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에게 프로포즈를 해주고 싶었다.

여자의 프로포즈 그러나...

by 삶은 별

결혼식을 한 달쯤 앞둔 퇴근길 저녁은 핸드백 가득 담아놓은 청첩장을 전달하러 다니는 시간이었다.


"결혼 축하해!

"고마워"

"근데 너~ 프러포즈는 받았어?"

"그럼 당연하지~"

"올~역시 멋지다! 합격이네~"


프러포즈는 도대체 결혼 준비의 몇 번째 커트라인쯤인 것일까?

어쩌면 주변 친구들이 하나같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챗봇처럼 예랑이의 프러포즈 여부를 물어보는지. 프러포즈 안 받으면 어디 살아가겠냐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당연한 듯 물어보는 친구들이 조금은 얄궂게 느껴지기도 한다.


"야 합격은 무슨 프러포즈 안 하면 결혼 못하는 거임? 그럼 여자들은 결혼 못하는 거네 프러포즈도 안 하는데! "

"얼씨구~무슨 그런 소리가 다 있냐? 프러포즈는 원래 남자가 하는 거지~남자만!"


내 친구들이지만 너무나 서슴없이 던진 '원래'라는 말에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프러포즈는 남자만 해야 하는 거라고 누가 정해 놓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대부분의 매체에서 남자가 프러포즈를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나와서였을까.. 참 많은 사람들이 프러포즈는 남자가 하는 거라 말한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나도 결혼할 때가 되면 프러포즈를 꼭 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솔직히 어릴 적부터 자꾸 체육 반장은 남자, 환경미화부는 여자 이렇게 뭔가 여자와 남자의 선긋기를 해버리는 게 살짝 싫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그저 모든 것을 다 동일 선상에서 생각하기 시작했었다. 공부든, 놀이든, 먹는 것이든 모든 것에 남과 여를 구분하는 것은 웬만해서는 나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물론 신체적인 부분에서의 것들은 어쩔 수 없는 예외지만!


연애를 할 때는 물론이거니와 소개팅을 할 때도 남자가 다 뭔가를 해야 하는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더치페이 문화가 참으로 자연스러웠지만 내가 대학생이었던 15년 전만 하더라도 남자들에게 꽤나 인기 있던 몇 명 동기들은 소개팅=밥 공짜로 먹는 날이라고 생각하며 만남을 빙자한 한 끼 해결을 하러 다니는 애들도 있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이었어도 이만큼의 선긋기를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은 들지만 뭐 그렇게 인기 있는 여자로 살아보질 않은 관계로 나는 남녀의 벨런스를 적절히 잘 맞추며 그럭저럭 평범한 상태로 나는 줄곧 공평하게 살아온 것 같다. 서로 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너도주면 나도 줄게'의 영역을 아주 잘 지켜온 듯하다. 그 덕분으로 소개팅과 연애에 이어 우린 결혼 준비도 부모님 손 안 빌리고 우리 선에서 알맞게 했고 프러포즈 조차도 공평했다 우린!


나에겐 어쩌면 프러포즈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결혼을 하기 앞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담은 내 마음을 알려주고 앞으로 함께 잘 살아가자는 약속을 전하는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은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모든 남자들이 하는 프러포즈 그 이상으로 아무도 아닌 날 나를 감쪽같이 속여 서울 어느 호텔 스위트 룸에서 풍선 장식에 음악에 통유리 야경 뷰에 룸 곳곳에 붙여놓은 깨알 같은 진심이 담긴 편지와 그리고 화룡점정 반지로 나의 눈물과 콧물을 쏙 빼어 감동 풍년의 프러포즈를 선사해주었다. 그 덕에 친구들이 프러포즈에 프자를 물어보면 어깨에 심한 자신감이 솟구쳐 매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상상도 못 했던 그런 프러포즈를 나는 받아버렸다.

나는 그도 다른 남자들과 유사하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누가 봐도 오늘 프러포즈하겠군 하는 그런 날 그렇게 프러포즈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확하게 나의 예상은 빗나갔고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자랑쯤은 해볼 만한 프러포즈를 받아버렸다.


사실 나는 남편보다 더 먼저 프러포즈 계획을 했었고 나의 프러포즈 계획은 내가 받았던 그 프러포즈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이것이 현실로 실행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케치북에 10페이지 남짓에 손수 그림을 하나씩 하나씩 그려 꽤 감동적이고 멋들어진 멘트를 적어 감동의 레터를 완성하고 결혼 전 미리 정리가 된 신혼집에서 (그 당시 남편은 결혼 3개월 전에 신혼집에 미리 들어가서 먼저 살고 있었다.) 퇴근을 하는 남편을 몰래 기다렸다가 빈집인 줄 알고 들어오는 남편을 향해 음악과 함께 스케치북을 한 장씩 열며 내 마음을 전하고 바닥에 켜놓은 초를 따라 들어오면 미리 준비해놓은 시계와 함께 나와 같이 살자는 멘트를 할 계획이었다.

뜬금없이 그리고 당연히 내가 프러포즈할 거란 걸 모를 것이기에 찐 감동을 주리라! 비록 남편이 먼저 프러포즈를 해서 내가 먼저 해주고 싶었던 것은 놓쳤지만 내가 받은 감동과 눈물만큼 너의 눈에서도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하겠노라 열의에 찬 프러포즈를 나름 준비했었다.

대망의 프러포즈 날 나는 오후 반차를 쓰고 남편에겐 회사에서 야근을 해야 한다고 둘러대곤 신혼집에서 만만의 준비를 하고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바닥에 하트로 깔아놓은 촛불에 불을 붙였다. 곧 올 시간이 됐는데 미동도 없는 현관문! 나는 30개도 넘는 촛불만 바라보다 어쩔 수 없이 모른 척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퇴근했어? 언제 집에 도착해? 얼른 집에 가서 쉬어~"

"자긴 아직도 야근해? 피곤하겠다. 나 거의 다 와가 오늘 차가 좀 막혔어 10-15분 사이면 집에 갈 거 같아"


아.. 15분 나는 그 많은 초를 다시 다 끄고 남편이 도착한다는 5분 전에 다시 초를 붙였다.

남편 도착시간 임박 몇 분 뒤면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가 들릴 것이라는 기대감에 음악을 켤 준비와 함께 모든 준비는 끝났었다! 그러나 또 시간이 지났는데도 울리지 않는 벨 내 맘같이 타들어가는 초 그러나 오지 않는 남편..


"자기야 집에 잘 도착했어? "

" 어? 아니 나 배고파서 잠깐 집 앞 마트에 왔어 먹을 거 사가려고? 자긴 어디야? "

" 난 회사지.. 알았어 맛있는 거 사서 집에 잘 들어가 "


마트라니 나는 지금 너의 프러포즈를 위해 촛불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하염없이 기다리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극도의 설렘은 사라지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과 이번 프러포즈는 대망했다는 생각에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말 안 하고 프러포즈 준비한 내 탓이지 배고픔에 집에 바로 안 오고 마트 간 남편 탓은 아닌데 자꾸만 치밀어 오르는 배신감과 어이없음에 나는 바닥에 그냥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는 사이 속절없이 울리는 도어록!


" 어? 자기 와있었... 어? 어 저게 뭐야? "

"뭐긴 뭐냐 몰라 몰라 몰라..."


결국 나의 눈물보는 또 터져버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온 남편 그리고 펑펑 우는 나! 정말 다시 생각해도 참으로 웃픈 프러포즈였다. 멜로를 기획했으나 개그콘서트로 끝나버린 촛불은 나 혼자 껐다 켰다 음악은 틀어보지도 못한 채 그래도 준비한 거 하겠다고 스케치북을 들고 꺼이꺼이 울며 프러포즈를 했다.

정말 나도 그에게 멋진 프러포즈를 해주고 싶었다. 물론 망!했지만 말이다.


두 번의 프러포즈 때문일까 우린 여전히 멜로와 개그를 오가면 잘 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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