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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RESQUE Aug 19. 2021

어느 장마철의 메타포,
살면서, 운다는 건

세상에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는 말이 도착한 날





0_나는 더이상, 위로를 믿지 않기로 했다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어둔 밤이 지나면 아침 녘이 찾아오고
인생에도 ‘우기'는 언젠가 끝이난다.’ 



위로를 위해 태어난 말들은 듣는 순간 맘을 멈춰서게 하지만, 대부분 그건 짙은 어둠보다 빨리 끝나버리고, 서점의 ‘힐링'을 외치는 말들이 난 그냥 좀 싱겁게 느껴졌다. 그런 말들은 그저 또 하나의 새로운 위로에 밀려가기 빠쁘니까. 하지만 그 문장의 다음, 멈춰선 맘을 쥐어잡고 다시 살아가기 위한 날들엔, 다음과 같은 말이 숨어있었고, 난 그제야 못다한 위로와 조우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 십년간 마음을 치료해온, 지금은 세상을 뜬 aka 모타 선생. 사이토 시게타 의사 선생님의 말. 


“비가 내리면 마음은 가라앉기 마련이다. 심지어 장마철이라도 되면 그 마음은 바닥을 기기도 한다. 동남아시아 같은 나라에선 그게 몇 달이나 지속된다고 하는데...누구도 비 따위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 인간을 포함 살아가는 생명에게 비란, 빼놓을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임을, 우리는 모두 알고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맑아지는 말(心が晴れる言葉)', 사이토 시게타 著


보다 과학에 근거한, 사람에 기반한 말. 꾸미려 애쓰지 않고, 위로에 짖눌리지 않은 담백한 팩트의 문장들.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 마지않는 마음과 서점 힐링 코너의 텅 빈 ‘말'들을 무색하게 할 지혜들. 사이토 선생의 유작은 ‘나답게 살고, 죽는 지혜(自分らしく生きて、死ぬ知恵)’이고, 우리는 잘 살기 위해, 그리고 잘 죽기 위해 오늘도 또 한 번의 눈물을 닦아낼 수 밖에 없다. 쓴 맛을 모르는 힐링책을 난, 왜인지 오래 전부터 신용하고 싶지 않았다.


01_너와 나의, the first TAKE


한 명의 트랜스 여성이 스스로 세상을 뜬 날, 이 노래를 들었다. 어떤 마음은, 아니 삶이란 때로 너무나 여리고 찰나에 불과해 뒤돌아보면 떠나감, 그리고 쓸쓸함 뿐이곤 하다. 일본에선 요즘 ‘THE FIRST TAKE’라 이름붙은 음악 프로젝트가 인기가 좋고, 오직 처음 만이 존재하는 그 짧은 무대에 매번 마음이 흔들린다. 콘셉트는 단 하나의 노래, 단 한 번의 순간(take), 단 한 번의 테이크에 자신의 단 하나의 노래를 선보이는 초-미니멀 구성. 말하자면 ‘재촬'없는 라이브 스테이지이다. 기획을 한 시미즈 케이스케는 “재현성이 존재하지 않는 음악의 체험을 다시 한번 만들고 싶다"고 말했는데, 재현성이 존재하지 않는, 오직 그곳에만 존재하는, 우리가 떠나왔거나 자꾸만 잊곤하는 것들에 대한 ‘재현'이 그곳에 태어난다. 참고로 코로나 이후 시작된 기획이기도 하다.



오래 전 여름, 난 시부야 타워레코드에서 우타다 히카루의 ‘첫사랑(初恋)’를 듣고 무더위 속에서도 소름이 돋았는데, 모든 것의 ‘처음'이란, 무언가 태어날 것 같은, 조심스레 얼굴을 내미는 듯한, 농도 짙은 파스락거림이거나, 4K 해상도는 되어야 할, 떨림의 순간이라 생각했다. ‘처음'은 늘 설렌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떤 처음은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저물고, 어떤 처음은 알아차리기 전에 잊혀지고, 어떤 처음은 모든 걸 잃은 뒤에 찾아오기도 한다. ‘처음'이면서 동시에 과거형이기도 한 어떤 얄궂음과 아이러니. ‘더 퍼스트 테이크'엔 인디/메이저 가리지 않고 다수의 아티스트가 노래를 불렀고 그 중엔 2PM도? 포함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처음'을 가장 ‘처음’답게 노래한 건 SIRUP의 ‘thinking about us.' 음반이 발매되던 날 그는 하나의 메시지를 남겼는데, 그 말이 마치 이곳에 스쳐간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죽음에서 태어난, 그리고 그 곁에서 시작된. 트랜스 여성이 세상을 떠난 날, 하나의 ‘처음'이 태어났다.


https://youtu.be/FtHpWnr99OY


"세상은 지금 추상적(긍적적)인 말들로 흘러넘치지만, 그런 말들만 존재하는 세상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겠지만, '보통'과 조금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입지 않을까요. 진심으로 사람과 마주하고,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를 깊이 고민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의미를 이룰 날이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sirup 앨범 ‘cure’를 발매하며


02_신설동 19층의 향기, 너의 여름에



‘영화' 기생충에서 냄새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리는 불쾌함의 촉발이거나,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불편함의 시작이기도 했는데, 그건 곧 반대 입장에서 ‘선’을 무너뜨리는, 경계를 허물고 ‘함께'의 자리를 확보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마스크를 쓰고 세상 절반의 냄새만을 맡고 살아가는 요즘, 우리는 그렇게 안전하지만, 동시에 소원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 벌써 오랜 ‘연’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석동의 두 번째 ‘희녹'을 보고오며, 우리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 의와 식과 주는 이제 좀 다른 관계의 배열로 새로 쓰여지고 있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무엇보다 ‘위생'이 공간의 핵심 가치로 부상하는 시절에, 냄새란 아마도 가장 쉽게, 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안전'의 지표일테니까. 


‘희녹'의 두 번째 프로덕트, ‘스페이스 스프레이'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제주 편백수를 재료로, 살균 효과를 위해서는 곡물 효모에서 에탄올을, 제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계면 활성제는 무려, 해바라기에게 빌려왔다고, 석동이 바쁜 와중에 열심히 설명을 해줬다. 새삼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고 에코적 실천을 하는 움직임은 적지 않게 늘어나지만, 와중에 무엇보다 필요한 건 ‘가시화', ‘보이게 하다'라는 가장 작고 소박한 행동에 지나지 않고, 선물로 받은 에코백을 어깨에 매며 난 ‘포인트가 되네'라며 혼자 좋아라 했다. 그 날의 나는 위아래 온통 하양하양이었으니까. 



호텔이었던 건불을 개수해 다시 지어진 건물의 19, 7, 20층에서 진행된 행사는 ‘공간으로 드러나(내)는 향'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었고, ‘Knock, Knock’ 전시와의 콜라보 작업은 그곳에 삶, 타인의 방을 개입하며 우리의 일상을 바라본다. 일견, ‘희녹' 풍기는 잡지 ‘아파트멘토'의 표지 같기도 하고,  다양한 공간과의 변주가 기대되는 석동의 내일같기도 했던 전시. 사람들은 이렇게 또 한 번의 내일을 꿈꾸는 걸까. 사족이지만, 모두 세 개의 층에서 진행됐던 행사에 ‘기생충'에 보이던 ‘선'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더 사족이지만 남김없이 밟고있는 나. 참고로 무지 59백원 쪼리.


03_어떤 면피의, 60분


물증 없는 99% 감에 의한 추측이지만, 우리 동네에서 배달을 시키면 언제부터인가 대부분 대기시간  60분이라 뜬다. 물론 실제로 그럴 때도, 배달이 몰리는 시점에 예상 가능한 숫자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60분란 말이 무색하게 주문 음식은 커피 한 잔 내리면, 밖에 나가 담배 한가치 태우면 도착하는 식이다. 횟수가 늘어갈 수록, 60분이란 숫자를 또 한 번 마주할 수록, 아마도 늦게 도착해 발생하는 클레임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숫자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확실해지곤 하는데, 그도그럴 것이 늦게 도착한 음식엔 화를 내도, 일찍 도착한 음식에 뭐라 이야기를 할 사람은 별로 많지않다. 

하지만 동시에, 대기 시간 60분, 한 시간이라는 건 배달 시스템, 그 자체가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이야기이고, 샌드위치도, 감자탕도, 도시락이나 핫도그도 모두 60분이라는 건, 세상이 모두 60분이란 숫자 뒤에 숨어버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새삼, 무엇을 위한 60분인지. 배달이 폭주하는 시절에 이 60분이란 건 어딘가, 지금 우리가 만들어낸 모두의 거짓말, 잘못 태어난 K-배달의 ‘이란성 쌍둥이’처럼 느껴졌다. 플라스틱 용기는 오늘도 늘어가고, 우린 언제쯤 이 60분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빨리 도착한 음식이, 반갑기만 하지는 않다. 



04_컷과 컷 사이, 영화의 신이 내려온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아마 91번째 영화 ‘키네마의 신'이 지난 목요일 개봉했다. 이 시절 개봉이 연기되거나 촬영이 중단되는 영화들의 예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이 영화는 조금 더 애달픈 사연을 품고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1년, 주연 배우로 예정되어 있던 시무라 켄의 확진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고향 도쿄 히가시무라야마시(東村山市) ‘시무라 켄의 나무' 앞엔 고개를 떨군 헌화가 놓였다. 그렇게 두 번의 촬영 스톱과 두 번의 개봉 연기. TV엔 수도없이 많은 비보가, 슬픈 뉴스가 흘러나와도, 세상일은 대부분 남의 얘기처럼 들려오지만, 이럴 때 난 어김없이 내가 그곳을 살고있음을 느낀다. 시무라 켄과 50년 세월을 사이로 하나의 캐릭터, 고우를 연기하는 스다 마사키는 “이러다 정말 없던 영화가 될 것 같은 불안이 있었다"고도 이야기했다.



참고로 ‘키네마의 신'은 영화 감독을 꿈꾸던 주인공 남자가 촬영 도중 부상으로 꿈을 포기한 채 귀향. 이후 50년이 지나 자신의 시나리오를 발견하며, ‘다시 시작’하는 스토리다. 어쩌면 영화는 현실을 알고 있었을까. 영화 밖에 없던 남자가 영화와 결별한 뒤 다시 영화를 만나 ‘삶'을 향해가는 이 이야기는, 왜인지 오늘을 위해 준비된 이야기처럼도 들린다. 과거와 현재와 현실과 허구와, 그리고 영화와. 사람들은 ‘인생 영화'라는 걸 이야기하고, 세상은 종종 영화같다는 수사를 쓰는데 정말 삶이란, 반쯤 영화와 같은 게 아닐까. 시무라 켄을 기리는 영상엔 스크린 너머 스쳐가는 그의 얼굴이 보였고, 자막은 고우의 말인지, 그의 이야기인지 이렇게 이야기했다. ‘컷과 컷 사이 영화의 신이 내려온다.’ 

https://youtu.be/b2-6Cn25Hcw

노다 요지로가 긁적였던 곡, 촬영이 중단되고 재개하던 날, 요지다 감독이 모든 출연진, 스태프에게 건넸다고 해요. 이후 일이 착착 진행되면서, 이 곡은 영화의 주제곡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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