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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Jul 23. 2021

마흔인데..서빙은 처음입니다

'실수'

얼마 전 친구들과 대학교 때 한 알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 땐 민토(민들레영토) 아르바이트하는 애들 엄청 부러워했었는데 우리 중에 민토 아르바이트생 있었나? "

"없지~ 민토는 예쁘고 잘생긴 애들 많은 곳으로 유명했잖아"

"그래서 우리가 못했나? 하하하 우린 대부분 우동집, 편의점, 독서실 같은 데서 아르바이트했구나 "


친구들과 오랜만에 한참을 웃었다. 설익은 듯 단단하지 못했지만 나름 달콤한 즙을 짜내며 보냈던 쌉쌀했던 우리의 그 시절..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그 시절 알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우동집 알바를 하다 그 뜨거운 우동을 엎질러 하루 만에 잘렸던 이야기. 이만 원을 계산해야 하는데 이천 원을 계산하기도 하고 걸레를 행주로 착각해서 혼났던 일, 매니저 언니 오빠들과 회식하며 썸 탔던 일 등 그 시절엔 짠하고 힘든 일인데도 지나고 보면 그때가 더 달큼한 시절이었음에 그리워진다.


"야 그래도 너희는 이십 대에 한 아르바이트지 난 마흔에 그것도 아일랜드에서 내생에 첫 서빙 아르바이트했잖니. 진짜 다시 신입의 마음으로 일하는데 찐 서글펐어 "


그랬다. 나는 남편과 떠난 아일랜드에서 무언가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한인 레스토랑 사장님의 권유로 덜컥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스물다섯 살 외국인 매니저를 필두로 스무 살부터 스물여섯 살까지 모두 이십대로 이루어진 선배(?)들이 대략 6명, 홀을 제외한 파트까지 보자면 10명도 넘는 이십 대 집단이었다.

회사로 치면 부장급 같은 사람이 신입으로 들어온 셈이니 그들도  내가 얼마나 애매했을지.. 이해는 가면서도 아일랜드에서만큼은 삼십 대 언니와 누나로 불려져 보고 싶었다. 근데 이십 대들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터라. 젊은 꼰대라는 말은 들어 봤는데 내가 막상 늙은 신입이 되어보니 주변이 다 젊은 꼰대들 같았다. 나름대로 정해놓은 그들만의 입사 서열 군대를 벤치마킹한 듯 정해논 그들만의 서열이 내 눈엔 그저 귀엽게 보였지만 나는 결국 그 서열의 끄트머리 마흔 살 신입 나부랭이 위치라 조용히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oo님 그거 입으시면 안 되고요. 이거 입으시면 돼요 '


새 거를 입으려고 했더니 역시나 허름한 것을 건네는 정겨운 선배님의 손길. 그리고 오랜만에 들어봤다 oo님.. 하긴 열다섯 살 차이 나는 사람에게 누나라고 하기도 그렇고 후배도 아니고 아줌마라 부를 수도 없고 그러고 보니 호칭도 참 애매하구나 싶었다. 이 나이에 아일랜드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겠다며 들어오긴 했는데 어린 친구들이 대면 대면해하는 내 연배가 나 또한 낯설었다. 유니폼을 입고 보니 나도 나름 젊어 보인다 싶었는데 2002년생이 있는 걸 보곤 젊음이라는 단어는 빼기로 했다.  매니저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이제 본격 투입이 되었다. 처음으로 안내하게 된 외국인 커플 손님. 그들이 시킨 메뉴는 된장찌개 새우튀김 순살 양념치킨이었다. 나름 순조롭게 주문을 받았다는 자신감에 카운터에 메뉴를 전달하는 순간


"oo님 이거 영어로 스펠링 그대로 적어 주셔야 해요 메뉴판 숙지 안 하셨나요? "

"아 미안해요 한글이 익숙해서 그만 "


나는 메뉴를 들리는 그대로 한글로 적었다. 물론 내가 일하는 업무 룰에 맞지 않게 한글로 적은 건 실수였으나 그 끝에 '메뉴판 숙지 안 하셨냐는 나름의 뼈 있는 멘트를 꽂아대는 선배(?)님을 보니 괜히 맘이 상했다. 그래 이곳은 한국 레스토랑이 아닌 아일랜드에 있는 한인 레스토랑이었지.. 업무 룰을 제대로 숙지 못한 백번 내 탓이지만 그래도 첫날 처음으로 받은 주문인데 매우 상냥하지도 친근하지도 않게 지적을 하는 어린선 배가 미웠다. 매니저도 외국인이며 계산하는 포스도 다 영어이기에 여기는 주문받고도 영어로 써서 줘야 한다.(말을 해줘야지 당연한걸 나만 몰랐던 거니? ) 오더지가 있어서 메뉴명에 체크만 하면 참 좋았겠지만 이곳엔 그런 건 없었다. 영어로 다시 써서 카운터로 전달해야 했다.

된장찌개 된을 영어로 어떻게 썼었지?  아... 튀김은 뭐야 튀..를 뭐라고 써야 하지? 그래도 순살은 쉽네


"doenjang jjigae 1, Saewootwigim 2, sunsalchicken1 이렇게 다시 썼어요 "

"순살은 boneless chicken으로 써주세요 메뉴판 안 보셨어요? 앞으론 잘 봐주세요 "


메뉴판을 안 봤냐고? 봤다고요. 근데 왜 순살만 스펠링이 아니라 단어로 쓴 건데요. 지네들도 '순살 하나요'라고 말하면서 결국 지적은 나에게 했다. 순살은 스펠링이 쉬워서 나는 메뉴판을 끝까지 보지 않았다. 헷갈렸던 된장과 튀김 쪽만 봤던 것이다. 왜  순살만 스펠링이 아닌 단어로 쓰냔 말인가 괜히 억울했지만 이것 또한 선배의 내공에서 나오는 지적질 아니겠는가.. 자식 좀 예쁜 말투로 친근하게 말해주면 덧나냐? 실수는 내가 했으면서도 적잖이 내 맘은 상했나 보다 마음이 삐뚤어질 기세이다.


그 뒤로도 나의 실수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비빔밥을 시킬 때 간장인지 고추장인지 받아야 하고 즉석떡볶이나 전골이 나갈 때는 미리 세팅 준비를 해야 하고 외국인은 비건과 알레르기 식품에 대해 매우 민감해서 꼭 확인해야 하는 등 알아야 할 것도 체크해야 할 것도 너무 많았다. 우당탕당 일주일이 지나 이주 차가 되니 그제야 가게 동선이 보이고 된장찌개도 이제는 잘 써지고 모든 게 '익숙'해 지기 시작했다.


생전 해보지 않은 익숙하지 않은 낯 선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하나씩 익숙함이 생기고 있는 중이었다. 문득 그동안 내가 회사에서 바라보던 신입사원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왜 이렇게 하지 못할까 알려준 내용을 보기는 보는 건가?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해는 한 걸까? 조금만 더 빨리 해주면 안 될까?... 답답한 마음에 '제대로 좀 하자 제발 좀'을  속으로 백번 천 번 외쳤던 나의 지난날의 회사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도 분명 신입 시절이 있었으면서 처음이었던 적이 있었으면서 나는 그새 나의 그때는 잊어버리고 익숙한 내 사회생활이 편해져서 신입 사원들이 낯설어했을지도 모를 처음을  모른척하고 당연히 잘해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시간을 주고 기다려주면 알아서 다 알아차리고 익숙해져서 더 나아지고 발전

할 텐데 그 시간을 너무 재촉만 했다. 조금만 더 지켜봐 주고 다독여 주고 이끌어 주면 잘한다는 것을 아일랜드에서 알바를 하면서 새삼 다시 느끼고 왔다. 어쩌다 내가 다시 신입이 되어보니 알겠더라.


다음번에 신입사원이 들어온다면 백번 이해해 주고 천 번쯤은 보듬어 주며 실수 따위는 처음이니깐 너그러이 헤아려 주는 선배가 되어 보리라.

처음이니깐 실수하는 건 괜찮다! 대신 너무 오래 끌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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