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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새들이 가장 먼저 먹는다는 대궐찰

새들과 나의 취향은 좀 다르지만

토종쌀 중에서도 대궐찰이 궁금해진 것은 창원 주나미 농장을 방문하고 난 후다. 우봉희 농부가 "대궐찰은 토종쌀 중에서도 새들이 제일 먼저 먹어치운다"는 이야기를 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주나미농장은 토종, 개량종, 일본종 등의 벼농사를 전부 자연농법으로 짓는다. 농약이 없으니 새들은 다 먹을 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궐찰을 제일 먼저 먹어치운다는 말이다. 주나미농장은 새들의 천국 주남저수지 바로 옆이라 새피해는 기본적으로 안고 간다지만 이건 농사를 지을 수가 없을 정도라는 것. 


걱정할 것 없다. 우보농장에서는 구할 수 있다.


대궐찰은 이름만 봐도 진상미 느낌이 나는 쌀이다. 정미기가 생긴 김에 호기롭게 현미를 직접 찧어서 먹겠다고 결심했다. 갓도정이 God도정이라는 원리.


현미는 제법 알이 굵은 편이다.



하지만 막상 도정을 해보니 쌀알이 많이 깨지는 편이고 상태가 별로 좋게 안 나온다. 5~6분도 정도로 낮추어서 해보지만 역시 쌀알은 좀 깨진 것이 많은 편. 사진은 3분도 정도로 도정한 것인데, 사실 이 상태면 그냥 현미다.


지어나온 밥을 봐도 그렇다. 딱 현미밥 상태.


현미밥이 살짝 거친 것 빼놓고 백미보다 못할 게 없다. 고소한 맛은 더 강한 편이고 향도 복합적이다. 과연 맛있는 밥이다..


그래도 기준은 역시 백미로 봐야겠지. 현미가 몸에도 좋고 맛도 좋다지만 나만해도 며칠 계속 먹으면 기분이 좀 까끌해진다.


쌀알 사진을 따로 안 찍었는데, 이건 좀 무리해서 7분도 도정을 한 다음 밥을 짓는 것이다.


싸래기가 퍽이나 많아서 밥의 식감은 내려놔야겠다 싶다. 가뜩이나 찹쌀인데...  


쌀알은 7분도 도정을 하면 약간 거뭇한 쌀알들은 있어도 거의 하얀색인데 밥은 지어놓으니 살짝 색이 있다. 


밥은 전형적인 찰밥으로 부드럽고 탄력있고 달큰하다. 과연 좋은 밥맛이다. 싸래기가 많은 부분은 식감이 갑자기 확 물러지는 것이 옥의 티. 이게 쌀의 특성인지, 혹은 잘 자라지 못해서인지, 혹은 건조나 보관에서의 문제인지 등은 확실히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지만 일단 이런 상태라면 상품성은 좀 떨어진다고 봐야겠다. 맛은 있는데 찹쌀 계열에서 확 눈에 띄는 특징이 있는 편은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오늘의 밥짓기는 쌀알 상태 보정 없이 점수를 준다면 77점 정도. 



우보농장 누리집에도 사진이 없다. 씨앗은행에도 자료가 없다. 토종쌀이 자료가 없다는 게 드믄 일도 아니긴 하지만.


조선도품종일람의 부록에는 '대궐도(大闕稻)' 항목에 이칭으로 '대골도(大骨稻)'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중부내륙지방을 중심으로 30여개 시군에서 재배했었다 전한다. 그런가하면 '대궐나(大闕나, 찰벼나)'라는 쌀이 논찰벼 항목에 또 기록이 되어있다. 이름은 기록에 있되 구체적으로 재배된 지역의 기록은 '대궐도'만 있고 '대궐나'는 없다.


'도'는 메벼를 뜻하고 '나'는 찰벼를 뜻한다. 밥을 지어보면 이 쌀은 분명 찰벼다. 기왕 대궐도와 대궐나가 별도로 기록이 된 것은 당시에 메벼와 찰벼가 각각 있었던 증거라고 본다면 이 쌀은 아마도 '대궐나'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그래서 대궐찰.  


새들이 알아서 먼저 먹어치운다는 대궐찰. 까락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새들이 즐길만한 맛의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찰밥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렇다면 술로 돌파구를 찾아볼까 싶어 삼양주를 담궜다. 오늘내일은 술을 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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