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은 별 Aug 06. 2021

백만원과 바꾼 내 마음

'치과'

그날도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열심히 걷고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다. 삼십 도가 넘는 날씨였지만 시원한 라테 한잔과 걸으면 보슬거리는 땀방울과 함께 걸을만했다. 가끔 주머니에서 어제 먹다 고이 남겨둔 비스킷 하나 정도 꺼내서 먹으면 허기진 내 입에 단 오아시스가 펼쳐지는 순간!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나는 한입에 쏙 비스킷을 넣고 한층 더 업된 기분을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앗 퉤"


비스킷의 질감이 아닌 딱딱한 무언가가 내 혀를 때렸다. 비스킷 안에 이물질이 있나 싶었는데 문제의 딱딱한 것은 바로 나의 치아를 씌웠던 크라운 덩어리였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끈적거리는 캐러멜도 아니고 비스킷 한입에 크라운이 빠질 일은 없는데 이해 안 되는 이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입안엔 이미 비스킷 잔해가 있고 크라운과 함께 같이 나온 찌꺼기들로 과자를 삼킬 수 없어 그 모든 걸 입에 물고 나는 화장실을 찾았다.

'비스킷에 이렇게 빠지나 치과의사 선생님  정말 너무 대충 해준 거 아님? 치과 가서 다시 붙여 달라고 하면 되겠지? '


나는 크라운이 빠졌기에 치과에 가서 다시 붙이면 된다는 생각에 우선 입속 찌꺼기들을 다 헹궈냈다. 입속을 헹구고 크게 입을 벌려 거울 속으로 치아를 보는데 하얗게 보여야 할 치아가 시커멓게 보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은색 크라운이 단단하게 덮여있어서 겉으로는 아무 이상도 없던 내 치아의 상태는 상상 이상으로 괴상했다. 사기라도 당한 사람 마냥 나는 그 상태에서 얼음이 되었다. 내 치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떨어진 크라운을 들고 주변에 보이는 치과로 갔다. 막상 크라운을 때어낸 실제 내 치아를 보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치아가 다 썩어 버린 건가? '

'왜 검은색이지? 난 초콜릿을 먹은 것도 아닌데 치아에 무슨 병이 생긴 건가?'

'겉은 멀쩡한데 왜 속 안이 이렇게 된 거지? '


나는 8년 전쯤에 교정을 했었다. 교정하기 전에는 치아 배열이 고르지 못해 늘 치과 가는 게 일이고 성한 치아가 하나도 없었다. 계속 놔두면 치아가 더 밀려서 나중에 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에 교정을 했는데 정말 교정을 하고 나서는 치아가 올바르게 자리를 잡으니 치과를 갈 일이 생기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 이후에 나는 당연히 교정을 했으니 여전히 내 치아는 잘 있을 거란 생각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겉으로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금은으로 잘 씌워 놨고 별다른 통증도 없으니 그 속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는 알 수가 없었던 거다. 겉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할 순 없었는데...그렇게 나는 꽤나 오랜만에 다시 무서운 치과 의자에 올랐다.


"이거 사진 찍어 봐야겠는데요 치아가 다 썩어버려서 얼마 안 남아 있어서 이 치아를 살릴 수 있는지는 더 봐야겠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치아가 썩다니 신경치료 다하고 잘 씌워놓은 내 어금니가 다 썩어서 거의 없어졌다니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거 씌운 지가 10년도 훨씬 넘은 거 같은데 씌워 났다고 괜찮겠지 하고 그냥 놔두면 안 돼요. 아무리 겉을 씌워나도 안으로 음식찌꺼기가 들어갈 수도 있고 이게 신경치료를 한 거라 환자분은 아픈지도 몰랐던 건데 안에서는 엄청 안 좋게 변해가고 있었는데 그냥 나뒀으면 치아 아예 손쓸 수도 없을 뻔했어요"


그러고 보니 오늘 툭하고 빠져버린 크라운의 주인이었던 그 치아는 내 가  대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기억도 안나는 상당히 오래전에 손을 댄 치아였다. 얼추 15년은 족히 넘었는데.. 너무 나는 치아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겉으로 멀쩡하니 그냥 넘긴 거였다. 당연히는 없는데 나는 내 몸에게도 당연히 괜찮을 거라고 해버렸던 거다. 아무 반응이 없으니 그냥 덮어놓은 채 잘 지내겠지 하며 안심을 아니 무시를 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특한 내 치아는 자기 좀 봐달라고 아등바등 애를 써보며 내가 반응이 없자 비슷 킷의 힘을 빌려 안간힘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 비스킷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나는 한참 후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잇몸만 남은 치아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사진 찍어보니 치아의 삼분의 일이 간신히 남아 있어서 그거 잘 메워보고 신경 치료했던 거 다시 약 처리해서 기둥 세우고 새로 씌우면 살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거 안되면 임플란트 해야 하는데 그게 더 고생이고 비싸서 이렇게라도해봅시다."


의사 선생님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손거울로 내 치아를 다시 보았다. 정말 기가 막히게도 어금니의 3분의 일만 그것도 거뭇 거뭇한 충치들을 한데 떠안고 간신히 하얀 치아 몇 센티가 보였다. 거울을 두고 눈을 감고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댔는데 괜히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괜찮은 건 없는데 자꾸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하며 먼저 챙겨보려 하지 않았던 나의 일상이 마구 마구 스쳐갔다. 치아도 살아보겠다고 꽁꽁 싸맨 크라운 안에서 살려달라고 애를 썼을까?  아직 살아있다고 알아채 달라며 시그널을 보내준   내 치아가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하려고 하는 일이 잘 안되어 밀려왔던 공허함과 쉬고있는 내 일상의 무료함에 나는 마음의 소리도 내 몸이 보내는 신호도 하나 곁에 둘 여유가 없었던 거다. 분명 힘들다고 소리쳤을 텐데 결국 이지경이 돼서야 알게 되었다


"치료 비용은 백만 원 정도 들 것 같아요. 이게 단순히 씌우는 치료가 아니고 남아있는 치아가 많지 않아서 치료기간도 여러 번 오셔야 할 겁니다."


카드를 쭉 긁는데 영수증이 빠져나오는 지지직거리는소리가 내 마음속까지 긁어내는 것 같았다. 돈이 아까웠던 게 아니라 이지경 될 때까지 무심히 넘긴 시간에 애꿎은 치아를 자꾸 만지작 거려본다. 치아뿐이겠는가.. 내 마음도 안 괜찮다는 걸 흠뻑 젖게 이만보를 걷고서야 알아차리고선....

그동안 나는 나에게 너무 무심했다.


분의 일이 남았던  나의 어금니는 깨끗하게 충치를 치우고 약으로 단단히 채워 다시 모자란 치아에 기둥을 넣어 새로운 크라운으로 덮어가고 있다.

덕분에 내 마음도 내 몸도 조금씩 힘듬을 치우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워 삶의 목표를 잘 넣은 괜찮은 나로 되감기 하는 중이다.


그래,

오늘 나는 백만 원으로 내 마음을 행복하게 결제한 거다!



이전 08화 대화의 희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