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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 별 Jul 22. 2021

하루 이만보를 걷는 마음

'걷기'

골 때리는 그녀들, 개미는 뚠뚠, 연애 도사, 나 혼자 산다, 일호가 될 순 없어, 전지적 참견 시점, 동상이몽.....


어쩌다 내가 방송프로를 다 꾀고 사는 여자가 되었는지.. 드라마는 그나마 슬의와 팬하 정도만 보는 게 다행이지 드라마까지 봤으면 24시간 티브이 보는 여자가 될뻔했다. 물론 지금도 나는 반나절 이상은 티브이와 밀 접촉 중이다. 티브이와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 티브이 바이러스는 나에게 벗어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예전엔 매일 티브이만 보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오빠가 참 신기했고 저게 무슨 재미인가 싶었는데 이제야 내가 해보니 꽤 할만하고 생각 없이 시간 참 잘 가더라.


이삼십 대엔 티브이보단 책을 보고, 사람 만날 시간에 자기 계발할 시간도 모자라 매일을 동동거리며 시간이 없다 없다 하며 다녔는데 지금은 그랬던 내가  낯설다. 회사를 다닐 때는 쉬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으면서 막상 실컷 쉴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가는 시간만 탓하며 아까운 이 시간들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멍텅구리가  되어 버린 내 모습이 한심하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즐거움보다는 불안함이 밀려오니 재 취업을 해야 한다는 초조함에 될 것 같은데 자꾸 안 되는 마음에 내 마음은 도통 자리를 못 잡고 있다. 어쩐지 비틀거리는 내 삶이 자꾸만  불안해한다.


'이러다 재 취업이 안되면 어떡해야 하지? '

'뭐라도 배우는 게 맞았나? 아일랜드 갔다 와서 난 지금까지 뭘 한 거지? 너무 바보 같았나? '

'아일랜드는 너무 쉽게 다녀온 건 아니었을까? '


불안한 내 마음속 생각들은 목적지를 잃어버린 채 복잡하게 얽히고 얽혀서 정리도 못한 채 아일랜드까지 기어코 가버렸다. 길게 길게 자라나 버린 불안한 마음의 나무들이 행복했던 내 시야를 다 가리고 있다는 걸 이제야 느꼈다. 결국 내가 아일랜드를 밀어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많이 힘든 거였구나. 좋았던 기억도 이렇게 뒤집힐 수 있구나..'

'불안했구나 내 마음도 두려웠겠구나 내 미래도'

'줄어드는 통장잔고가 나를 더 불안하게 밀어내고 있었구나 '


마음이 헐거워지면 이렇게 하염없이 사그라들어 버리는구나.. 내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싫어 나는 티브이만 바라봤던 거였구나.. 부정적인 생각의 구멍들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다녔구나. 마음이 배고팠던 거를 모르고 나는 입으로만 허기짐을 채우고 있었다. 그 좋았던  시간들이 빛나는 인생의 순간이 다른 색깔로 변해 가는지도 모르고 방치하고 있었다.


'야 정신 차려! 아일랜드까지 건드리면 안 되지'


그리고 나는 그 길로 무작정 나갔다. 음악을 들으며 아무 생각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 버스만 타고 다녔던 동네를 걸어 모르는 동네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시간을 보니 2시간은 넘게 걸은 듯했다.  몸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히다 바람이 불어 툭 떨어지다를 반복했다. 머리가 시원해졌다.


'살았다...'

내 마음의 소리가 툭 터져 나왔다.

방구석에선 나무늘보가 된 나만 있었는데 나와보니 살아있는 세상이었다. 내가 이런 순간을 겪다니

내 마음은 꽤 단단하고 긍정적이고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마음에 대한 오해는 하지 않는 게 좋겠다. 괜찮았으면 좋겠단 거지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었다.....


덕분에 요즘 나는 아침마다 저녁마다 매일 걷고 있다. 나에게도 할 일이 생겼다. 일이 생기니 활력이 생기고 생명수를 얻은 듯 에너지가 스미었다. 눈을 뜨고 바라보는 그곳은 같은 길인데도 매일매일 다른 시선을 담아준다. 매일매일 동네를 뛰는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의 딴딴한 허벅지를 보며 대단함을 느끼고, 비가 오는 날에도 아무도 없을 것 같은 그 길에 같은 우산을 쓰고 걷는 분들을 보면 왠지 모를 전우애가 느껴지기도 하며, 가끔씩 다른 길로 접어들 때 만나는 새로운 공간들에 따스함을 담아오기도 한다.


회사를 다녔다면 가질 수 없는 이 시간 걸으며 알아가는 나의 마음들을 차곡차곡 담아 보는 중이다. 티브이를 보는 순간도 나를 위한 쉼이며 모든 것을 비교하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있음을 매일매일 걷는 마음이 말해주었다. 괜찮다고 매일매일 걷고 있는 나도 뭔가 해내고 있는 중이라고 힘내라고 따스히 말해주기에 조금씩 나는 힘을 내고 있다.


걷는 마음 온전히 나를 향한 시선이 오늘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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