌림을 당했지만 남자애도 해명하지 않았고 경진도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무리 말해도 해결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윤영은 출근하지 않은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설득해보려고 한다. 주사기로 던진 룰렛에 따라 일단은 김진성 (강원)부터. 잠겨 있는 문을 웬 열쇠공이 열어주면서 경진과 윤영은 진성을 찾아가 본다. 진성은 안타깝게도 쓰러져있다. 정말로 아픈 것이었다. 다행히 경진과 윤영이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경진은 그 덕에 얼추 믿음이 생겨났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 흘리는 남성 (박종환)이 차를 타고 병원에 급히 도착한다. 윤정과 경진은 그에게서 총알을 발견한다. "사슴을 잡다가-"라고 말한다. 의심스럽지만 믿어본다. 윤영의 남자 친구가 케어해주면서 환자는 다행히 나았고 재밌게도 경진과 윤영의 이야기가 기사에 실린다. 다음날 병원은 시끌해진 사건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병실에 있는 메기 (천우희)를 키우던 메기 아빠 (권해효)는 입원한 환자였다. 메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지진이라며 얼른 대비하라며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린다. 설득하면서 같이 대피했지만 아빠는 새로운 걱정에 빠진다. "지진 안 나면 어떡하지-"
그런데 정말 지진이 일어났다. 정확히 지진은 아니고 봉고차 3대 만한 싱크홀들이 생겨났다. 성원과 전국 각지의 청년들은 싱크홀을 메우는 일자리로 뛰어든다. 그리고 공사현장에서 성원은 반지를 잃어버린다. 같이 일하는 동생들, 황동현 (던밀스), 박강섭 (박강섭)과 함께 찾아보지만 반지는 어디에, 백금인데, 윤영이가 큰 맘먹고 사준 건데, 반지 이름은 맥심인데, 플리즈-
윤영 앞에서는 그냥 빼놓았다고 거짓말한다. 그리고 윤영은 성원의 전 여자 친구, 지연 (이주영)을 찾아간다. 성원의 엉덩이뼈에 "MOM"이라고 새겨진 문신에 묻기 위해. 한편 성원은 잃어버린 맥심이 강섭의 발가락에 있는 것을 본다. 아니 그렇게 의심한다. 그리고 성원은 강섭의 지갑을 훔쳐본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그리고 말한다. 지갑에 있던 12만 원 줄 테니 반지 팔래-라고. 둘은 투덜대다 맞교환에 응한다. 안타깝게도 발가락에 있던 게 손가락에 맞지 않는다. 성원은 후회한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경진은 윤영과 함께 "양반다리 스트레칭" 광고를 찍는다. 윤영은 직립보행 고릴라로 등장한다. 윤영은 성원에 대한 고민을 경진에게 물어본다. 경진은 성원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답한다. 전 여자 친구인 지연을 찾아간 이유도 그랬다. 그 질문이 궁금해서, 그리고 그 문신이 지연을 연상케 해서. 왠지 성원이 전 여자 친구를 때린 적 있는 듯 보여서.
성원은 주변 지역이 재개발되면서 윤영과 함께 새 집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 집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계단에서 자전거를 타던 윤영은 떨어져 죽을 뻔한다. 의심에 의심이 가득 찬 윤영은 성원에게 자전거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와 서로의 의심을 확인하고 이별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사를 떠난다.
윤영은 성원을 다시 만난다. 메기 아빠가 맡긴 메기와 함께. 아니, 버려진듯한 메기와 함께. 성원은 반지 이야기와 함께 의심이 너무 부풀러 졌다면 바늘로 찔러 주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윤영은 묻는다, 여자 때린 적 있느냐고. 전 여자 친구 때린 적 있다 답하는 성원. 갑자기 메기가 뛰어 오른다. 커다란 싱크홀이 생긴다. 성원은 빠진다, 본인의 일자리를 만들었던 그 싱크홀로.
《메기 (2018)》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02년부터 진행해왔던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인권 중 '청년'에 집중되어 만든 영화로 전체적으로 청년들의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말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띠용'했다면 우리는 이 '인권'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서 이해하면 되겠다.
주인공 윤영과 성원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룬다. 시작은 의심이다. 의심할만한 상황에서 의심을 확인하는 것이 맞는지, 그저 의심하기만 하는 것이 맞는지. 부원장 경진이 말했듯이 "직접 물어보는 게" 맞다. 사람 하나 살린 것처럼, 어쩌면 위험한 남자 친구를 피한 것처럼.
신뢰의 아이콘이었던 윤영이 의심했던 것을 메기는 확인 해준다. 메기는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싱크홀까지 예견해낸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신뢰'에 어울리는 존재다. 그렇지만 버려진다. 우리는 그렇게 믿음을 저버리고 살고 있다. 반지처럼, 메기처럼.
성원은 청년의 자화상이다. 싱크홀은 아무도 위험하다 인식하지 않는다. 가끔 구경거리가 되지만 대부분은 돈벌이가 된다. 성원은 그 돈벌이에 가담하는, 기여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위험함을 모른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더 파는 것이 아니라 빠져나와야 하는데 성원을 비롯한 청년들은 내일을 모른 채 오늘을 위해 그저 파기만 한다. 땅을 파다 보면 위험한 것보다 이유 모를 의심 꾸러미만 더 풀어헤치게 된다. 맥심 (Maxim)은 금언, 격언이라는 뜻이 있다. "빠졌을 때 빠져나와라"라는 금언은 돈벌이에 시달려, 그렇게 잃어버린다.
영화 내내 무언갈 반항하거나 저항하는 느낌이 없다. 부원장 경진과 간호사 윤영은 비교적 평등한 관계다. 공사판 동생들과 성원 역시 마찰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꼰대 같지는 않다. 강렬히 부딪힐 때, "형이 앉으라고 하면 앉자"라고 하는 장면만이 유일하게 반항적이다. 무언갈 저항하지 않으니 그저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말 못 할 의심뿐. 전지적 메기 시점으로 메기는 모든 걸 알고 수용하고 이해해준다. 말만 못 할 뿐.
말 못 하는 존재라 버려진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지진이 나지 않아서일까. 메기는 일방향적으로 위로해주지만 이기적으로 버려진다. 잃어버린 것은 조언, 바뀌는 것은 신념, 알아보지 못한 것은 위험, 늘어나는 건 의심뿐인 청년들의 초상을 담은 영화, 《메기 (2018)》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