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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배의 노하우 Feb 23. 2018

곰치국

술먹고 다음날, 적어도 세 번은 먹어봐야...


처음 곰치국을 접한 건 십 몇 년 전이다. 실시간 교통 상황 따위는 반영되지 않는 네비게이션에 의지해서 후배와 함께 동해를 찾았다. 대학시절부터 툭하면 찾아오던 곳이 속초였다. 차가 없을 때에는 친구들과 렌트를 해서 오기도 하고, 저녁 무렵 바다 보러 가자는 친구의 연락에 별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오기도 했었다. 그렇게 속초를 비롯한 동해가 익숙해 졌고, 속초 시내길 조차 능숙하게 찾아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나는 나중에 속초의 오징어잡이 배 선장의 딸과 결혼하겠다는 가소로운 꿈도 꾸었었다. 그렇게 익숙했던 속초에서 늘 그렇듯 동명항 난전을 둘러보고, 외옹치항을 찾아가 자연산 잡어들과 소주 한잔을 하고, 근처의 민박집에서 하루를 보냈다. 마신 술의 양에 비해 바닷바람에 씻겨간 숙취는 굳이 해장을 원하지도 않았다. 흐릿하지 않은 정신으로 7번 국도를 따라 올라올라 갔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파도가 일렁이는 푸른 바다를 힐끗이 훔쳐보며 가다보니, 어느덧 부부횟집을 찾아 자주 갔었던 가진항을 넘어 가다 보니, 거진항이 나타났다. 


후배와 나는 여기까지만 가기로 하고, 밥 먹을 곳을 찾았다. 대진항을 제외하고 거의 북쪽 끄트머리에 있는 한적한 항구의 오후가 시작될 무렵에 사람들이 많지 않다. 문을 연 식당들도 많지 않고, 항구 한 쪽에 문이 열려 있는 식당을 하나 찾아 들어갔다. 우리는 생태탕을 주문 했다. 어디서 거진항 정도 오면 생태탕을 맛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생태탕이라는 메뉴 판을 보고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생태탕을 주문했건만, 돌아오는 주인 할머니의 타박은 사라진 줄 알았던 숙취가 갑자기 후욱 밀려온 듯 한 느낌이었다.


“생태 안잡힌지가 언젠데 생태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그냥 곰치국이나 먹어.”

“네.”

무안을 넘어 복종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비싼 곰치국이 냄비에 나왔다. 허연 국물은 복지리 말고는 처음 보았다. 사골국물도 아니고, 색깔이 묘하다. 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식탁 위에 놓여진 조그마한 가스레인지 위에서 끓고 있는 곰치국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다시 한번 주인 할머니의 스매싱이 날라온다.


“얼른 먹지 왜 안 먹고 그러고 있어”


“예? 아직 안 익은 거 같은데요?


“그게 다 익은 거야, 먹어도 돼.”


흐믈흐믈해 보이는 반투명한 살이 그대로 보이는데, 이게 다 익었다는 건가 싶었다. 주인할머니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지체 없이 한 그릇씩 떠서 각자의 앞에 두고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는 국물을 먼저 한 수저 떠 넣었다. 생각보다 비리지 않고, 국물이 상당히 시원하다. 감칠맛이 조미료를 의심하게 만들지만 느끼하거나 단맛은 아니다. 일단 국물은 합격이다. 이제 살을 먹어봐야 하는데, 어느게 살인지 잘 모르겠다. 흘러내리는 살 들 중에 조금 더 하얀색을 띠고 있는 부위가 마침 보인다. 젓가락을 살짝 대본다. 부드럽다. 수저로 살짝 떠서 입에 넣어보니 아구살보다 부드럽게 풀어지고 국물의 감칠맛을 그대로 담고 있어 기대이상으로 맛있다. 지켜보고 계시던 주인할머니는 그제서야 장승처럼 감시하듯이 부릅뜨고 계시던 눈을 푸시고는 한 켠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시기 시작했다. 반투명한 살은 아무리 끓여도 반투명했다. 젓가락으로는 집힘을 허용하지 않았고, 숟가락조차 힘들게 한 부분을 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 입맛과는 맞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곰치의 첫경험은 좋은 듯 하면서도 다시 도전하기 망설여질 정도의 기억을 남긴 채 마무리 되었다.




두 번째의 경험은 주문진 항에서였다. 이번엔 단체였다. 친구들과 우르르 여러 대의 차를 가지고 놀러 갔었다. 열 명 정도가 한꺼번에 배를 채워야 하는데, 낮부터 회를 먹기도 그렇고, 숙소까지 운전도 해야 하고, 가볍게 곰치국이나 먹고 가자는 이야기나 누군가로부터 나왔다. 내심 내키지는 않았으나, 다들 곰치국이 유명하다고 동조하는 소리에 반대의견을 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 곰치국을 파는 식당이 눈앞에 보이기도 했다. 우르르 들어가 곰치국을 시켰다. 일전의 주인 할머니보다 친절하지는 않은 할머니가 냄비로 줄까 덜어줄까 물어보셨다. 우리는 덜어먹게 냄비로 달라고 했는데, 그냥 그릇에 줄께 라고 하고는 스윽 사라지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나온 곰치국은 한 사람당 제사상에 올리는 국그릇 하나가 전부였다. 밑반찬은 마른 멸치 볶음과 콩자반, 조금 지나치게 익은 듯한 깍두기가 전부였다. 맛을 논하는 것이 무의미 했다. 1인당 만오천원짜리의 두 번째 곰치국의 맛은 기억에 남아있지조차 않았다.  




가장 최근의 경험은 처음 같이 곰치국을 경험했던 후배와 함께 다시 속초를 찾았을 때였다. 십여년이 훌쩍 지나버린 몸들은 예전과 같은 회복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아침 일찍도 아니었음에도 술에 쩔은 얼굴을 두통까지 더해 세상만사 고민을 다 짊어지고 있듯이 찌그린 얼굴로 동명항 뒤쪽의 해안도로 가에 있는 그냥 문이 열려 있는 집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다시금 선택의 여지 없이 국물이 있는 유일한 메뉴였던 곰치국을 시켰다. 텔레비전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관련 뉴스가 쉴새 없이 나오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저 무엇이든 빨리 속을 풀고, 얼굴을 풀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고대하던 곰치국이 나왔고, 아주머니의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우리가 알아서 적당히 익었을 무렵 각자의 그릇에 한 국자씩을 덜었다. 그리고는 숟가락을 연신 입으로 가져가며 호로록 소리만을 번갈아 냈다. 두 번째 국자는 국물만 떴다. 첫 번째 국자에서 떠온 살들이 그대로 있다. 두 번째 그릇의 국물도 절반 정도 사라졌을 무렵, 첫 번째 밥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다시금 살에 도전해 본다.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마치 매니아처럼 능숙하게 입으로 굵은 가시들을 발라내며, 밥과 함께 먹고 있다. 하얀 살들을 먼저 먹어 치우고서는 국물에 밥을 말아 반투명 살들과 함께 들이킨다. 밥 한 공기를 더 시키고 나서야 서비스로 주신 손바닥보다 작은 듯한 가자미 구이와 알들이 터져 나와 있는 찾아볼 수 없는 도루묵구이가 보인다. 마지막 두 숟가락 정도는 가자미와 도루묵이 함께 했다. 그리고 이제는 곰치국을 먹을 줄 안다는 말을 어디 가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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