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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나의 일상

명함이 없는 첫 번째 삶

by coldred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도전이 끝나질 않네."

"살아있는 한 모든 게 도전이야."



학교 다닐 때 나는 방학이 싫었다. 아니, 다시 말해 몇 달이나 되는 긴 방학이 싫었다는 게 맞겠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자유를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고 게을러졌다.


벌써 2월의 첫 주가 지나갔다. 2025년이라는 숫자가 아직도 어색한데 2월이라니, 새해를 벌써 40번째 맞이하고 있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올해 초에 '건강하게 성장하는 2025년'을 스스로 선언하고 일에만 얽매이는 삶을 살지는 말자고 다짐을 했는데, 아직까지는 다행히도 명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어 그럴 일이 없다. 다만 이 게으름이, 늘어짐이, 어쩌면 무기력함일지도 모르는 이 상태가 조금 걱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회사의 입사는 엎어졌다. 지금쯤이면 출근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12월 말에 본부장, 부사장까지 다 보고 희망연봉까지 전달했다. 연봉이 좀 높으려나 싶었지만 조정 가능하다고도 말해뒀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넘어도 연락이 없었다. 연말이라 바쁘겠거니 했다.


인사팀에서 연락이 와서 내부 논의가 길어진다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같이 놓고 재는 건가 싶어 대놓고 물어봤더니 그런 건 아니란다. 그래, 연차도 연봉도 높으니 고심할 만 하지. 기다렸다. 설날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그즈음 나는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야겠다 싶었다. 그러지 않으면 프라이팬 위 녹아내린 인절미처럼 계속 늘어져있을 것 같았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업데이트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채용 공고에 지원을 했다. 그리고 전 회사 이사님께 연락을 받았다.


"우리 두 달만 도와줘."


그때만 해도 그 회사에 적어도 2월에는 입사하게 될 줄 알고, 두 달은 어렵고 우선 한 달만 출근해서 도와드리겠노라 했다. 그렇게 출근한 지 열흘 정도가 됐다. 그 사이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 두 군데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뭐가 됐든 되겠지 싶어 면접을 보러 갔다.


일찍 도착해서 회의실에 앉아 기다리는데 그 회사 인사팀에게서 연락이 왔다. 진행이 어려울 것 같단다. 내부적으로 정말 노력을 많이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렇게 되었다고. 스카우트 제의를 했던 기획팀장에게 들은 바로는 부사장님 직속으로 생각하고 계신다고 했는데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나왔다가 왜 이리되었느냐 물었다. 그러자 인사팀 담당자는 자신도 정확한 내용까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황당하지만 뭐 어떡하겠는가. 너무나도 미안해하는 전화 너머의 목소리에 알겠다고 답하고 끊었다. 그리고 부사장에게 연락이 왔다. 회사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번에는 못 모시게 됐다고, 개인적으로도 너무 아쉽다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무미건조하게 답변을 보내고 폰을 넣었다. 이제 이 면접에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군.


결과는 아직 모른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려나. 이사님네 회사에서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계속 이곳을 다니라 한다.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친구가 직장동료가 되면 다르듯이 다시 같이 일하면 좋은 선배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그런 사이로 남고 싶다.


친구들은 오히려 대행사보다 클라이언트 사이드도 괜찮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려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과연? 그냥 하던 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다음 주 금요일에도 면접이 잡혀있다. 그리고 결국은 브랜드 마케터 채용공고에도 지원했다. 서류부터 광탈할지도 모르지만 알게 뭐람.


사실 그런 생각도 한다. 한 3년 정도 다닐 회사가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3년 동안 비즈니스 배워서 그냥 내 사업을 하고 싶은 건 아닌가. 정치질을 견디기도 싫고, 성과를 내야 하는 것도 지치는데. 그렇다고 사업이 쉬운 것도 아니지만.


나참, 나이 사십이 넘어서도 진로 고민을 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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