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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Jul 27. 2021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인사

나는 요즘 매일 아침 걷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무기력했던 하루였는데 걷는 루틴이 조심스럽게 일상으로 스며들어주었다. 반갑지 뭐야.

6시 50분 남편이 출근하면  나의 아침 루틴은 시작된다. 걷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에어 팟을 챙기고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굳이 누르지 않아도 될 만큼의 시간을 가진 여유로운 발걸음이 좋은 아침이다. 예전 같았으면 화장하고 허둥지둥 출근하기 바빴을 텐데 아파트 주변을 훑어보며 어느덧 느린 아침을 맞이할 줄 아는 내가 되었다. 우리 아파트 주변이 이렇게 초록 초록했는지 나무가 이렇게 높고 울창하게 뻗어 있었는지 나는 5년 넘게 살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남편과 산책하는 걸 좋아했지만 늘 밤에 하는 산책이 일상이다 보니 이런 푸르름과 여유로움이 어우러진 동네의 향기는 오랜만이었다. 


회사와 집을 오가며 정신없이 맞이한 아침이 주는 시선은 오직 카카오 버스가 말해주는 버스 도착 시간이었는데 이토록 내 집 가까이에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있었고 우리 집 옆집에 꼬마 아이가 살고 있었고 복도 끝집에는 분홍색 꽃이 심어져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 꼬마는 우리 아파트 복도를 운동장 삼아 열심히 꼬맹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는 걸 오늘 알았다. 


예전에 부모님들을 보면 이사를 오면 떡을 돌렸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것 같고 동네를 오며 가며 인사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는 게 당연한 자연스러움이었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보니 나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기도 전에 주변을 경계하는 방법을 먼저 배워 버린 게 아닌가 싶다. 먼저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친해지자고 이야기 나눌 세도 없이 이웃주민들에게 이미 철통방어 태세를 취하듯 교류 없는 시간을 당연한 듯 보냈다. 세상이 흉흉해졌다고 모든 눈과 귀를 다 닫을 필요는 없었는데 경주마처럼 오직 그냥 나만 우리만 바라보는 일상이 그렇게나 익숙해져 버렸나 보다. 


그러다 보니 하나 편한 건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기에 세상에서 가장 편한 복장과 가장 원초적인 얼굴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가끔 남편이 그러다 네가 모르는 사이 회사나 지인들 중 누군가가 이사 왔을지도 모른다며 으름장을 놓지만 나는 여전히 생면부지 아무도 모른다는 자신감에 동네를 아주 편하게 잘 걸어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아침도 나는 아파트 단지를 나와 공원을 지나 다른 아파트 단지 앞을 걷고 있었다. 음악과 함께 팔을 흔들며 걷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내쪽으로 걸어오시는 약간의 절뚝 거림이 있으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안녕하세요 "


나는 인사 소리에 놀랐지만 약간의 움찔한 동작 외에는 아무 제스처도 하지 못했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낯선 할아버지가 나에게 인사를 할 일이 없기에 그 소리에 큰 반응 없이 스치는 인연인 듯 내 주변에 지나가는 다른 분에게 인사하신 거란 생각으로 무심한 듯 지나쳤다. 그리고 다음날 비슷한 장소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어젠 처음 본 사람이긴 해도 그새 낯이 있었다고 ' 아 어제 할아버지구나' 싶었다.

그렇게 나는 조용히 스쳐가려고 했는데 


"안녕하세요 "


아.. 할아버지가 또 인사를 하셨다. 이번엔 주변 사람이라고 하기엔 나밖에 없었기에 뭔가 이상했다. 인사를 건네는 소리 덕에 내 고개가 살짝 목례를 하긴 했지만 나는 그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저 할아버지가 왜 나한테 인사를 하지? 날 아나? 날 본 적이 있는 건가? 뭐지? '

'성당에서 본 적이 있는 할아버지인가? 아닌데 난 성당에서 신부님 말곤 인사한 사람이 없는데?'


순간이었지만 인사에 기분이 좋았다기보다는 밀려오는 경계심이 잔뜩 날을 세웠다. 그 할아버지는 도대체 왜 나에게 인사를 한 건지에 대해서는 곱씹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는 이 동네 살면서 한 번도 경비아저씨 외에는 할아버지들과 인사를 한 적이 없었기에 결국 나는 '이상한 할아버지가 인사를 왜 했는지' 이유를 찾으려고 애를 써댔다. 기분이 찜찜했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은 것도 나를 터치한 것도 아닌데 나는 그 흔한 인사 한마디에 이렇게나 생각이 많아졌는지.. 세상이 나의 마음의 문을 닫은 건지 애초에 내가 열어둘 맘이 없었던 건지 조금은 마음이 혼란했다. 할아버지를 두 번이나 봐서였을까 다음날 나는 결국 다니던 길을 지나쳐 다른 길로 아침 걷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 안녕하세요 " 

"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 


저 멀리서 작게 들리던 소리가 한 번이 아니고 가까이 오면 올수록 잘 들렸다. 그 할아버지였다. 오며 가는 분들에게 할아버지는 계속 인사를 건네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멀리서 바라보니 나처럼 멋쩍게 시선을 회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사하는 할아버지를 본 꼬마 아이는 할아버지보다 더큰소리로 밝게 인사를 했다.

그 순간 달아오르는 내 두 볼이 나의 경계심이 얼마나 부끄러운 마음이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다음날도 내 곁을 지나치시며 나에게 인사를 건네셨다. 물론 나는 아이만큼 밝게 인사를 건네지 못한 여전한 목례를 건넸지만.. 스쳐가는 할아버지의 눈빛에 조금이나마 내 눈빛을 넣어보았다. 


모르는 낯선 할아버지..

이상한 할아버지였건만..

할아버지 눈빛 속에 인사를 건네 보며 아침을 반갑게 나눠주는 '안녕하세요 할아버지'의 순수한 인사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세상은 이래서 살만한 건가 보다. 


'할아버지 다음번엔 조금 더 큰 몸짓으로 인사할게요! 물론 아직도 어색하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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