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을 마주하는 자세

어렵지만 해볼 만한 배려의 마음

by 삶은 별

결혼 전에 엄마에게 나는 결혼하면 엄마처럼 시어머니 하고도 친구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엄마는 그래 결혼해봐라 퍽이나 엄마처럼 지내겠다. 너랑 나처럼 이렇게 지내는 것도 쉬운 거 아닌데 엄마와 딸이 아닌 시어머니와는 쉽지 않을걸?

사실 콧웃음 치는 엄마에게 보란 듯이 시엄마와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결혼하고 나서야 엄마가 말했던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좋으시고 아무리 잘해주셔도 4년 차 햇병아리 며느리에겐 시어머니는 엄마만큼의 속 편한 상대가 될 수는 없음을.. 알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시어머니 그 이상으론 좋으심에 감사할 뿐이다.


사실 결혼할 때 주변 친구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시댁과 우리 집 사이의 종교 문제였다.

우리 집은 외할머니, 할머니, 이모들까지 다 세례를 받은 대대손손 가톨릭 집안이었고 시댁은 남편과 아버님은 교회를 다니시지 않으시지만 권사이신 어머니와 집사로써 교리교사까지 하고 있는 열혈 형님이 있었다. 이미 나는 전에 4년 사귀었던 전 남자 친구의 부모님으로부터 결혼하려면 기독교로 개종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같이 개종할 수 있게 기도하자는 말도 들었던 경험이 있었던 터라 종교가 얼마나 민감한 부분인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귀고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남편에게 이야기했던 것이 종교였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우리 남편은 중학교 이후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았기에 성당에 대해서도 특별한 거부감은 없었으나 나는 남편에게 전혀 성당을 다녀야 한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우리 부모님이야 남편이 성당을 다녔으면 했겠지만 나는 종교는 절대 강요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에게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나는 매주 성당을 가고 또 그 당시 평일에는 명동성당에서 직장인 레지오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어쩌면 남편 눈엔 성당을 꽤나 열심히 다니는 사람으로 각인되었을지도 모른다. 퇴근하고도 주말에도 자주 명동성당을 자연스럽게 와서인지는 몰라도 남편은 어느 날 나에게 성당을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았었다. 티는 안 냈지만 나는 속으로 대박을 외치며 오케이 계획대로 되고 있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사실 나 교회는 중학교까지 다니고 안 나니긴 했는데.. 솔직히 종교의 필요성도 모르겠고 교회도 엄마가 다니래서 간 거긴 한데 나랑 맞는지도 모르겠고 근데 자기가 성당을 열심히 다니고 있으니 이왕이며 같이 다녀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나 한번 다녀 볼까 하는데 자기 생각은 어때? "

"진짜? 와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할 줄도 알고? 그런데 나야 좋지만 어머님이나 아버님이 싫어하시지 않을까? "

"아니야 내가 우선 말해볼게 우리 엄마도 이해해 주실 거야 걱정 마"

" 어머님이야 이해해주실지도 모르지만 나는 주변인들 특히 작은 어머님 작은아버님 그쪽분들 다 교회 목사들 이셔서 그게 더 겁난다. 원래 주변인 1.2.3이 더 무서운 거거든 "


남편이 성당을 다녀 준다고 한 것은 참 반가운 말이었지만 권사님이신 어머님을 비롯 더 나아가 큰집 작은집 식구들까지 모두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고 계셨기에 결혼에 앞서 넘어야 할 큰 산이기도 했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초조하고 불안하던지 그로부터 며칠 뒤 남편은 세상 밝은 얼굴로 약속 장소에 나왔다.


"우리 엄마가 뭐라고 했게? 궁금하지? 맞춰봐? "

"보나 마나 안된다고 하셨겠지.. 알아 종교 문제는 쉽지 않다는 거 나도..."

"아니? 우리 엄마가 교회 안 다닐 거면 성당이라도 다니면서 기도 하라고 하셨어. 같은 하느님 믿는 거니깐 성당이라도 다니라고 대박이지? "

"헐... 진짜? "


이렇게 쉽게 쿨하게 허락을 받아오다니. 그리고 자기 일처럼 좋아해 주는 이 남자 정말 맘에 들어 죽겠다.

남편은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견진까지 받는 기염을 토해 냈으며 세례를 받을 때 교리도 올 출석으로 당당히 맨 앞에서 개근상까지 받으며 그 뒤로도 행복하리 만큼 매주 둘이 성당을 잘 다니고 있다.

웃으며 살기에도 빠듯한 인생이다. 서로 조금씩 이해하며 배려하다 보면 살만해져 감


사실 결혼 전에 어머니가 허락은 해주셨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니 백이면 백 결혼하면 또 모르는 거라며 결혼시키고 딴말한다느니 종교는 주변인 1.2.3들로 인해 불화가 커지기도 한다는 등 온갖 부정적인 말들은 다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정확하게 빗나갔다. 매우 감사한 일이다.


나는 종교 불화는 물론 시댁과의 불화 따위 없이 정말 잘 지내고 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그리고 형님마저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신다. 며느리라는 말보다는 본인들 아들 이름 부르듯이 내 이름도 자연스럽게 불러주신다. 처음엔 그게 어색하더니 이제는 가족이 된듯한 자연스러움에 더 편해지고 있는 중이다. '며느라야', '며느래기야' '며느라' 참 티브이에서 많이 들어 익숙하면서도 나에게 불려진다 치면 그렇게도 낯선 그 단어를 불러주지 않으셔서 인지 시댁이라는 그 속에서 느낄법한 낯섦이 나에게는 더디게 오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에는 막연히 생각만 했던 시댁이라는 멀기만 했던 곳을 마주하고 나니 생각보다 괜찮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편할 수는 없는 곳임을 새삼 느끼고 있는 중이다.


"oo아 설거지하지 마 힘들어 들어가 있어"

"아니에요 제가 해야죠 음식 준비도 어머니 혼자 다 하셨는데요~~"


시댁에서 설거지는 내가 대부분 한다. 그런데 사람 맘이 참 신기한 것이 분명 설거지는 내가 다 했는데 기분이 하나도 나쁘지 않았다. 분명 결혼을 먼저 한 친구들이 시댁에서 결혼하고 젤 짜증 나고 싫은 게 자기 혼자 설거지 다 하는 거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어떤 친구는 설거지 하고 있으면 시어머니가 냉장고에서 반찬그릇을 더 꺼내놓고 씻어달라고 했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시댁에서 매번 설거지를 하는데 나는 기분이 전혀 나쁜 적이 없었다.

' 내가 너무 둔팅이라서 그런가? ' , ' 아님 그냥 암말 않고 설거지를 해서일까?'

아니었다. 분명 설거지를 한다는 결과는 똑같으나 한 가지가 다른 점이 있었다.

' 하지 말라고 말리는 걸 굳이 내가 했다는 거' 그러고보니 형님과 어머니는 늘 내가 설거지를 하려하면 그말이 빈말일지언정 하지 말라고 하셨었다. 물론 어느 날은 본인들이 먼저 싱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하신 날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이 '이걸 왜 나만 해야 해'라는 맘보다는 '이 정도야 내가 해야지'라는 자발적인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들었던 것 같다. 별거 아닌 일들이 시댁에서는 별게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구나 이래서 서로 잘해야 하는 것임을 새삼 느꼈던 것 같다.


가끔은 이런 나의 상황이 매우 신기하기도 하다. 이렇게 고부갈등 없이 시댁과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의 것들을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 것이 소중하면 상대방의 것도 소중하다는 아주 기본적인 진리를 이해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정말 이 부분은 매우 중요했다. 특히 시댁과 며느리 친정과 사위 사이에서 말이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 것도 나는 애들을 정말 좋아하는데 세상에나 우리 형님께서 너무 나도 사랑스러운 아들을 두 명이나 출산하신 게 아니겠는가? 역시나 나의 주변 사람들은 친조카도 아닌데 외조카 그것도 남편 누나의 자식들이 그렇게 이쁘냐고 이해가 안 간다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우리 조카들만 보면 웃음이 절로 나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조카들 덕에 시댁에는 언제나 편안한 웃음꽃이 피고 그 덕에 나도 덩달아 아이들의 재롱에 묻혀 같이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삶에서 기브엔 테이크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일방적인 요구 일방적인 헌신은 결국 안 좋은 결말을 가져 오지만 준만큼 보다 조금 더 돌려주고, 받은 만큼보다 조금씩 더 주려고 노력한다면 서로의 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시댁과의 적절한 노력은 충분히 필요하다. 분명 그분들도 가족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알고 나 또한 그들의 배려와 감사를 알기에 여전히 아무 문제없이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막대하는 시부모님들에게 마냥 잘할 수만은 없다. 잘 못하는 부분에 대해 나만 잘할 필요는 없지만 함께 조금씩 양보하며 이해하는 마음을 먼저 키워보는 것도 충분히 필요하다는 생각은 든다. 내가 잘한 만큼 상대방도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다가와주기에 문제없이 살아졌던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 절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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