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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Aug 19. 2021

대화의 희열

리액션 장인

우리 남편은 리액션엔 잼병이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씩 맥이 빠진다. 


"남편 맛있어?"

"어 맛있다"

"남편 먹을 만해"

" 어 먹을만해 "


물론 내가 음식을 기가 막히게 잘하거나 플레이팅을 엄청나게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알면서도 사람 마음이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라면 맛이 기가 막히게 맛있지 않아도 적당한 기분 좋은 리액션은 해주면 좋겠다는 기대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 기대감엔 아랑곳없이 나는 정직한 내 감정을 소중하게 말하겠노라며 복붙을 한 듯 내 말을 이어서 뱉어주는 이 무덤덤하고 건조한 남편의 반응.

처음엔 무덤덤한 남편의 반응이 내가 한 것들이 별로이거나 내가 한 말들이 별로 시시껄렁한 말인 건가 싶어 괜히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었다. 어디서 말로는 주눅 따윈 들지 않는 나인데 언젠가부터 남편과 말할 때는 무반응인 리액션에 찔금 찔금 남편의 반응을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그동안 나의 주변인들은 내가 재미없는 말을 하더라도 그렇게 나만큼 리액션을 잘해줬던 거였나 보다. 가만 생각해보면 내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의 어깨를 사정없이 때리고 그렇게 손박수를 쳐대며 누구의 말에도 그렇게 반응을 잘해줬었다. 그래서 늘 시끌벅적하여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니 말이다. 내가 잘 말해서가 아니라 나만큼의 리액션장인들이 공존해 줬던 거지! 고마운 사람들!!


그래, 살다 보니 그냥 우리 남편은 리액션이 적은 남자였다. 내 주변에 뜻밖에도 리액션을 잘해주는 사람이 많았고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렇다고 내 이야기를 안 듣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저 리액션 반응이 고팠던 거다. 매번 듣는 것만 잘하다 보니 괜히 리액션에 박한 그가 야박하고 억울한 감정이 드는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니 가끔은 얄밉기도 한 그런 맘이다. 

리액션 잘하는 와이프를 둔 우리 남편은 그게 얼마만큼의 장점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요즘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퇴근길에 차에 타면 퇴근한다는 보고를 하듯 매일 전화를 한다. 그리고는 이내 본인의 회사에서 있던 일들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들어줄 거라는 걸 아는 듯 리액션을 딱 준비해 놓은 거 다 아니깐 다 뱉어놓아 달라고 아주 신나게 그리고 밝게 본인의 하루 일과를 뱉어 놓는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없고 그저 우리 남편의 시시콜콜 스트레스받았을 하루 일상인데 리액션 장인인 나는 옛다 받아라 하는 마음으로 성심 성의껏 우리남편의 소소한 하루 이야기를 들으며 반응을 시작한다. 


"와~ 그랬어? 그놈이 잘못했네"

"와~ 우리 남편 스트레스받았겠다"

"어머 어머 미쳤나 봐 그 사람들"

"대애박~ 정말? " 


나의 반응에 신이 났는지 끝없이 이어지는 우리 남편의 대화! 내가 말할 때도 제발 좀 이렇게 반응을 하라고 이 양반아 라고 말해주는 대신 나는 좀 느껴보라며 더없이 더 열심히 리액션을 해보지만 퇴근 직후 식탁에서의 우리의 대화에서도 그의 반응은 잔잔한걸 보면 내 남편 반응은 어디 안갔다. 나의 반응을 보며 보고 배울법도 한데 그대로이다. 

어느 날 남편에게 진지하게 말한 적 이 있다. 


"남편 그거 알아? 언젠가부터 남편은 나에게 말할 때 엄청 신나 있고 말도 많아진 거? 나는 결혼 전엔 자기가 이렇게 수다가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

"그러니깐 말이야. 나는 자기한테 막 전화하고 싶고 다 말해주고 싶고 자기랑 대화하면 되게 좋아. 

너무 편하고 그냥 좋아"

" 뭐야 자기는 나랑 대화하는 게 좋으면서 근데 내가 하는 말엔 왜 그렇게 반응이 미지근한 거야? "

"내가? 아니야 나 자기 하는 말 엄청 잘 듣고 있어. 다 잘 듣고 있어 내가 얼마나 잘 듣고 있는데 나처럼 잘 듣고 있는 남편이 어딨다고 진짜야~" 

"그렇지 자기는 정말 잘 들어주지 근데 그냥 듣기만 하면 어떡하니~ 나처럼 반응을 해줘야 말할 맛이 나지~ 기억 안 나? 자기가 말할때 나의 리액션 잘 생각해봐~ 뭔가 반응이 있어야 말할 맛이 나잖아~"

"말에도 맛이 있어? " 

"......"


그저 열심히 들어주는 것이 상대방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한 이 남자. 그래 그 행동이 절대 틀린 건 아니기에 나는 더 이상 강요도 부탁도 할 이유가 없어졌다. 소통의 방법이 다른 것이지 경청의 자세가 잘 못된 건 아니니깐 말이다.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이 좋아하니깐 나도 더 들어주고 더 반응해 주고 나도 좋아서 한 것이면서 나 좋다고 상대방에게 무작정 강요할 수 없는 일이므로 리액션 장인은 나 혼자 잘 운영해 나가 보련다. 

그럼에도 말에도 맛이 있지 왜 없겠는가!! 대화란 듣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눈빛 목소리를 통해 기분 상태 감정을 모두 느끼면서 소통하는 수단인데 그것을 단지 귀로만 듣고 있는 참으로 정직한 대화법 소유자 우리 남편! 자기는 열심히 들어준 건데 내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그건 아니라고 말할 권리 또한 나에게도 없다. 

물론 그 이후로도 나는 몇 번 더 남편에게 풍부한 리액션을 강요해 보았지만 사람의 성향이 어디 그렇게 쉽게 변하던가?. 안 변하더라 그러므로 나는 리액션 강요보다는 그의 리액션을 끌어내기 위한 재미있고 임팩트 있는 대화를  늘리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하며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남편,

우리 대화의 희열은 다음 생애쯤에 신동엽이나 유희열로 태어난다면 그때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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