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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볕이드는창가 Feb 25. 2021

나산나인나구 (那山那人那狗)

'맑음'을 영화로 표현하면 이 작품일까


■ 원어 제목: 나산나인나구 (那山那人那狗, 나샨나런나거우)

■ 영어 제목: Postmen In The Mountains

■ 장르 : 드라마 / 가정 / 향촌

■ 년도 : 1999

■ 감독 : 霍建起

■ 주요 배우 :  滕汝骏, 刘烨 등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1999년 상영된 영화 <나산나인나구(那山那人那狗)>입니다. 한국에서도 2002년 한중 수교 10주년 기념으로 Movie Week 때 <그 산, 그 사람, 그 개>라는 제목으로 상영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중국 금계상(金鸡奖)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남우주연상, 몬트리올 영화제 관객 대상, 인도 국제영화제 은곰상 등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탄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펑젠밍(彭见明)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된 작품입니다. 1980년대, 우편으로밖에 외부와 소통이 불가능했던 중국 산촌의 모습을 다룹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곳에서 평생을 집배원으로 살아오신 분으로, 마을 전체를 돌며 우편물을 배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왕복 3일. 그 때문에 아들인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의 감정적 교류가 부족합니다.


다만 얄궂게도 이 산촌에서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우편배달을 하는 것뿐입니다. 아버지도 이제 나이가 들어 다리가 불편해졌기 때문에, 영화는 아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우편배달 과정을 인수인계해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룹니다. 본래 아버지가 어색했던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함께 가보면서 그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내용이죠.


이 영화는 제가 몇 번을 소개드린 배우 리우예(刘烨, 유엽)의 데뷔작입니다. 자, 이제 필모그래피를 훑는 것도 모자라 데뷔작까지 간 거죠. 리우예가 이 영화에 캐스팅된 일화는 방송에서도 몇 번 나왔습니다. 중앙희극대학에서 배우로 쓸만한 학생을 물색하던 감독은 농구를 하고 있던 2학년 학생 리우예를 발견합니다. 카메라 앞에 제대로 서본 적도 없는 이 친구를 당장 주연배우로 캐스팅하려고 하죠. 왜냐고요?


사실은 돈이 없었습니다. 대본이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껴졌는지 투자금이 별로 모이지 않았어요. 감독이라고 왜 유명 배우를 쓰고 싶지 않았겠냐마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출연료부터 예산을 절감하려고 한 거죠. 결론은 어떻게 됐냐고요? 영화제에서 상을 휩씁니다. 리우예는 데뷔작부터 큰 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죠.


남자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리우예, 지금과 사뭇 다른 청초함이 느껴집니다.


방금 이 작품이 영화제의 상을 휩쓸었다고 하긴 했지만, 이 영화가 처음부터 이렇게 화려하게 대중 앞에 소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굳이 어느 쪽인지 이야기하자면 오히려 독립영화로 정의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었죠. 투자금을 못 모은 것과 같은 이유로 말입니다. 대본이 눈에 띄게 자극적이고 대중의 구미를 당기는 내용도 아니었을뿐더러, 주연배우들도 대학 재학 중인 신인들이라 개봉 소식에 대한 영화계의 관심도는 미미했습니다. 관객이 안 들어올 것 같았던 거죠. 결국 영화의 판권은 중국 공영방송 CCTV의 영화 채널 한 곳에 팔렸고, 영화관에선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영화가 갑자기 일본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일본에다 홍보비를 많이 줬냐고요? 그것도 아닙니다. 이와나미 홀이라는 한 100명 들어갈까 말까 한 일본의 예술영화 전문 소극장에서 그냥 계속 틀었답니다. 이상하죠. 계속 관객이 들어왔다고 하네요.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서 도쿄를 시작으로 오사카, 고베, 교토 등 각지에서 추가 상영이 시작됩니다. 결론적으론 일본에서 흥행 성적이 제일 좋은 중국 영화가 되었다고 해요.


아니 바다 건너 일본에서 중국 영화가 잘 팔리다니! 중국 사람들이 신기한 나머지 이 영화를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이 작품은 그때부터 다시 본토에서 많은 관중들에게 팔리기 시작했답니다. 도대체 일본에서 이 영화가 잘 된 이유가 뭘까, 이미 영화를 본 입장에서 잠깐 생각해보면, 일단 중국 산촌의 풍경을 예쁜 영상미와 함께 보여준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호남성 수이닝(湖南绥宁)이라는 곳에서 촬영이 되었는데, 고즈넉하고 푸르른 산촌의 모습을 잘 보여줬습니다.


또 한 가지 이 영화가 일본 사회에 먹혔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아마 아버지가 우편배달 일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이 과정이 장인정신이나 대대로 가업을 물려주는 전통이 아직 존재하는 일본 사회에서 좀 더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제가 일본인 관객이 아니니 억측이 될 수도 있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카모메 식당이 장인정신을 다룬 영화는 아닙니다만, 그 영화가 주는 편안함과 고요함, 느긋함이 이 영화와 같은 결을 가지는 것 같았어요. 더불어 지금은 사내대장부 같은 역할만 잔뜩 맡는 리우예의 젊은 시절 청초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재미 중 하나겠네요. 지금의 목소리와 비교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위챗에 올렸던 감상문을 공유하며 오늘 리뷰 마치겠습니다.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譯] <그 산, 그 사람, 그 개>, 리우예의 데뷔작! 후난의 수이닝에서 찍었다는 이 영화는 곳곳에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 숨어있다. <아빠? 어디가?>를 보면 리우예가 아들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영화를 찍던 시기의 스스로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용은 대체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을 하면서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거리를 좁혀가는 내용인데, 내 생각엔 이 영화가 상을 받은 이유는 그 내용 때문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영상미에 있지 않나 싶다. 리우예가 막 졸업했을 때 찍은 영화라고 하는데(바이두에서는 대학교 2학년 때라고 함), 그래서 그런지 무척 맑게 나오고, 지금의 싸나이 같은 느낌은 보이질 않는다. 그것도 나쁘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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