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일랜드에서 욱일기를 지웠다.
아일랜드에는 생각보다 한국인 학생들이 많았다. 물론 다른 어학연수 인기 지역에 비하자면 많이 오지 않는 나라라고도 하지만 아일랜드를 다니다 보면 젊은 한국 학생들이 자주 보여 은근히 반갑기도 하다. 그리고 가끔씩 20대에 일하고 공부하러 온 그들의 열정과 노력에 나는 저들 나이에 뭐했나 싶어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물론 우리 부부도 늦은 나이였지만 현재 아일랜드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 우리도 참 기특한 짓을 한 거라 다독여 본다.
점점 한국 학생들이 늘어나서인지는 몰라도 아일랜드에는 한인들끼리 만든 대규모 단톡 방이 하나가 있다.
약 1,500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이것은 내가 가입된 단톡 방 중에 최대 규모일 것이다. 아일랜드에 처음 오게 되면 제일 먼저 들어오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누군가의 초대가 있어야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 '아유모'라는 카페에서 초대 신청을 한다.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아니 매시간마다 소통이 이루어진다. 중고 옷을 거래하기도 하고, 세탁기 작동법을 묻기도 하고, 막걸리는 어디서 파는 데가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이야기가 오고 간다. 천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다 보니 누구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주며 타지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끼리 소소하게 의지하며 도움을 주는 곳이다. 우린 물론 눈팅만 하며 정보를 얻고 있긴 하지만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고 도움을 주고 있는지 볼 수 있어 때론 뿌듯하기도 하다.
정보 공유 외에도 가끔은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아일랜드 틴에이저들로부터 불미스러운 사고를 당해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모두들 나서서 내 일인 것처럼 도움을 주는 모습은 대견하기도 하고 꽤나 의지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타국에 나와서 겪은 일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다들 보듬어 주는 그 메시지들이 일을 직접 겪은 사람도 아닌 나조차도 위로가 될 만큼 많은 도움이 되곤 한다.
그러다 얼마 전 나는 더블린 단톡 방에서 참으로 대단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남편 이거 봤어? 지금 단톡 방 난리 났어. 아일랜드 어느 옷가게 벽에 욱일기를 그려놨나 봐"
" 욱일기? 그게 아일랜드에 왜 있어? "
" 아일랜드 어떤 옷가게 벽면에 욱일기가 버젓이 그려져 있었나 봐 근데 그걸 한국 학생이 보고 여기 방에 올렸어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냐고. 이런 게 버젓이 있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 당연히 말이 안 되지! 뭐라고 말을 해줘야 그들이 알지 않을까? 와~근데 누가 젊은 애들이 역사에 관심 없대! 관심이 있으니 잘못된 걸 공유할 줄 알지 멋지다! 대한민국 젊은이들! 나도 젊은이 할래! "
"지금 젊은이 하고 싶다고 할 때가 아니라~ 얼른 우리도 어떻게 해결해볼 수 있을지 고민해보자. 이거 지울 수 있도록 우리도 힘을 보태보자"
남편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불과 5-10분 사이에 더블린 단톡 방에서는 열띤 이야기가 오갔고 그 짧은 시간에 많은 한국 친구들이 그 가게의 이름을 찾아내어 그 가게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공유하고 있었고, 그사이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를 통해 욱일기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 메시지를 보내고 벽화를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그들의 빠른 대처와 반응 속도에 어안이 벙벙했다.
" 남편 우린 뭐한 거야? 우리끼리 잠깐 대화하고 있는 사이 해결? 뭐야 우린 영어로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 고작 10분 이야기했나? 욱일기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 이 친구들!!"
" 진짜 멋지다! 이게 애국이지 대단하다 다들! 우리도 앞으로 주변이라도 잘 보고 다니자 또 없는지!
와 근데 진짜 정말 빠르다 어쩜 이렇게 순식간에 모두가 하나가 돼서 이렇게 해내지? "
정말 이 친구들의 대처 능력에 우리 부부는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남편과 내가 욱일기에 대해 영어로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이 이미 그들은 영어로 그 가게에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고 너무 많은 한국인들이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다 보니 그 가게에서 이제 메시지 제발 그만 보내 달라며 본인들은 그저 디자인이 이뻐서 그린 것이지 그럴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한국 친구들이 행동으로 옮겼으면 그 가게에서 다이렉트 메시지 그만 보내달라는 요청까지 했을까? 나와 남편이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고민하고 앉아있던 그 몇 분의 시간이 순간 부끄러워졌다.
나와 남편은 욱일기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찾아야 했지만 그들은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단톡 방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그들은 이미 해외에 나와야 하는 학생들이기에 외국 친구들이 물어볼 수 있고 대처할 수 있게 우리의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충분히 준비해온 친구들도 꽤나 많았다. 생각해보면 나도 우리 반 외국 친구들이 처음에 나에게 너는 북한에 갈 수 있냐? 왜 너네는 분단국가냐를 물어볼 때 정확하게 영어로 말하기가 어려워서 결국 버벅대고 말았고 후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문장을 정리하고 단어를 찾아보고 나서 다음날이 돼서야 제대로 다시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이미 한국에서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고 또 그만큼의 영어 실력을 갖춘 상당히 멋진 녀석들이었다. 나이 마흔이 다된 우리.. 분명 녀석들보다 10년은 훨씬 넘은 세월 전에 역사를 미리 배웠을 테고.. 열 살은 넘게 그들보다 이 세상을 더 먼저 살았을 텐데 나라의 역사 한마디 제대로 영어로 말할 줄 모르다니.. 살아온 세월이 아까울 만큼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행동이 너무 기특해서 나의 무지함과 부끄러움은 내다 버리기로 했다. 이제부터 우리도 잘 알고 잘하면 되는 거니깐!!
'그렇지 남편?'
그리고 일주일 사이 한국인 학생들은 그 가게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벽면이 지워지고 있는 중이며 디자인이 새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결국 그 가게는 벽면을 다 지우고 새로 그림을 그렸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 그것을 올바르게 바꾸는 행동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지만 사실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것을 우리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아일랜드에서 해내고 있다는 게 너무 자랑스러웠다.
누가 요즘 애들은 나라일에 관심이 없다고 했는가? 누가 요즘애들은 역사에 관심이 없다고 했는가?
나는 오히려 나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나보다 훨씬 어른이었으며 그들은 나보다 더 역사를 잘 알고 그리고 대한민국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에 오면서 나 행복할 생각만 했지 다 같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잊었었다.
나는 오늘을 계기로 개인이 아닌 우리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우리 부부의 삶에 대해 생각을 조금 고쳐 먹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몸은 한국에 없지만 정신으로 이곳에 말짱히 살아 있으므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즐겁고 당당하게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그리고 여러 번 곱씹어도 아일랜드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젊은이들(우리 부부도 껴줘)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참 멋있다 너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