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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 Dec 26. 2019

마무리: 그 이후

X와 D와 G는 승진했다.
여기 등장한 사람들은 이 셋과 더불어 모두 해당 회사 현직이다.

물론 나는 아니다.


나는 그 회사를 떠났다.
그 후에도 그 회사에 수차례 출입했고,
혹은 그 회사에서 다시 일할 뻔한 적도 있다.

그 회사를 떠난 이후 글쓰기를 소재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내가 이 회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그 회사를 떠났지만 내가 소재를 모으는 취재 방법이나 글을 쓰는 방식에 있어서 그 회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회사에 불만이라는 것을 가질 줄 몰랐던 입사 초기에는 스펀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노력했다. 덕분에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고급기술을 체화했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하는 일이 올가미처럼 느껴졌다. 지옥 같던 곳을 벗어나기는커녕 내가 그 회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만 증명했다. 그 회사에서 익힌 스킬로 그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 글의 목적은 X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 개입된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 자신의 이야기인줄 알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이 글을 단서로 해당 기관이나 사람들을 알아내지 못하기를 바란다. 외부인이 이 기관이나 신원을 알아냈다면 그것은 내 실수다.

나와 업무적으로 연락을 하려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개인정보에 대해 병적인 수준으로 방어했다. 언론에서 일하지 않겠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이중적인 자리를 만들었다. 내가 여기서 한 이야기들은 나에게 가시적인 불이익을 줄 수 있는 일이며 공개되면 불이익의 영역이 늘어날 수 있다.

이를 알고도 알리기로 마음먹은 것은 답답해서다. 더 이상 도망치기 싫어졌다. 언젠가 X에게 어디까지 도망갈 것인지 물었던 것처럼 나도 이 일 때문에 어디까지 도망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말미암아 나는 왜 신원을 감추고 숨어 지내야 하는지, 왜 두 명 세 명의 나를 만들어야하는지.

이 일은 몇 년 전 얘기고 오래 지나다보니 잊어가기도 한다. 그래도 아무 기록 없이 이 시간을 지나 보내면 지난 몇 년간 암흑 속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지낸 게 억울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쉽지는 않았다. 이 일을 하면서 다시 꿈에 이와 관련된 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취했던 방법은 정답이 아니다. 정답이라고 부를만한 대처가 있을까마는 적어도 나는 이 일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모든 방법을 다 써봤기 때문에 원한은 있어도 미련은 없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 나처럼 대처하라고 말할 생각도 없다. 돌아가는 방법인데다 좋은 결론을 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피해자라면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이후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정하기 바란다. 여기서 말하는 생존은 사회적 생존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정신적인 생존을 의미한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사적인 이야기지만 이 일이 내가 사회적인 관점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다방면으로 생각할 여지를 주는 이야기가 될 것을 확신한다. 나 아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X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 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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