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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Jun 01. 2021

오직 인기척이 살아남는다

공간 상실의 시절, 기억은 시간을 이어갈 수 있을까



오래 전 지금은 멀어진 지인은 합정에서 신촌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차를 소유함으로서 얻어지는 일상의 소위 장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 얼마 되지 않는 짤막한 대화였지만, 운전을 하면서 일상의 반경이 월등히 높아진다는 건, 아마 차를 갖고있는 이들만의 ‘공통된 경험'인지 모른다. 수 년이 흘러, 보다 더 먼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그 이야기는 또 한차례 흘러나왔으니까. 나란 사람은 지난 해 말 ‘혼자'에 대한 3백 여 페이지의 책을 썼을 만큼, (책의 퀄리티는 둘째 치고) 혼자의 ‘반경'이 꽤나 넓은 1인인데 요즘 문득 생각하는 건, 사람이 남기고 가는 어떤 ‘인기척'에 관해서이다. 공간이 공간을 잃었다고 말하는 시절, 어쩌면 그건 ‘남아있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코로나가 시작하고 2년, 어쩌다 ‘프리랜서'로 살고 5년 무렵에 처음으로 독립된 공간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야 몸이 ‘충분치 않다’는 이유로, 두, 세 시간을 훌쩍 넘기는 통근 시간을 견디지 못할 거라는 ‘신체적 나이'에 기반해 대부분 ‘집 밖'을 벗어나지 않는 하루와 하루를 보냈다. 기껏해야 동네 극장엘 가거나, 빵을 사겠다며 조금 먼 외출을 하거나, 간혹 약속이라도 생기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퇴원 후 원인 모를 다리 통증에 대비한 진통제에 불과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엄청난) 몇 번의 환승을 거듭한 뒤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만, 생활의 반경이라는 건 대체 무얼 위한 ‘충족의 거리’일까.


두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에서 한 두시간 머물다 돌아오는 하루는, 효율과 비효율, 수고와 보상, 비용과 소득... 어떻게 보아도 그냥 실격일까. 위에서 이야기한 책에서 난 ‘편도 2시간 동네 카페'의 나름의 이유에 대해 역설하기도 했지만, 사람이란 어김없이 머리가 아닌, 몸이 이야기하는 것들로 더 많은 날들을 살아간다. 나이란 어쩌면 그런 신호를 위한 지표일까.


굳이 이동을 하지않고도 대부분의 일과가 가능해진 소위 해시태그 시절에, 난 불현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거리, 관계, 기억에 남아있거나 생각 속에 살아있는 것들과의 ‘오늘'을 생각하고 싶어졌다. 지난 주 ‘줌'으로 대화를 나눈 센토(우리의 대중 목욕탕)를 다시 부흥하고 있는 건축가 카토 유이치는 욕조도 없는 월 3만엔 짜리 아파트에 사는데, ‘인기척을 하나의 가치’라 이야기했다. 만나는 사람도 없는데, 가치가 되어있는 누군가의 ‘기억’ 혹은 인기척.’



벌써 3달째를 코앞에 두고 있는 5월의 마지막 날. 한 번의 버스와 두 번의 지하철을 타고 오는 아침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이 내 곁을 오고갔다. 하지만 기억에 남은 건, 어제 밤 옆에 앉아 쉴새없이 가방에 물건을 넣고 또 넣고있던 아마도 20대와 30대 사이의 여자. 대놓고 쳐다볼 수는 없었지만, 잠기지 않는 지퍼가 몹시도 애달피 느껴졌다. 보(이)지 않(았)지만, 알 것 같은 것들. 이름도 모를 그녀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면, 미니 스커트 차림이었고, 유독 지독한, 아마도 쌈지막한 향(수)을 풍겼고, 나보다 몇 정거장은 먼저 일어섰다. 그게 디지털단지였는지, 마곡나루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냥 독하기만 했던 향이 여태 떠오른다. 말하자면 그녀는 ‘향'으로, ‘성공’하지 못한 ‘손동작’으로 내게 ‘인기척'을 남겼는데, 카토가 이야기한 ‘인기척'은 이와 무엇이 다르고 또 같을까.


‘줌’ 화면 너머 그곳엔 카토가 설계한, 센토에서 영감을 받은 공유 스페이스의 넓고 푸근한 다다미 마루가 펼쳐 있었고,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것도 같았고, 창을 바라보며 어느 남자는 누워서, 또 다른 여자는 창문을 열고 늦은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옷깃이 닿던 지난 밤의 그녀와 바다 건너, ‘줌' 화면으로 중계되던 그곳의 ‘분위기.’ 이런 건 소위 ‘거리'로 구분할 수 있는 일상일까. 참고로 카토는 ‘센토’의 관계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중거리의 관계'라 이야기했는데, 애초, 우리는 타인과 얼마나 가깝고 또 멀게 살고있을까. 중간 거리의 관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그렇게 희미한. 하지만 어쩌면 영원한. 아마도 코로나가 우리에게 알려준 건 나와 남 사이에 일정 정도 ‘거리'가 존재한다는, 보이지 않던 오랜 역사의 일상일지 모른다. 그런데,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너와 나의 소지품, 마스크는 그 ‘거리'를 얼마나 좁혀줄 수 있을까. 난, KF 라면 이틀은 쓰고 버린다.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날도 있는 하루를 보내는 요즘이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스치고, 또 스쳐간다. 사실 ‘혼자'라는 건 혼자가 아님으로 완성되는 ‘상태'인지라, 대부분 ‘혼자'로 살았던 20년 넘는 세월은 그만큼 혼자가 아니었던 20여 년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카페, 지금은 주인이 바뀌어 조금은 멀어진 상수동 '비하인드'에 가면 매일같이 대략 정해진 시간에 내려와 담배를 피우는 조금 통통한 여자가 있(었)다. 안면식도, 이름도 모르는 ‘사이인데, 그와 난 종종 ‘담배 타이밍'이 겹치곤 했다. 어떤 날엔, 혹시나 모습이 보이지 않기라도 하면 뭔지 모를 섭섭함?(그게 섭섭함이었을까) 감정이 들기도 했는데, 세상에 사람은 무엇으로 관계하고, 무엇으로 남는걸까. 난 그곳에서 주인 아저씨의 주차된 차를 보고 ‘오늘은 계시네', 혹은 ‘없구나' 홀로 생각하곤 했고, 지친 늦은 오후 내가 알던 색깔의 르노 자동차가 보이면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무엇이 나를 그런 ‘기분'으로 이끌었을까. 혹은 만들었을까. 사람에겐 아마 스쳐간 타인의 수많은 역사가 쌓여간다.


카토 씨는 코로나 이후 ‘중거리적 관계', 그런 ‘거리감의 공간’은 중요해질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의 요지는 ‘만남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 가장 안심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 갈 수 있는 공간이 보다 가치를 드러낸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안심의 한 가운데 아마 ‘인기척'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 프리랜서가 이용자라 주말에도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거의 보이지 않았고(주말이란 시간 관념, 그건 어쩌면 인간에게 가장 뿌리깊게 쇠뇌된 관념일까). 그런 날이면 난 무언가 섭섭함(이건 분명 99%정도 섭섭함이라 확신한다) 을 느끼곤 한다.



나는 왜 혼자면서, 혼자를 찾으면서, 혼자가 아님을 그리워할까. 또 다른 도쿄에 사는 30대 책방 주인 아쿠츠 씨는 ‘혼자서 편안히 머물 수 있는 가게'를 궁리하다 ‘책을 읽을 수 있는 가게'를 만들었고, 그곳엔 그저 책만 읽는 너와 내가 그냥, 그저 페이지만 넘기고 있다. 아무런 관계도 하지 않지만 이어져있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지만 ‘함께’하는, 멀어졌지만 기억 속에 있고, 헤어졌지만 마음에 남아있는 것들과의 소위 ‘관계'들.

아쿠츠 씨가 코로나 ‘자숙 기간' 중, 책방을 열지 못하는 상태에서 만든 웹상의 가상 지도 ‘후즈크에 지도'를 보고, 난 ‘곁에 없지만 함께있다'의 ‘구현'이라고 트윗을 올렸고, 아쿠츠는 그 말이 몹시 고맙다고 이야기해줬다. 어떤 ‘공간'과 ‘공간' 사이의 ‘이어짐.’ 그곳에 ‘관계’는 태어났을까. 그와 마지막 대화를 주고받은 지는 벌써 두 달이 흘렀다. 애초 우리는 ‘관계'를 만나본 적이 있을까.


카토 씨의 ‘중거리적 관계', 거리감은 내가 쓴 기사의 주제, 핵심이었다. 코로나 시절 공간이 방황을 하는 와중에 믿을 수 있는 사람, 소위 단골 손님 정도의 거리감이 도시에 요구되고 있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난 그게 지금 이 시절 우리(인간)가 찾은, 내일을 향한 한 발, 혹은 한 뼘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 작아지지만, 그만큼 (조금) 확실한 것. 어제 밤 배가 아파 방에서 뒹굴다 보게 된 나라 요시토모의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귀국 후 ‘확실한 것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런 외로움이 길어낸 어떤 감정같은 것. 부자유가 자유를 말하고, 외로움이 고독을 품는 것처럼, 너가 나를 이야기하고 내가 너를 완성한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마스크를 쓰고 서로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 있는게 아닐까. 흐릿하고 영원한. 어쩌면 오직 ‘인기척’이 살아남는다. 너가 떠나간 거리에서 너를 기다리며 고작 이런 생각을 했다.


https://youtu.be/b4ONl3n9R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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