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마이크를 아시나요?
아일랜드 문화를 만나다.
사실 아일랜드에 와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회사를 그만 다닐 수만 있다면.. 한 달 내내 주구 장창 쉬면서 하고 싶은 거 해보며 살 수만 있다면.. 뭘 해도 다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매불망 아일랜드 가는 날만 기다렸건만, 한국을 벗어나 낯설디 낯선 나라에 도착해 2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살고 있는 중이지만 역시 상상했던 건 만큼 완벽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행복의 나라는 없었다. 역시 사람의 상상력이란 무궁무진하며 그에 반에 현실은 매우 사실 적임을 잘 느끼고 있는 요즘이긴 하다. 한국에서 받던 회사 스트레스도 없겠다 영어공부도 한국이 아닌 원어민이 득실 한 이곳에서 하면 꽤나 즐겁게 공부할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므로 스트레스는 여전했다. 들리지 않는 그들의 악센트, 학원만 나오면 배려 없는 빠른 영어로 이것이 영어인지 외계어인지 멘붕에 빠지는 날의 연속! 그리하여 가끔씩 내가 선택한 이 삶이 잘한 선택이었는가? 우리의 영어는 과연 성장할 수는 있는 것인가? 돈을 벌지 않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드는 날이 많아져 자꾸만 현타(?)가 오고 있던 어느 날 남편이 새로운 약속을 만들어왔었다.
"오늘 우리 반 친구와 반 선생님이 펍에서 연주한다는데 같이 가볼래? "
" 펍에서 연주를 한다고? 와 대단하다 노래 엄청 잘하나 봐? "
" 잘한다기 보단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지. 매일 수업 시간 끝나고 둘이서 막 연주하고 노래 부르고 그래.오늘 펍에서 오픈 마이크라고 한다고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하더라고. 자기 오픈 마이크 기억나지? 전에 우리 드라마에서 봤었잖아! "
" 오픈 마이크? "
그러고 보니 남편과 1년 전쯤인가 한국 드라마 '투 제니'라는 드라마에서 오픈 마이크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를 좋아했던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카페에서 매주 열리는 오픈 마이크에 참석해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 장면! '그래 오픈 마이크가 카페나 어느 공간에서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지! 말 그대로 오픈된 마이크, 그러므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들을 수 있다는 것..'오픈 마이크에 대해서 알고도 있었고 들어도 보았었으나, 한국에서는 오픈 마이크 하는 곳을 찾아다녀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었다. 그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간다거나 어느 카페에 방문했을 때 불려지는 라이브 음악에 흠뻑 취해 들어본 적은 있지 직접 찾아가서 들어본 적은 없었다.
아일랜드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하모니는 어떤 느낌 일까.. 이 곳에서 오픈 마이크를 만날 줄이야.. 워낙 버스킹 공연도 많이 하고 바에서의 연주가 매시간 매일 이루어지는 음악의 도시이기에 과연 아일랜드의 오픈 마이크는 어떤 모습일까? 은근 기대가 되긴 했다.
"8시까지 웰링턴 바에서 만나기로 했어 수업 끝나고 우린 공부하다 가면 될 것 같아"
7시가 조금 넘는 시간 남편과 나는 설레는 마음과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 정서로 8시 시작이라면 20-30분 전에는 미리 가 있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에 서둘러 도착했건만 펍의 1층엔 음악을 하기 위한 그 어떤 장소도 사람도 없었다. 종업원 한 명에게 오픈 마이크에 대해 물어보니 잘 모른다는 답변을 받았다. 장소를 잘못 찾은 건 아닌지 남편에게 재 확인을 시켜보았지만 약속 장소는 맞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괜히 왔나라는 마음이 들 찰나.. 기타를 맨 중년의 남성분이 카운터에서 기네스 맥주를 주문해서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다시 용기를 내어 또 다른 종업원에게 2층에서는 무엇을 하는 것인지 물어보았더니.. 원하면 올라가도 된다며 '오픈 마이크'라고 음악 연주를 한다고 했다. '으잉? 다른 종업원은 모른다고 했는데 ' 역시 어디에나 일 잘하는 놈과 일 못하는 놈은 다 있나 보다 웃어넘겨 보며 우리도 기네스를 한잔씩 들고 2층으로 향했다.
"남편 선생님이랑 친구 왔어? "
"아직 안 왔나 봐 안 보이는데? "
"그냥 들어가면 되나? 저 사람들은 다 노래 부르는 사람들 인 것 같은데 우리 그냥 들어가도 되겠지? "
"친구랑 선생님 온다고 했으니 우선 들어가서 앉아 있어 보자. "
생각해보니 우리는 오늘 오픈 마이크라는 말만 듣고 왔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도착하면 선생님과 친구가 노래할 준비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은 전혀 못했다. 2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람들이 보였다. ' 이곳에서 오늘 연주를 한다고?' 2층엔 무대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소박한 마이크 한대와 촬영을 위한 것인지 스마트폰 한대가 테이블 위 거치대에 올려져 있었으며 그 옆으로 연주에 도움을 줄 스피커와 음향장비 같은 기계 몇 대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기타를 한 대씩 가지고 있는 분들이 각자의 테이블에 앉아 웃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제일 뒤편 테이블에 앉았다.
"남편 우리 여기 와도 되는 거 맞지? 은근 뻘쭘하다. 아는 사람도 없고 선생님과 친구는 왜 안 와? "
"그러게 8시에 한다고 했는데 딱 그 시간에 오는 게 아닌가 봐.. 엄청 자유로운 분위기다 여기 연주만 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편하게 노래하고 그런 건가 봐 "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일랜드에서는 오픈 마이크는 페이스북에 공지되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매번 다른 펍에서 다양한 스타일로 진행된다고 했다. 사전에 신청만 하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몇 번 직접 가보니 현장에서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Meet-Up과 같이 운영되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며 서로 교류하며 서로의 음악을 페이스북에 생방송으로 방송도 하며 각자의 음악을 그들만의 색으로 공유하고 이었다.
8시 30분이 다돼서야 친구와 선생님이 도착했고 오픈 마이크도 그즈음이 돼서야 시작되었다. 거창한 인사말도 화려한 조명도 없이 중년의 할아버지의 기타 반주로 아일랜드 오픈 마이크는 시작되었다. 2곡씩 연주되는 음악... 왜 이 노래를 부르는지 혹은 본인의 자작곡이면 어떤 스토리의 노래인지를 간단하게 설명한 후 각자의 음색에 맞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틀리면 틀리는 데로 다시 또 부르면 되고 사람들은 'keep going'을 외치며 박수를 쳐주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곳.. 아는 팝송이 나오면 그 선율에 흥얼거리는 것이 즐겁고 모르는 노래가 나와도 기타 반주를 따라 어느새 그 음악에 심취하게 되는 참으로 즐거움이 넘쳤던 곳!
음악을 잘 모르는 내가 들어도 구분이 될 만큼 잘하는 사람도 있었고 실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곳에선 그들 모두가 너무나도 멋진 연주자가 되어 있음을 나는 보았다. 올해 기타를 처음 배웠다는 중년의 여성분은 느릿느릿한 기타 선율 위에 성악가 뺨치는 목소리를 담아 연주를 선보이는데 너무나도 행복하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이 절로 사람들을 미소 짓게 했다. 반주와 목소리가 틀려도 삑사리가 난들 오픈 마이크는 음악을 잘해야만 설 수 있는 무대가 아님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음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선생님과 친구의 무대! 기타는 잘 치지만 아직 영어로 노래하기는 어려웠던 일본인 친구와 기타는 잘 못 치지만 영어로 노래는 잘하는 선생님과의 꿀 케미 무대! 그들만의 흥에 취해 신나게 연주하고 노래 부르는 그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그들의 연주가 끝나자 우리 주위에 있던 분들이 나와 남편을 가리키며 너네도 노래하려고 왔냐며 원하면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우리는 들으러 왔다며 씩 웃어주고 말았다. 이럴 때 남편과 내가 기타 반주 없이도 노래 한곡 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즉석에서 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를 한곡쯤은 부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대에 선 다른 분들을 보며 그들의 재능이 새삼 부러웠다. 신은 남편과 나에게는 좋은 보이스를 선물해 주시진 않았으므로 우리는 오픈 마이크를 열심히 즐기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일랜드에 온 것이 잘한 건가 현실적 고민이 들 무렵에 만났던 오픈 마이크는 그 고민을 다는 아니지만 반이상 덜어주는 놀라운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그들 특히 나이 지긋한 중년 분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 내가 가졌던 행복하자고 시작했던 아일랜드 행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내 삶을 향해 열어두는 오픈 마이크!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그 오픈 마이크를 결국 누가 어떻게 잡고 잘 살아가느냐의 문제이지 잘살고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평가하지 않는데 굳이 평가받을 일도 없는데 나는 계속 평가를 하고 평가를 받고자 했음을 깨닫게 해 준 이 순간..
남편과 나는 첫 오픈 마이크 이후 두 번째 오픈 마이크를 갔으며.. 지금은 3번째 오픈 마이크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특별할 것 없는 장소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냥 우리가 좋아서 가는 건데 같이 가볼래? 정도로 권했지만 같이 다녀온 친구들 모두 말했다 '여기 너무 좋다 '라고..
소박한 삶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조화는 생각보다 멋졌었다. 아일랜드에서는 더... 아주 많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다.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