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그럼 안될 이유가 뭐가 있겠니?

by 삶은 별

아일랜드에 오기 전에 어학원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중에 기억 남는 것이 '틴에이져를 조심하세요"였다. 틴에이져라 함은 우리나라로 치면 15-19살 사이의 중고등학생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한데 이곳에서는 '틴에이져=위험한 아이들'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다고 했다. 특히 아일랜드의 경우 틴에이져들은 무슨 짓을 해도 벌을 받지 않는 법을 가지고 있다 보니 비행청소년으로 빠져버린 아이들의 우발적인 행동들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 학원 선생님의 경우 토론을 하는 시간에 틴에이져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손가락을 머리에 가져다 대고 원을 그리며 절말 크레이지 한 아이들이라며 한국에서 일명 말하는 x아이라는 표현과 정말 동일한 제스처를 해 보였다. '한국이나 아일랜드나 표현은 다 비슷하구나..'


물론 우리나라도 중이병이다 뭐다 해서 그 나이 때 애들이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여기의 틴에이저는 조금 더 업그레이드되어 외국인들한테는 고사하고 아이리쉬들한테까지도 해를 가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한다. 두어 달 전에는 한국 아일랜드 단톡 방에 늦게 귀가하는 한인 여성이 틴에이저들 한테 맞았다는 이야기가 올라왔고 또 얼마 전에는 틴에이저들이 긴 막대기로 동네 창문을 깨고 폭죽놀이하는 막대기를 집 화단에 던지고 다녀 몇몇곳엔 불이 났다는 이야기가 올라왔었다. 물론 아일랜드에도 우범지역이라는 동네가 있고 그쪽 지역에서 빈번이 일어나는 일들이지 아일랜드 전 지역이 이런 것은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는 있지만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움츠려 들고 이방인이 되어 다른 나라에 살아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위축된 마음을 갖게 함을 최근 들어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는 이상한(?) 틴에이져들을 본 적은 없지만 가끔씩 5-6명씩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남편 팔짱을 좀 더 꽉 잡거나 비도 오지 않는데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어 한 손에 난데없이 쥐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왜 제내들이 당신한테 뭐라고 하면 그걸로 한대 치려고? "


아무 일도 일어나지도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새삼 긴장을 하게 되니.. 별일 없이 지나고 나면 헛헛함에 가방에 우산을 집어넣으며 혼자 어이없이 웃을 때가 참 많다. 재네보다 내 덩치가 더 크면서 왜 이리도 가슴을 졸이는지 부끄럽기 그지없긴 하다. 그래도 이곳이 남의 나라이구나를 절실히 느끼게 되는 것은 그렇게 한적한 동네 안에서도 차를 타고 가면서 '니하오'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가는 젊은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앞을 차로 지나가며 놀라게 하기라도 한 듯 큰 함성을 지르고 가는 젊은애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편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뭘까? 그냥 반항심에 그런 걸까?

아님 그냥 우월해 보이고 싶어서일까?"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괜히 위축된 마음이란.. 그렇게 당당히 펴고 다니던 나의 어깨가 왜 자꾸 움츠려 들고 발걸음이 느닷없이 빨라지는지 애써 이해해보려고 해도 낯선 곳에서 산다는 이 감정을 숨기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만 같았다.


버스를 타도 처음엔 2층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개학시즌과 맞물려 2층에서 우악스럽게 떠들던 중고등학생들을 만난 후론 애써 1층이 안정감 있다며 1층에 앉게 되고, 퇴근 무렵 2층 버스 구석에서 맥주 5캔을 연달아 마시며 흥건히 취했던 아이리쉬 아저씨를 본 후로도 2층은 웬만하면 안 올라가게 된다


"요즘 자꾸 1층 좋아한다. 왜 1층이면 뭔 일 나도 뛰쳐나가기 편해서?"


자꾸 쪼그라드는 내 마음을 알아차린 게 재미있는지 철없는 우리 남편은 옆에서 자꾸 나를 놀리지만 아일랜드를 향한 내 마음은 도통 펴질 생각은 안한채 움츠려만 들어 마음이 영 편치가 않다.

그런 생활이 지속될 무렵, 여전히 나는 주변에 이상한 무리들은 없는지 매의 눈으로 사방을 살피며 걸어가는데 저 멀리 잔디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동네 아이들을 보았다. 동네 아이들이므로 전혀 겁을 먹을 필요도 없지만 흘끗 흘끗 우리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마냥 이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남편 제내들 자꾸 우리 쳐다보는 것 같지 않아? "

"무슨~ 지네들끼리 놀면서 웃는 거지 자기들과 다른 사람이 지나가면 궁금하지 않겠어? 너무 예민해지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


그러고 보면 남편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도 한국에서 외국인 보면 신기한 마음에 흘끗 보게 되면서 이곳에 사는 나는 그렇게 않 봐라 봐주길 바라는 건 조금은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음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다르게 생긴 사람을 바라보는 게 이상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너무 예민해진 내 마음 때문이었다.


"하이~좋은 하루"


운동하는 곳 근처까지 오자 저 멀리서 축구와 헐링(하키와 비슷한 아일랜드 인기 스포츠) 하던 아이들이 하이를 외치며 웃어주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으며 ' 하이'하며 손을 흔들어 줬다. 거의 자동반사 적으로 흔들고 있는 헤죽 웃고 있는 내 모습에 나도 어이가 없었다. 이토록 순박한 애들과 사람 냄새나는 아일랜드 사람인데 그저 몇몇 사람들 때문에 나는 그토록 온몸에 긴장감을 넣고 걷고 있었는지 말이다. 자동반사적으로 올라간 내손이 멋쩍어 계속 손을 막 흔들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들과 숙덕 숙덕 하더니 한 아이가 헐링채를 들고는 우리에로 막 달려오기 시작했었다.

'아 뭐지 저 헐링채를 들고 왜 갑자기 뛰어 오는 거야 가방에서 나도 우산이라도 꺼내야 하나?'


그러더니 그 아이가 뭐라고 뭐라고 하면서 뛰어 오고 있었다. 그냥 뛰어오는 것도 아니고 헐링채를 들고 뛰어오는 것이 순간 나는 얼음이 되어 남편 팔을 또 꽉 쥐고 있었다. 멀리에 있어서 뭐라고 하는 것인지 몰라서 나도 모르게 그냥 눈만 꿈벅 꿈벅하고 있었다. 가까이 오니 들렸던 그 아이의 음성


"혹시 제가 한번 안아 봐도 돼요? "


'얘 지금 뭐라는 거니... 나를 안아준다고? 네가 나를 왜?' 그러고는 나를 꽉 안아주더니 씩웃으면서 동네에서 가끔 우리 지나가는 거 몇 번 봤는데 반가워서 인사하고 싶었다며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하면서 다시 운동하러 뛰어가는데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남편 들었어? 안아 봐도 되냐고? 팔을 벌리고 뛰어오던 저 아이 표정 봤어? 세상에 어쩜 저렇게 이쁘지? 나 지금 포옹 한거 맞지 동네 아이와?


남편은 정신 차리라며 내 얼굴 앞에서 손을 여러 번 흔들었지만 도통 이 기분에서 풀리지가 않았다. 집에 가는 내내 나도 모르게 그 아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일랜드 애들이고 어른이고 무섭다며 그렇게 겁내더니 한번 안아줬다고 이렇게 사람이 달라 질수 있냐며 자꾸 놀린다. 나는 여전히 남편의 놀림감 1호 아내였다.


그 아이는 천사였을까? 그간 3-4개월 동안 아일랜드 사람을 향한 나의 경계심 가득했던 마음이 한방에 사그라짐을 느꼈던 날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사람 사는 곳 다 비슷한데 내가 조심하고 조금의 경계만 해도 괜찮을 터인데 나는 너무나도 심한 방어벽을 스스로 쳤던 건 아니었을까 싶어 앞으로는 슬그머니 우산을 꺼내 쥐는 일은 하지 않아 보려한다.


나를 안아봐도 되냐고 했던 그 꼬마의 영어 문장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다만 그 영어가 자꾸 내 귓가엔 내맘대로 해석한 한국말로 맴돈다

“누나, 한 번만 안아봐도 돼요?”

누나라는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내 맘대로 누나랜다.그리고 좋덴다...헐링 소년의 허그가 엄마뻘 되는 누나의 가슴을 살짝쿵 설레게 해 주다니.. 아일랜드에 있는 동안 틴에이져들의 횡포는 있을지언정 그것은 다른 곳 이야기 일뿐 이곳에 사는 내 마음은 좀 더 편하게 살만해질 것 같아 그 아이에게 고마움을 전해 본다.

엄마뻘되는 누나는 헤벌쭉 기분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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