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안되면? 하늘 한번 보자나? 공부가 절로 된다?
나는 예전부터 통유리로 된 고층 집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집은커녕 한국에서도 아파트 3층에 살다가 왔으며 아일랜드 와서도 단층이다 못해 주인집의 뒤뜰에 있는 조그만 별채 같은 스튜디오에 살고 있으니, 통유리는 고사하고 여전히 문도 제대로 활짝 열지 못하는 그런 집에 살고 있다.
나는 그래도 여전히 왜 그렇게 통유리가 좋은지 모르겠다. 뭔가 내 눈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넓디넓은 세상을 한 폭의 공간에 담아 놀 수 있는 느낌이어서 인지는 몰라도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는 노답이라는 통유리가 아직도 나는 너무너무 좋다.
한국이야 고층 빌딩에 야경 유명한 곳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통유리일 테지만 아일랜드에서는 고층 이어 봐야 5층 -6층이 전부이며 많은 집들이 예전 그대로의 건물을 고수하는 곳이 많다 보니 조그마한 창문이 대부분이라 뷰 좋은 통유리 건물을 찾아보기는 꽤나 힘들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다녀온 던리어리라는 곳에서 기가 막힌 통유리 건물을 보게 되었다. 그저 조그만 항구가 있는 도시에 맛집 몇 개가 있고 다트를 타면 시내에서 20-30분이면 간다기에 바람이나 쐴 겸 다녀온 그곳에 참으로 멋들어진 도서관이 하나 있었다. 세상 정적이며 현대식 건물이라고는 몇 없는 아일랜드에 그것도 시티에서 20-30분이나 떨어진 그곳에 웅장하게 지어진 도서관의 모습은 외관부터 장관이었다. 흡사 우리나라의 신식 빌딩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멋진 모습이었다.
사실 이곳은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아직까지는 유명하지 않은 곳이다 보니 던리어리를 다녀온 사람은 많은데 이곳이 도서관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꽤나 되었다. 우리도 그랬었다. 처음 던리어리를 갈 때만 해도 주말에 약속도 없고 해서 아이스크림이 맛있는 곳이 있다기에 바다도 볼 겸 그냥 바람 쐬러 갔다 왔을 뿐이었다. 그러다 던리어리라는 이름이 재미있어서 지역에 대해 궁금해서 찾아보다 보니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찾다 보니 세상 멋진 곳이었는데 아이스크림에 그만 눈이 멀어 명소를 몰라보았다. 미안하다 던리어리
우린 던리어리를 다시 갔고 그 후로 우리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그곳을 가고 있다. 학원 방학 주간인 요즘은 일주일에 3번 이상은 가고 있으니.. 나는 던리어리와 사랑에 빠져 버릴 것만 같다. 이미 빠져버린지도.. 그럴 만도 한 것이 내가 제일 사랑하는 통유리를 가져버린 도서관이라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공부하자는 핑계로 자꾸자꾸 이곳에 오게 된다.
나에게 도서관이란 빽빽하게 쌓여있는 책들 사이에 덩그러니 놓인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곳... 가끔은 칸막이가 없는 책상 덕에 옆사람과 앞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들어 올린 고개에 앞사람의 눈이라도 마주칠까 조심스럽게 공부해야만 하는 답답하기 그지없는 그런 곳이 도서관이었다. 아일랜드 시내에 있는 도서관들도 한국 도서관과 다를 바 없는 더없이 많은 사람들로 꿉꿉한 냄새만이 진동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도서관이었다.
그런 나에게 던리어리의 도서관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아일랜드까지 왔으니 공부 열심히 하라고 통유리로 지어준 세상 멋들어진 유일무이한 나만의 공부 공간 같았다. 아무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하늘과 바다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 마구 마구 샘솟아지는.. 혼자 중얼거리며 절로 공부가 되는 그런 마력의 공간 같았다. 공부하다 고개를 들면 눈앞에 펼쳐진 바다라니.. 바다를 정답 삼아 공부하다 보면 집중이 그렇게 잘되어진다. 놀랍도다!
그동안 내가 다녔던 그 도서관들은 감옥이었던가 싶어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을 찾게 되는가 보다. 집에서부터 2시간은 족히 걸리는 이곳을 버스를 2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이곳을 나는 출근 도장을 찍듯 오며 그동안 영어 공부하랴 아일랜드에서 살아가랴 알게 모르게 받은 스트레스마저도 바다 뷰와 하늘 뷰를 보며 날려 버릴 참이다.
단 한 번도 이렇게나 활짝 하늘과 바다와 맞닿은 채 공부를 해본 적이 없다 보니.. 늘 공부하다 고개를 들면 꽉 막힌 하얀 벽과 마주하게 되어 졸린 눈을 비비며 못다 한 공부를 꾸역꾸역 채워 넣기만 바빴는데.. 파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전경을 보며 한없이 공부할 수 있기에 생각보다 마음에 위안을 주며 고도의 집중력이 샘솟음을 느낀다.
꽉 막힌 건물이 아닌 어두 침침한 건물 안이 아닌 확 트인 공간에서 하는 공부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밝게 하고 이렇게나 공부가 재미있게 느껴질 수 있는 거였다니.. 내 사랑 통유리는 여전히 나에게 좋은 기운을 가져다주는구나 싶어 나의 유난적인 통유리 사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어필해본다.
이토록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하루 종일 공부해본 적이 언제인지.. 가끔씩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도 모른 채 하루를 보내버린 그 시간들이 주마등같이 스쳐간다..
그래도 오후에 무자비하게 내리쬐는 태양빛은.. 솔직히 너무 감당하기 벅차 나는 가끔씩 애써 다른 자리로 옮길 때가 많긴 하다. 통유리는 오전에 가 좀 더 좋았던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