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은 몇 시입니까, 사카구치와 쿠마와 나라를 경유하며
빅이슈 재팬의 작은 장사, '밤의 빵집'은 지난 10월 시작해 코로나로 위태위태 영업을 이어가다 지난 2월 7일 문을 닫았다. 도쿄 내 빵집의 팔고 남은 빵들을 모아 빵집이 문을 닫은 시간 이후 판매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카구라자카의 작은 책방 카모메 북스의 처마 밑이 가게가 되어주었다. 홈리스들의 재생을 응원하는 미디어의 아이덴티티를 생각하면, (빵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이런 시도는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세상 모든 소외된 것들의 작지만 살아있는 이야기. 나라 요시토모 씨의 트위터는 언젠가부터 나만 아는 내 편이 되어버렸는데, 얼마 전 빅이슈 재팬은 그의 그림을 표지로 했다. 눈을 지긋이 감은 소녀 밑으로 '希望へ.' 단 세 글자. 요즘같은 시절 이만큼 우리의 맘을 대변해주는 그림을 나는 보지 못했다. 이만큼 우리 편이 되어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아마 없다. 그 무렵 나라 씨는 또 내 편을 들어주는 듯한 몇 개의 트윗을 올렸고, 이런 말들은 아마, 언제 어디서든 시의적절하다.
"나는 옛날부터 그림을 잘그리는 '편'이었지만, '편'이었을 뿐, 그것 뿐이었다. 역시, 중요한 건 '운'일까~ 바로 이것!? 대단한 사람들을 보면 나에겐 운밖에 없다는 기분도 들어요. 내 작품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어떤 부정이라도 운만큼은 부정할 수 없겠죠. 말하자면, 그렇죠? (웃음)"
그리고, "잘 되지 않는 건 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거기서 더욱 부수고, 다시 조합하고, 이래도(아냐?)?라고 반복하고 계속할 수 있는가. 그렇게 언젠가 찾아올 우연의 산물을 자신의 이미지에 그대로 살릴 수 있는가 아닌가가 중요하다. 그게 나의 방식. 계속 그런 비합리적인 방법으로 해왔네요.(알바 빼고는^^;)
기사를 준비하며 자료를 훑다보면 가끔 물컹해질 때가 있다. 지난 도쿄의 장인들 중 콜라 장인 코바야시 히데타카의 글 중 돌연 비어있는 그의 아빠와의 자리가 보였을 때, '백엔의 사랑'을 만든 타케 마사하루가 영화에 매달렸던 질펀한 시간이 꼭 영화의 이야기가 아니었을 때, 나는 마음이 흔들린다. 쓰여지지 않은 말들에, 이야기되지 않은 시간에 깊숙이 이입해버리는 내가 있다. 쿠마 켄고에 대해서는 아오야마의 '네즈 미술관' 정도를 빼면 사실 아는 게 별로 없었는데, 그의 건축, 도쿄, 도시를 알자고 시작한 일은 이상하게 '사람 쿠마 켄고'를 알아가는 일이 되어버렸다. 세상 어떤 일은 애초 시작된 타이밍이나 의도, 출처와 상관없이 내게 다가오며 의미를 갖는 것들이 있고, 코로나 시대에 쿠마 켄고는 아마 가장 준비된 내일인지 모른다. 최소한 나에게는, 세상을 좀처럼 곧이곧대로 보지못하는 나같은 삐딱선의 인간에게는. 멋대로의 착각이지만 그는 사실 나와 조금 닮았고, 어차피 착각이지만 내가 걸어온 시간은 대부분 착각의 힘이었다. 일이 곧 삶이 되어버린 사람, 삶이 일이 되어 버틸 수 있었던 사람. 쿠마의 건축은 '지어지지 않는 것'의 자리를 살피고, 그건 늘 '실패'에서 시작한다. 그는 오래 전 스스로를 스스로를 '늘 비틀어보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쿠마 켄고는 사실 지금 도쿄(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바쁜 건축가인지라, 그럴 때 준비 작업이란 무얼 보고 무얼 패스할지의 연속이라, 내가 그의 그 대담 영상에 클릭을 한 건 어쩌면 하나의 별볼일 없는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자동차 브랜드 '렉서스'가 교토에서 주최한 '일본의 和', 크래프트맨십과 미의식에 관한 이야기. 사실 주제가 맞는 방향도 아니었는데, 그가 만든 격자식의 나무 창틀을 배경으로 쿠마와 대담자인 크리에이터 코하시 켄지의 이야기를 한참 들었다. 사실 둘의 관계라고 하면 비슷한 업계 종사자 사이의 대선배와 후배 정도일 뿐이고, 그래서 초딩과 선생님의 대화처럼도 들렸지만, 코하시 씨는 자꾸 쿠마와 자신의 접점을 찾으려했다. 그는, 소개를 하면 AR 기술로 불꽃놀이나 하는 이벤트 기획자일 뿐인데, 자꾸만 쿠마에게서 자신의 내일을 보려했다. 어떤 억지스러움, 그리고 어리석음.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싶을 때 가장 유효한 건 그와 나의 공통점, 혹은 착각이고, 내일에 대한 조언이 빛을 발하는 건 나에게 적용 가능한가의 지점에서이다.
이야기 중반 쯤 코하시 씨는 오래 전 죽을 고비에서 살아났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잊고잇던 나의 어제가 떠올랐고, 쿠마 씨는 아마 20여 년 전 오른팔을 쓰지 못하게 했던 사고를 생각했을지 모른다. 세상 모든 상처는 상처를 알아보는 어떤 '감'을 갖고 자란다.
"변화는 계기에서 시작돼요. 그리고 그건 꼭 '나쁜' 계기더라고요. 좋은 계기에선 좀처럼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죠." -쿠마 켄고
남의 이야기를 하며 빛나는 글이 있다. 비평, 리뷰, 혹은 논평같은 것들은 '남'의 이야기를 하고있는 듯 싶지만 여지없이 반응하는 나로서의 이야기이고, 묘한 거리감의, 내가 남이 되려할 때의 벌어지는 일종의 작용・반작용은 애초 2인칭으로 태어나는 글의 원형이다. 글의 내연과 외연이 뒤엉키는, 문장이 갖고있는 보이지 않는 갈등의, 내 안의 너를 향해 내뱉는 말. 나는 종종 그걸 가장 외로운 독백이라 생각하는데, 잠이 오지 않던 새벽, 사카구치 안고의 글(낭독)을 들으며, 그는 지금 나에게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 같았다.
그가 1940년 문예지 '문예 정보'에 실었던 '문자와 속력과 문학(文字と速力と文学)'과 다음 해 '현대문학'에 게재된 '문학의 고향(文学のふるさと). 절친한 작가 나가시마 아츠무를 떠나 보내고, 절대적 고독의 시기라 불리던 때 써내려간 글이고, 두 작품은 묘하게 서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부정한다. 소설가가 되고 20여 년이나 지나 문학의 자리를 발견하는 '생각의 여로'와, 삶이 되지 못하는 문학으로서의 운명을 슬며시 적었다, 다시 지워내는 자조의 제스쳐. 그의 본래 이름은 사카구치 헤이고柄五였고, 말 안듣는 중학생 그에게 가정 교사가 '안고暗吾'란 이름을 지어주었고, 이후 '단가'를 쓰기 시작하며 그는 한자를 바꾸어 '안고安吾'로 나머지 생을 살았다. 문자와 이름과 삶과 그리고 문학과. 알고도 뒤로 내빼는 포기의 글쓰기와 내게서 너를 보려고하는 아둔한 문장. 새벽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사카구치 안고가 '글'의 불가능, 생각을 문자로 옮기는, 소위 글쓰기란 행위의 한계를 자각한 건 평소 쓰고있던 안경이 고장나면서다. 좀처럼 써지지 않는 문장 하나의 숨겨진 이유, 그 '비밀'을 그는 '부자유'에서 발견한다. 그저 저하된 시력으로 생겨난 일이었을 뿐일텐데, 사카구치는 '글쓰기', 그 자체의 난점을 헤집는다. "내 머리에는 다채로운 상념이 떠오르고, 구성되고, 그건 이미 머리 속에서 문장의 형태로 갖춰진다. (그러면) 나는 책상으로 향한다. 그저 쓸 기재가 있다면 상념은 무리없이 종이 위 문장이 되어 재현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간단하게 옮겨주지 않는다."
나를 포함 대부분의 마감 노동자들은 오늘도 잘 풀리지 않는 글을 끌어안고, 빈약한 어휘력, 부족한 문장 탓만 하고 있겠지만, 사실 그건 내가 아닌 문장과 생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시차', 타고난 고질적 '비효율'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사카구치는 '상념'의 속도를 '문자'는 쫓아가지 못한다고 적었다. 도스트예프스키의 일화까지 예로 들어가며. 도스트예프스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그가 '빚에 시달리느라, 마감에 맞추기 위해서 속기사를 고용했다'이지만, 실은 자신의 '상념'을 그대로, 정체되거나 망설이는 것 없이, 생기를 잃지않고 '문자'로 옮기기 위해서였다는 게, 사카구치의 정설이다. 도스트에프스키는 끝내 속기사와 결혼을 했다. 나는 요즘 원고에 대해 '추상적', '모호함', '어렵다'는 평을 종종 듣는데, 당신의 시간은 몇 시입니까. 고료를 받기위해, 또 하나의 원고를 청탁받기 위해, 나는 그저 오늘도 당신이 되어본다.
데이비드 핀쳐가 오즌 웰스의 '시민 케인', 그 명작의 메이킹 스토리를 그대로 영화화한 '맹크'에도 '속기'의 장면이 여러번 등장한다. 여기에선 회심의 작품을 앞둔 맹키위츠가 불의의 사고로 부상을 입은 탓에 침대에 누워 속기사로 고용된 리타에게 문장을 읊고있을 뿐이지만, 작가의 몸이 아닌, 타자기거나 키보드가 아닌 입으로 발화된 말들이 타인의 귀를 통해, 그리고 두뇌와 몸의 작용으로 문자화되어가는 과정이 새삼 이질적이라 생각했다. 비슷한 작업이라면 기자 시절, 혹은 취재를 한 뒤 녹취를 푸는 지난한 작업이 그에 해당될텐데, 기사를 위해 옮겨놓은 취재원의 말들은 여지없이 윤색되고, 생략되고, 말하자면 편집이 된다. 물론 그들은 글을 쓴 게 아니지만, 새삼 말은 글로 온전히 옮겨질 수 있을까. 사카구치 안고의 '상념'을 빌리면 나의 손은 나의 머리를 배반하지 않을까. 머리가 하는 일과 몸이 하는 일. 혹은 생각은 돈이 되지 않지만 글은 돈이 되는 현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실패의 행위'이고, 글이 되기 위해 지워지는 상념이 있다. 사카구치의 '문학의 고향'에서 '고향'은 문학이 태어난 곳임과 동시에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인간 너머의 세계를 가리키고, 우린 결국 그곳에 갈 수 없어 문학을 읽고, 글을 쓴다. 좀처럼 시작을 찾을 수 없는 어떤 뫼비우스의 길. 사실 그저 너무 많이 걸어온 게 탈일 뿐이다.
어떤 밝고 '나쁜 계기'에 관하여
어떤 밝고 '나쁜 계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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