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이 없는 첫 번째 삶
"일이 쉬우면 그만큼 돈이 적고, 돈이 많으면 그만큼 일이 힘들지."
일이 재미없다. 세상에.
다음 달 10일이면 카피라이터가 된 지 딱 17년이 된다. 2008년 3월 10일, 디자인회사 기획팀 소속 카피라이터로 시작해 디지털 대행사 그룹장을 하고 그만두기까지 17년이 됐다. 다시 생각해도 어마어마하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한 업계에서 17년을 일했나.
연봉으로 1,680만 원을 받고도(심지어 나누기 14였다) 좋다고, 신제품 출시 포스터에 쓴 내 카피가 전국에 나가서 좋다고 그랬었다. 그저 카피라이터가 된 게 좋았다. 운이 좋아서 대리 때 PT도 해보고 TV 광고도 금방 찍고 10년 차에 시디도 달았다. 그 사이에 왜 힘든 일이 없었겠나. 시디가 되기까지 흘린 눈물만 해도 몇 톤은 될 거다. 그렇다고 그 이후에 안 울었다는 건 아니다.
잠을 못 자도 괜찮았고, 밥을 제때 못 먹어도 괜찮았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이렇게 일이 즐겁지 않을까.
여전히 지쳐있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팀장과 그룹장으로 살았던 전 회사에서의 3년 반. 기를 쓰고 용을 쓰고 악을 쓰고.... 쓸 수 있는 건 모든 걸 쓰고 나온 터라 아직 HP가 회복되지 않은 탓이라고. 다른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원래의 나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한 달을 일해보니, 모르겠다. 아닌 것 같다. 일할 준비가 안되어있거나 일할 생각이 없는 사람 같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점심을 먹으면서 말했다.
"저는 일하기 싫은 것 같아요."
그랬더니 이사님은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진짜였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었고 주말까지 해결해야 하는 일이 부담처럼 다가왔다. 프리랜서로 일하기로 했으니 적당히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쪽 발만 넣어놓고 다른 한쪽 발은 언제든 움직일 수 있게 바깥으로 빼놓았다.
두 발을 온전히 다 담가버리면 또다시 이전과 같은 일이 생길까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다. 이를테면 공황장애라던가.
이사님네 회사에 한 달째 출근하면서도 이력서를 넣었다. 리멤버나 원티드에서 내 연차에 맞게 경력 스크롤바를 조절하면 최소 부장부터 임원까지 채용공고가 떴다. 17년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대단한 거였나. 난 어떻게 지나왔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내가 뭘 쌓아왔는지, 아니 쌓아놓기는 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수십 개의 채용공고 속에서 나에게 맞는 자리를 찾고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봤다. 어떤 곳은 희망연봉을 듣고 세상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는 얼굴을 보였고, 마치 나를 뽑을 것처럼 굴던 회사의 대표는 결국 다른 사람을 선택해서 헤드헌터가 되려 미안해했다. 그래서 원래 이런 행동은 잘 안 하는데 헤드헌터에게 그날 밤 답장을 했다. 혹시 채용이 안된 이유가 연봉 때문인지 경험 때문인지 알고 싶다고, 이유를 알면 앞으로의 커리어 패스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이다. 이유를 알려줄 리도 만무하지만 그냥 물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또 다른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면접도 이제 좀 지겹다.
그저께 밤에도 습관처럼 채용공고를 뒤지다 카피라이터를 찾는 자리를 봤다. 재택근무, 연차 23일과 그 외 다양한 복지를 내세우는 곳이었다. 카피라이터라기보다 콘텐츠라이터에 가까운 그 자리에는 연봉에 대한 것도 적혀있었다. 내가 받았던 월급의 3분의 1이었다.
"이런 데서 근무하고 싶기도 하다ㅋㅋ"
"하지만 그러면 너는 지루해할 거잖아ㅋㅋㅋㅋ"
그렇게 큰 풍파를 겪었으면 이제는 좀 쉬엄쉬엄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법도 한데, 나는 여전히 모순덩어리다.
요즘은 틈만 나면 네이버 운세나 유튜브 타로를 본다. 이 안에 얼마나 깊은 답이 있겠냐만은 그래도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자꾸만 찾게 된다.
11월 말에 퇴사를 하면서 봄까지는 좀 쉬려고요, 라며 여유 있는 사람처럼 허세를 떨었다. 그러다 퇴사 2주 만에 우연히 전 회사 직장동료가 자리를 추천했고 나는 당연히 곧 일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봄이 온다. 쥐뿔도 없이 부렸던 허세 그대로 2월이 끝난다.
봄이 오기는 오려나. 진짜 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