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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dred Dec 05. 2019

그런 사람 만나지 마

"제가 뭘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회사 앞으로 전 직장 후배가 왔다. 나와 같이 '본의 아니게' 퇴사당하고 난 뒤 엄청난 스트레스와 심적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했는지, 앞으로 광고 일을 계속하기는 해야 하는지 끝도 없는 의심과 불안, 질문을 품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알기에 농담도 하고 우스갯소리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한없이 주눅 들어 있었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첫 회사 국장님을 얼마 전에 만났는데 계속 그러시는 거예요. 너는 이걸 못 한다 저걸 못 한다. 너는 안 될 거다. 그러니까 광고하지 마라."

"야, 만나지 마. 그딴 소리 하는 사람을 왜 만나!"

"네. 그래서 안 만나려고요."


안 그래도 심란하던 참에, 이상한 사람을 만나 그런 이야기까지 들었으니 자존감이 바닥을 칠만도 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차마 함께 일할 때는 낯간지러워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봤을 때 너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참 잘 들어준다고, 그게 사람 대 사람의 모습일 때도 그렇지만 일할 때도 피드백을 주면 빠르게 수용하고 어떻게 업그레이드시킬지 고민하는 애였다고, 그러니 나중에 다른 회사 면접 보게 되면 그런 점을 어필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이다.


내가 해준 그깟 몇 마디가 그녀에게 얼마나 힘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정말 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소리나 툭툭 내뱉고 인생을 책임져줄 것도 아니고 나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그녀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그런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만나게 되거나 혹은 처음엔 몰랐다가 알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아무 근거 없는 인격 모독과 멸시를 쏟아내는 사람들 말이다. 그중 몇몇은 왜 그러는지 속셈이 뻔히 보이기도 해서 화가 났지만, 대부분은 내가 정말 그런가 싶어 괴로웠고 자존감은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곳으로 처박히곤 했다.


생각해보면 이전 회사의 대표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부족한 인원과 시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노력하는 나에게 대표는 계속해서 모진 말을 쏟아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자신만의 논리를 밀어붙이기도 했고,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며 오리발을 내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상황이 그러니 내가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난 2년을, 난 어떻게 버틴 걸까.


이 글을 쓰는 동안 언젠가 옆 팀 시디님 자리에서 발견했던 문구를 다시 떠올렸다. <어차피 다닐 거면 나부터 챙깁시다>라는 책에도 똑같이 적어 넣었던 문구다.


칭찬을 받으면 더 나아지는가?
에메랄드가 칭찬을 받지 못한다고 더 나빠지더냐.
금, 상아, 작은 꽃 한 송이는 어떤가?


그래. 누군가에 의해 흔들릴 필요가 없는 거였는데. 그런 사람과는 안 만나면 그만이었는데. 마치 밤새 나무에 묶여 아침에 끈을 풀어줘도 도망치지 않는 낙타처럼, 나는 내내 그렇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솔직히 앞으로 살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으리란 법도 없고,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상처 받지 않을 만큼 내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니 그냥, 우리 그런 사람은 만나지 말자. 피할 수 있다면 아주 멀리 도망치자. 나에게 좋은 기운을 주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보내기에도 충분히 짧은 인생이다.


겁먹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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