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느린 속도로만 가능한 일
일본은 음료 천국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출시되는 음료뿐만 아니라, 지역과 계절의 특색, 마니아층의 유무 등을 감안하여 소수의 판매량일지라도 여전히 존재감을 내뿜으며 오늘까지도 살아서 판매되는 음료들까지 있으니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중에 나가사키를 통해 처음 유입되고 이제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음료, 라무네(ラムネ)를 소개합니다.
라무네는 원래 서양의 '레모네이드' 발음이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정착된 단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에서 라무네는 일반 레모네이드 음료와는 다르게 구슬 마개 병이라는 독특한 형태와 복고풍의 상징성을 가진 음료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일본을 찾은 관광객이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라무네를 마주친다면 그 생김새의 독특성 때문에라도 한 번쯤 경험하고, 맛보는 음료입니다.
그런데 라무네는 구입했다고 쉽게 맛볼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볼 수 없게 된 구슬 마개 병, 곧 '코트 병(Codd-neck bottle)'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어떻게 먹지?' 처음 접하는 모든 이들의 질문입니다. 안쪽 구슬을 병 안으로 떨어뜨려야 할 것 같은데,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고개만 갸우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라무네를 마시기까지는 작은 의식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먼저는 병뚜껑 위에 붙어 있는 플라스틱 툴(전용 따개)을 조심스럽게 분리합니다. 이 둥근 툴의 끝부분을 병 입구 중앙에 있는 구슬 위에 정확히 올려놓아야 합니다. 이제 결단의 순간입니다. 병을 바닥에 두고 한 손으로 단단히 잡고, 엄지손가락이나 손바닥으로 플라스틱 툴을 수직으로, 강하고 빠르게 한 번에 눌러줍니다. 이때 망설이거나 주저하면 탄산 압력 때문에 구슬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고 음료가 뿜어져 나올 수 있으니 조심성도 갖추어야 합니다. 만일 단번에 성공했다면 '뻥!'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구슬이 병목 안쪽으로 떨어지고, 작은 탄성과 함께 라무네를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음료 한 잔을 마시면서도 하나의 놀이가 곁들여져 즐거움을 경험케 하는 라무네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급한 마음에 음료를 높이 들게 되면 구슬이 다시 입구를 막게 되어 음료가 나오지 않는 상황을 맞이합니다. 결국 구슬이 입구를 막지 않도록 적정한 각도를 유지하는 일에 마음을 쓰면서 천천히 마실 때에 온전한 한 병을 다 비울 수 있습니다. 나름의 순서와 방법을 통해서만 라무네를 온전히 만날 수 있습니다.
라무네는 사실 좀 귀찮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불편한 코트 병을 고집합니다. 그래서 따서 먹는 것부터 쉽지 않고, 구입한 사람이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며 마실 수 있음에도 굳이 구슬을 넣어 천천히 마시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라무네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어느 편의점, 식당을 가도 만날 수 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찾는 이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며, 효율성을 넘어 오래된 것을 지켜내려는 일본인의 마음과 맞닿아 오늘까지도 당당히 존재감을 내뿜는 음료가 되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꼭 그 방법을 배워서라도 맛보는 라무네와 같은 신앙생활의 요소가 있을까요? 기술의 발달과 편리함의 추구로 더 이상 쉽게 보거나 경험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와 유익함을 건네주는 예전의 신앙생활 요소들을 다시금 찾는 수고가 필요한 시대는 아닐까요? 또 반드시 주의하며 천천히 마실 때에만 허락하는 라무네처럼, 절대 빠르게 끝내지 않으며 온 마음을 기울여 천천히 쌓아가며 감당해야 하는 신앙생활의 요소를 다시 회복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신앙의 길을 걸으면서, 당장 쉽게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을 해내는 열심은 중요합니다. 여기에 뭔가를 하나 더 한다는 심정으로 라무네를 이야기하며 저의 생각들을 나눕니다. 빠르게 지나고,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불편이 예상되고 배워야 하는 수고가 요청되지만, 근래에는 좀처럼 맛보지 못한 은혜와 유익함을 경험했던 예전의 신앙생활 요소를 다시 나의 일상에 장착하여 반드시 천천히 물들이며 예수로 채워갈 수 있도록 찾는 열심과 애씀이 더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