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의 십자가
나가사키 역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으면서 다양한 묵상의 재료들을 품고 있는 나카마치성당을 소개합니다. 나카마치성당은 오우라성당(1864년) 다음으로 1897년에 프랑스의 여신도 앙투아네트 페리에(Antoinette Perrier)의 큰 기부를 바탕으로 나가사키 성도들의 힘이 더해져 설립되었습니다. 이 성당의 설립의의는 1873년 금교령(기독교에 대한 국가의 금지령)이 철폐된 이후 새롭게 기독교신앙의 부흥기를 맞이하며 처음 건립된 성당이며 26인순교자박해의 300주년이 되는 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후 우라카미성당(1914년)이 건립되면서 나가사키시에 기독교 부흥의 바람이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나카마치성당 역시 원폭의 참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설립당시의 돌담이나 북쪽을 향한 외벽과 첨탑 일부만 남기고 모두 재가 되었습니다. 이에 1951년 10월에 두 번째 봉헌식을 통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후 조금씩 보완하면서 현재는 신앙의 선배들의 발자취를 알게 하는 다양한 성상들이나 조각들 그리고 조경들을 아름답게 구성해 놓았습니다. 성당 어느 곳에 머물든지 이곳이 기도의 장소임을 알게 해 주며 방문한 이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까지 신앙이 전달되고 믿음이 깊어질 수 있도록 곳곳에 장치들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성당의 입구에서부터 천천히 전체를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묵상하며, 신앙의 삶에 대한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갖게 하는 하나의 순례코스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입니다.
그중에서 어떤 것보다도 강렬한 모습으로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본당 중앙에 자리 잡은 "미소의 십자가"입니다. 나카마치 성당의 주임사제로 부임한 시모카와 히데토시(下川英利) 신부는 2003년 성지순례 중에 들른 스페인 나바라 지역에 위치한 하비에르 성의 채플 안에 있던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주임사제로써 나카마치 성당에 마땅한 십자가가 없음에 대한 그동안의 안타까움이 해소되는 만남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첫 번째 복음전도자였던 하비에르 성인의 고향인 이곳의 십자가에 대해 스페인에 복각을 의뢰하였고 2004년에 제대 중앙에 안치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미소의 십자가'는 높이 4m, 가로길이는 170cm이며 무게 50kg의 방충효과가 있는 견고한 재료를 사용했으면 특이한 점은 이음새가 없는 원통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전 세계에 딱 2개밖에 없는, 그것도 모양과 크기가 동일한 미소의 십자가를 나카마치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소의 십자가' 앞에 서서, 가만히 시선을 고정할 때 자신이 신앙인이며, 그리스도와 연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생각들이 스쳐갑니다. '정말 웃고 있나?'로부터 시작하여 '저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과연 십자가에서 웃음이 나올까?', '혹 표정을 잘 못 읽어서 미소의 십자가가 된 것은 아닐까?' 등 개인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들이 있음을 경험하는 순간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정말 다양한 생각들과 느낌들이 스쳐갔습니다.
보통 십자가가 상징하는 것이 고통과 눈물, 비극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역사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 결코 부정적이지 않으며 긍정의 느낌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미소를 짓는 자리까지는 상상하기 쉽지 않습니다. ‘미소의 십자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살아있는 이의 웃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통이 사라지고 사명을 완수했기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이기에 가능한 것이라기보다는 현재의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실제로 경험되는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삶을 지배하고, 일상을 이겨내기에 충분히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49대 51의 싸움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51일 때 반드시 미소를 짓는 일상은 충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이 이기는 일상을 간절히 구하며, 미소의 일상을 살아낼 수 있기를 소원해 봅니다.
또한 위협과 협박 그리고 감시가 삼엄했던 250년의 박해 상황 속에서 숨어서 신앙을 지키며 살아왔던 가쿠레크리스천(숨은그리스도인)들과 연결하여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비록 큰소리로 선포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어 고백하지 않았지만 웃음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조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건네는 의미심장한 고백과 선포 곧 “나는 여전히 믿습니다”라고 증언하는 상징으로써의 미소의 십자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때로는 가장 강력한 증언은 말이 아닌 얼굴빛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미소의 십자가를 보고 내 얼굴을 거울이 비춰봅니다. 나는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으로 가득 차 있는가? 믿음을 보여주는 얼굴빛인가? 많은 묵상을 건네주는 나카마치성당에서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사람들이 여호와를 바라보아서 얼굴빛이 환해졌고,
그들의 얼굴이 부끄럽지 않았어요. (시편34:5_새한글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