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을 뛰어다니는 산타할아버지!

선물은 안 주셔도 됩니다. 행복했으니까요!

by 삶은 별

아일랜드에 살면서 자주 보는 모습 중에 하나가 뛰어다니는 사람들이었다. 한국에서 내가 자주 본 뛰어다니는 사람이란 대부분 늦어서 뛰는 사람들이었건만 이곳에는 운동을 위해 뛰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오히려 땀같이 내리는 비가 더 좋은지 더 많은 사람들이 동네를 그리고 거리를 많이들 뛰어다닌다. 돈 안 들이고 하는 최고의 운동이 '런'임을 알면서도 나의 몸뚱이는 도대체 반응을 해주지 않는 것일까?

달리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인지는 몰라도 아일랜드엔 '달리기' 관련 행사가 많았다.


"친구가 다음 주에 'Santa Dash'라고 달리기 하는 무슨 행사 있다던데 같이 해볼래?"

"이름 재밌다. 산타들이 뛰는 마라톤인가? 산타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는데? 진짜 옷 입고 막 뛰는 거였으면 좋겠다. 내가 산타가 돼서 막 뛰어다니면 엄청 행복할 거 같지 않아? "

"그러게 나는 산타할아버지 옷을 입을 사람을 본 적은 있어도 한 번도 내가 입어본 적이 없어서 산타복 입는 것도 좋은데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뛰면 은근 신나겠는데? "


산타복을 입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연극이나 행사를 위해서 입는 게 아닌 그냥 진짜 산타복을 입고 그리고 달리는 건 어떤 느낌일지! 산타 대시는 영국이나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들 하는 행사인데 보통 시내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일랜드는 특별하게 시내가 아닌 해변가에서 행사를 한다고 했다.

'해변을 달리는 산타들'

행사 참가는 25유로를 결제하고 행사 전날 혹은 당일에 산타 복을 수령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5km/ 10km 선택 후 달리면 되는 행사이다. 불 아일랜드라는 더블린 시티에서는 약간 떨어진 곳으로 대중교통도 버스 말곤 없는 그래서 차가 없으면 30분 이상 걸어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아뿔싸! 우린 산타라는 말에 빠져 그곳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미쳐 고려하지 않은 채 결제를 해버렸다.


"여기 우리 집에서 차로 가면 20분인데 대중교통은 1시간 30분으로 나오는데? 버스를 두 번 타야 하는데 그것도 시내를 다시 나가서 또 한 번 타야 해.. 대박 그리고 버스 내려서 30분은 걸어야 되는데? "

"헐.. 당연히 시내에서 하는 줄 알았는데 불 아일랜드는 어디에 있는 거야? 와 그리고 버스도 일요일엔 8시 첫차야.. 그리고 배차 간격이 50분. 이야 산타할아버지 되려다가 가기 전에 지치겠다 우리 "


산타복을 입고 하는 행사라 마냥 좋아하긴 했지만 행사장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도 험난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왜 당연히 시티에서 행사를 할 거라 생각한 것인지..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었다.

12월 1일 일요일 아침 우린 설레는 마음을 안고 1시간 30분의 버스를 타고 불 아일랜드 근처에 내려서 행사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간간히 옆으로 지나가는 차 안에 산타복을 입고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그리고 저 멀리 행사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산타복을 입은 사람도 보이기 시작했다.


"와~ 저기 산타복 입고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 봤어? 자기는 산타복 어제 미리 수령했으면 저렇게 집에서부터 입고 올 수 있었겠어? "

"음.. 바지까진 못 입지 않았을까? 윗도리 정도야 옷 안에 입을 수 있는 정도? 그러고 보니 아까 버스에서도 산타복 그대로 입고 있는 사람 있었어. 우리나라 사람들이나 주변 의식하지 은근 유럽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 눈 의식 안 하잖아. 이런 건 좋은 거 같아. 입는 게 어때서 내가 편하면 입는 거지? "

"맞아 핼러윈 행사 때도 애들 다 분장하고 버스 탔는데 3-4명이 다 따로 탔는데 다 조커 분장하고 타서 우리가 올해는 조커 풍년이라고 했던 거 생각난다. 와~저분은 반바지 산타야 대단하다. "


나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자꾸 산타복을 입은 사람들 입고 나타나는 사람들에 계속 시선이 가고 관심이 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타 복장을 다 갖춰 입고 행사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나는 산타복을 미리 수령했어도 감히 대중교통을 다면서 그 옷을 입지는 못했을 것 같다. 하나둘 모이는 산타들을 보니 행사장이 가까워 왔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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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은 생각보다 조촐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멋졌다. 그 흔한 광고 현판도 화려한 장식 하나 없이 오롯이 피니쉬와 스타트 라인 그리고 해변으로 길게 뻗은 km안내 현판 이것이 전부였다. 가방을 보관할 장소도 옷을 갈아입을 장소도 딱히 없이 바위 위 잔디 위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산타로 변신 중이었다. 소박한 행사장을 가지각색의 산타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강아지를 데리고 온 가족, 아빠 어깨 위에 목마를 한 어린이 산타, 마라토너같이 반바지 차림의 산타 등 산타들이 해변에 모였다. 하나같이 들뜬 표정으로 너무나도 행복한 모습의 산타들과 해변 위에 있으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모두들 이 즐거운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출발 선으로 모이라는 안내가 울리고 '탕' 스타트 소리가 났다. 500명은 훨씬 넘어 보이는 산타들이 우르르 움직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KakaoTalk_20191208_140202462_04.jpg 날씨는 흐렸지만 그 속의 모든 산타들은 행복해지고 있는 중이다.


'와~~'하는 함성 소리와 함께 시작된 산타 대시! 달리는 사람들 사이오 '하하 호호 ' 웃음소리가 번졌다.

산타 대시는 순위를 겨루는 대회가 아니다. 산타옷을 입고 해변을 달리는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 모인 달리는 행사? 사실 진짜 선수처럼 뛰는 사람들 은전체의 1/10 정도였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하며 그저 그들만의 산타 대시를 즐기고 있었다. 어찌나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와 웃음이 묻어나는지 달리는 뒷모습이 반환점을 돌아오는 그들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오랜만에 뛰니깐 기분 정말 좋다. 해변을 뛴다는 것도 좋은데 이렇게 모두 같이 산타옷을 입고 뛰니깐 뭔가 나 진짜 산타가 된 거 같아 "

"근데 산타가 된 건 좋은데 자기 바지 구멍 난 거 같은데? 한국에서 오신 산타 할아버지님~ 바지에 구멍 나셨어요"


내 바지는 이미 가랑이 사이가 너덜너덜 구멍이 나고 있었다. 사실 산타복을 입는다고 해서 이번에 입고 내년에 조카들 크리스마스 때 요거 입고 산타 할아버지 변신해야지 라는 큰 꿈을 갖고 오긴 했는데 막상 산타복을 받아보니 그 계획은 산산이 부서졌다. 면이 아닌 세상 허술한 부직포로 만든 산타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나 여기나 원가를 줄이는 건 제품이었나 싶어 아쉽긴 했다. 그 덕에 레이스 도중 나의 바지에는 아름다운 구멍이 났지만 그럼 어떠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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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산타가 웃으며 함성 지를 수 있는 이곳.

좋아하는 사람들과 실컷 웃으면서 한없이 걷고 뛰었던 하루. 결과가 딱히 중요하지 않아 순위가 필요 없는 피니쉬 라인에서는 모두가 손뼉 쳐주고 응원해주는 줄 수 있는 그런 곳!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너와 나를 함께 응원해 주고 부둥켜안아 잘했다고 해주는 그곳이 좋았다.


산타 할아버지는 선물을 주신다는데 나는 큰 선물 대신 은근히 멋진 산타들을 그것도 해변 위에서 많이 만났다. 힘내라며 하이파이프 해준 산타. 아빠 어깨 위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연신 살인미소를 날려주던 꼬마 산타. 내 이름을 불러주던 피니쉬 라인 근처의 MC 산타 그리고 행복해 보인 모든 다른 산타들


그곳엔 참 행복한 산타들이 많아서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산타할아버지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괜찮아요! 오늘 너무 행복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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