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북한에서 태어났다구요?

아일랜드 IRP 받기

by 삶은 별

해외에서 장기 체류를 해본 것은 고작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9박 10일의 이탈리아가 가장 길었던 부부이기에 아일랜드에서 1년을 살아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이기도 했다. 장기 체류인 만큼 생각보다 체크해야 할 것도 많고 주의해야 할 것도 많고 알아야 할 것도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입국 허가 비자였는데 아일랜드에서 장기 체류를 하기 위해서는 IRP를 받아야 했다. 일종의 체류 허가증인 셈인데 한국에서 미리 비자를 받고 나가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아일랜드는 입국 후 3개월 내에 아일랜드 이민국에 직접 가서 IRP라는 카드를 발급받아야 하는 시스템이다. 그것도 무려 300유로를 지불하고 말이다. 그런데 더 기가 막혔던 것은 저 비자를 받기 위해서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예약을 잡는 것이 대학교 수강 신청하는 것 보다도, 유명 콘서트 티켓을 얻는 것 보다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비자받는 게 뭐라고 이렇게 야박하리만큼 어렵게 만들어 놨나 괘씸하기도 했지만 그 나라에 살려면 그 나라 법을 따라야 하니 우리도 그 예약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남편과 나는 설마 진짜 예약이 안 되겠어라는 마음으로 초반에는 신경을 쓰지 않다가 출국을 한 달 반 정도 앞둔 그것도 필리핀에 가서야 예약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이었다면 그래도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피시방이라도 있으니 집에서 안되면 피시방이라도 갈 수 있었겠지만 필리핀은 세상 느린 인터넷 환경을 가진 국가 중에 하나였기에 IRP예약을 그곳에서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 현실은 잔인했다. 예약 창을 열어도 로딩만 되고 예약화면으로 바뀌는 것도 거의 되지가 않았다.


"남편 ~넘어가져? 눌러져? 날짜가 보이긴 보여? "

"어! 화면 넘어간다 떴다.. 아.. 눌렀는데.. 아.. 안되네 진짜 느리다 여기 "


외마디 탄식을 몇 번을 질렀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가 짜증이 나기도 했다가 답답함에 할 말을 일어갔다. 이러다 아일랜드에 가서 예약도 못하고 쫓겨나는 건 아닌지 괜한 걱정마저 들었다. 결국 남편과 나는 주변에 인터넷이 가장 빠른 곳이 어딘지를 수소문한 뒤 학원 근처 커피빈이 그래도 낫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2-3일을 그곳에서 예약 전쟁을 치렀다. 그 결과 3일째 되던 날에 예약을 잡았다. 5월 10일! 5월 9일! 예약이 잡히는 순간 어찌나 소리를 질렀던지 누가 보면 우리 부부 복권이라도 당첨됐는 줄 알았을 거다. 우여곡절 끝에 잡은 IRP 예약!


그러나 아일랜드에서 비자받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IRP 예약이 잡혔다면 잡힌 날짜와 예약된 시간에 이민국에 방문해서 대기번호표를 받은 후 번호가 호명되면 그 창구에 가서 서류를 내고 300유로를 결제한 후 다시 나의 이름이 불려지면 열 손가락 지문을 다 스캔한 후 다시 기다렸다가 최종적으로 내 이름이 불려지면 승인 도장이 찍힌 여권을 받아오면 된다. 그리고 아일랜드 집주소로 IRP카드를 보내준다. 이 3가지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보통 2-4시간이라니 방학이나 성수기에는 5시간도 기다린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기에 남편과 나는 오래 기다릴 것을 대비해 만만의 준비를 하고 갔으나 다행히 우리는 남편 2시간 나는 2시간 30분 만에 끝나긴 했다. 3-4시간씩 보낸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매우 매우 빠른 편에 속한다지만 곱씹어 봐도 결제하고 손가락 10개 스캔하고 여권에 도장 찍어 주는 이 일이 뭐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1인당 대기 시간이 2-4시간인지 이해를 해보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IRP카드가 집까지 오는 시간은 최소 일주일 최대 열흘이다. 당일 배송이 되는 나라에서 살다온 나로서 열흘이라니요.. 빨리빨리로 유명한 한국사람에게 아일랜드의 업무 처리 시스템은 속이 터지다 못해 복장이 터질 만도 한일이지만 이 나라에 왔으니 우린 이나라 문화를 따라야 하기에 어느덧 나도 이 나라의 천천히 문화에 익숙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진짜 딱 11일째 되는 날 이민국에서 우편으로 IRP카드가 배송되어 왔다. 아일랜드에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우편물이라 신기하긴 했다. 우리에게도 해외 거주 주소가 생기다니 그리고 당당히 체류할 수 있는 확인 증이 발급되었다니 2-3시간을 기다린 지긋지긋함도 금세 잊어버린 채 우리 부부 IRP카드를 뜯어보느라 신났다.


"남편 IRP 카드 사진 잘 나왔어? 보여줘 봐 ~훗 완전 범죄자가 따로 없네 흑백이라 그런가?"


"내 건 양호하네 자기 사진은 얼굴만 둥둥 떠있구먼? 나 이거 슬플 때 가끔씩 꺼내봐야겠다. 하하하하 "


"아 진짜 얼굴만 나왔어 아 웃겨 ~ 어 근데 뭐야 이거 'North Korea DPR?' 왜 나는 태어난 곳에 이렇게 쓰여있어? 자긴 제대로 쓰여있어?


"어 나는 South korea라고 쓰여있는데? 저건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거잖아 "


헐.. 나의 IRP 카드에 나의 태어난 곳이 '북한'이라고 표시되어 있을 줄이야.. 어학원에 문의해보니 100명 중에 1명꼴로 가끔씩 아일랜드 이민국 직원이 실수를 한다고 했다. 한국 국적을 North Korea로 잘못 체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그나마 국적이 아닌 태어난 곳이니 큰 문제는 안되지만 그래도 가서 체크받고 수정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기분이 묘했다. 다른 나라에서 체류 허가를 받는 증명서에 '북한 태생'이라고 표시되고 보니 헤프닝이라고 마무리 하기에는 기분이 묘했다.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 그리고 왜 북한이라고 했을 때 불이익을 받으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부터 했는지 곱씹어 봐도 기분은 묘하디 묘했다. 그래도 어쨌든 그 잘못된 표시되는 사람이 하필 100중에 한 명이 나라니... 정말 운도 없다 싶긴 했다. 이민국에 또 가야 하는 것 참으로 귀찮고 참 싫은 일이지만 그래도 언제 내가 ' 북한 태생'으로 IRP를 받아 보나 싶어 이 또한 좋은 추억이었다 생각하기로 했다. 아일랜드 북한 해프닝이랄까?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90625223108_0_crop.jpeg 그 문제의 북한태생으로 받았던 나의 IRP 카드 ㅋㅋ

다음날 나는 북한 태생에 대한 정정신청을 하기 위해 이민국으로 갔다. 리셉션에 이야기하니 별일 아닌 듯 지정 창구 번호를 안내해 주었고 이민국 담당자는 아주 쿨하게 " 어머 미안해 "라는 말과 함께 카드는 수정해서 열흘 뒤에 집으로 보내준 다고 했다. 본인들의 실수 이건만 정확하게 또 열흘이라니.. 아 이나라 정말 많이 느리구나.


고객 입장에서야 답답할지 모르겠으나 일하는 직원 입장에서 세상 여유롭게 일할 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빨리빨리가 만연한 나라에서 39년을 살다가 천천히가 익숙한 아일랜드에 살아보니 굳이 빨리 하지 않아도 일을 다 처리되는 구나를 새삼 느끼며 이 나라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5시가 되면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7시면 마트조차 문을 닫아 거리에는 술집과 몇 개의 편의점들 외에는 클로즈가 된다. 개인의 삶을 더 중시하는 이들의 문화가 어느덧 익숙해져 가면서도 부러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빨리하다 보면 실수도 많아지고 빨리 살다 보면 내 삶을 잃어버리는 일이 많은데 천천히 살아가다 보면 내 삶도 덩달아 느려지고 그러다 보면 내 가 나이 먹는 것도 좀 더 느려지는 게 아닌가 싶어.. 요즘은 은근 느림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느림에 익숙해지다 보니, 참으로 여유로운 아일랜드 버스도 이제는 낯설지가 않다. 승객과 하염없이 대화를 하느라 기사님이 출발이 늦어도 어느 정류장에서 시동이 꺼져서 잠시 정차를 해도 승객들 중에 그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다.

한국이었다면... 어디 가냐고 물어보는 승객에게 '내려요 내려 버스 출발해요'라는 말이 들렸겠지.. 아니면 저 뒤쪽 어디 자리에서 '기사양반 출발 안 해? 뭐해?' 라며 누군가의 짜증 나는 목소리가 들렸겠지...


오늘도 우리 부부는 학원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엄마가 다 타고 자리에 앉을 때까지 버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어느 꼬마 아이의 우렁찬 'good morning'이라는 인사를 받고서야 버스기사는 출발했다. 그 이후에도 버스는 여러번 멈췄고 여러 번 기다려도 조용히 그렇게 종착역까지 갔다. 느림을 즐기는 이들이 부러운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