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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May 29. 2020

[패터슨 (2016)]

《Paterson》, 같은 언어를 쓰지만 다르게 연주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매일매일의 생활, 내면 생활과 밖으로 드러나는 생활, 그리고 꿈과 행동을, 언어보다는 일련의 사건들로 구성된 시로 써내는 예술가라는 점에서 삶을 다루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려한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맥키는 본인의 저서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2002)」 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의미를 따와 버스 기사 패터슨의 직업은 시인이다.

ⓒ movie.naver.com

감독 : 짐 자무쉬

장르 : 드라마

개봉 : 2017.12.21.

시간 : 118분

연령제한 : 12세 관람가

국내 관객 수 : 68,008명


이후의 내용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그리고 다시 월요일. 미국 뉴저지 주의 패터슨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 (애담 드라이버)은 부인 로라 (골쉬프테 파라하니)와 불독 마빈 (넬리)와 함께 산다. 6시 10분이면 울리는 알람에 일어나 침대에 머무는 로라를 뒤로 한 채 시리얼을 말아먹는다. 아침 식사를 같이해준 '오하이오 블루팁' 성냥갑은 점심 식사까지 같이해준다. 성냥갑에서 얻은 영감은 점심 식사 때 적은 시가 되기 때문이다.

ⓒ imdb.com

 그는 유유자적 본인의 세상에 머문다. 점심이 들어있는 조그마한 가방에는 문학의 대부, 단테와 본인의 시집도 함께 들어있다. 그는 출근하고, 퇴근한다. 퇴근 후에는 집 앞에 놓여진 우체통을 제대로 세운다. 강아지 마빈이 늘 기울어지게 만드는 것도 모른채, 그는 그저 제대로 세우기만 한다. 밤에는 마빈과 함께 산책을 나간다. 마빈이 잠시 멈추는 장소도 있다. TV도 안달려있는 닥터 (배리 샤바가 헨리)이 하는 작은 바다. 바에서 패터슨은 맥주 한 잔에 내일을 기약한다.


 핸드폰도 없다.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놓치지 않는다. 버스 운전사로서 사람들의 대화에 귀기울인다. 때로는 어린 소녀의 글솜씨에 감탄도 한다. 먹은 밥도, 쓴 글도 몇 곱 절은 많았을텐데도 자신이 더 배운다. 감정을 불같이 드러내지 않고 펜으로 시를 남긴다. 아날로그 그 자체다. 

ⓒ movie.naver.com

 아내 로라는 꿈을 자주 꾼다. 꿈을 실현으로 옮기려 한다. 능동적으로 적극적이다. 패터슨에게도 그러길 바라는 딱 하나가 있다. 바로 복사본 만들기. 패터슨의 시가 비밀 노트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는 거다. 그것도 로라의 꿈이었을테다. 하지만 그 꿈은 반려견 마빈이 망쳐버린다. 비밀 노트를 찢어버린 탓에.


 큰 상실감의 패터슨은 공허함의 산책을 나오다 한 일본인과 마주친다. 시를 좋아하는 그는 패터슨에게 선물이라며 빈 공책을 선물한다. 그리고 월요일, 다시 그 빈 공책은 패터슨의 세상으로 채워진다.

ⓒ movie.naver.com

 우리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 어렵다. 아무 일 없이 흘러간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이고 축복인지를 짐 자무쉬 감독은 유연하게 드러낸다. 월요일과 화요일, 화요일과 수요일 등, 구별하기 힘들지만 패터슨은 구별해낸다. 그것이 시인의 역할이니. 그는 일상의 소중함을 글로써 표현하고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낸다.


 운율로 재미를 주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영화 속 시 자체는 운율보다는 내용의 예술성을 강조하는데 패터슨 시(市)의 시인(詩人) 패터슨, 「패터슨」의 저자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버스 드라이버인 애담 드라이버로 소소하게 웃고 넘어갔다. 나만 그럴 수 있다. 적어놓고 보니 아재미(美)가 있다. 위 서술과 달리 영화는 정적이고 세련되었다. 나만 아재같은 것이다.


 배우의 리딩이 중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를 이끌어내는 힘이 얼마나 있느냐를 알게해 준 애덤 드라이버. 그리고 주변인들이지만 색깔은 뚜렷한 골쉬프테 파라하니, 늘 인생은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도니 역의 리즈원 맨지 등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연기하는 위대함을 보여줬다. 짐 자무쉬 감독이 원하는 일상 속의 캐릭터를 먹먹하게 표현한다.

ⓒ imdb.com

 강아지 마빈 역의 넬리도 명연기에 동참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 볼 수 없지만 강아지계의 황금종려상, '팜도그상 (Palm Dog Award)'를 이 작품을 통해 수상했다. 패터슨의 말을 엿듣는 연기, 로라와의 애정 행각을 질투하는 연기, 모두 수준급이다. 이것도 마치 일상에 젖어있는 듯하다. 마치 정말 패터슨과 로라 곁을 오래 지켰던 친구처럼, 강아지마저도 하나의 일상이다.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야 마스크가 없던 일상의 고마움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어쩌면 반복됨은 또다른 평화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평화를 만끽하고 축복하고 싶다면 짐 자무쉬의 패터슨씨를 만나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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