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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롯데로 사세요."

4월 18일의 제잘제잘

by coldred

제잘제잘은 '제대로 잘 만든 말을 제대로 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긴 뉴스레터입니다. 간판, 광고, 책, 영화는 물론 전단지, 밈, 명언 등 일상 속에서 보고 듣는 모든 문장을 수집하고 그 문장이 건드린 감정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 때로는 광고처럼 때로는 일기처럼, 말 많은 시대에 쉽게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곁에 머무는 문장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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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가능하다고?"


광고를 보고 그렇게 놀란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점심시간에 후배가 보여준 광고였는데 가수 비비가 나온 롯데카드 캠페인이었죠. 카피는 단순했습니다.


니 롯데로 사세요


롯데카드 <니 롯데로 사세요> 광고 영상 보기


문장만 놓고 보면 '롯데카드로 사세요'라는 말일뿐이지만 소리 내어 읽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뀝니다. 거기다 모델이 비비라니요. 이건 우연이라기보단 의도된 시너지라고 느껴졌어요. 깔끔하고 단정한 이미지의 배우였다면 저 말투가 어색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비비는 그 말투를 자기 식으로 쿨하게 가져갔고 덕분에 브랜드 전체가 새로운 결을 입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광고를 보면 저는 문득 ‘CD는 어떻게 이걸 광고주에게 설득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CD가 되기 전에는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방향에 맞춰 여러 가지 카피를 쓰는데 집중했었거든요. 하지만 CD가 되고 나니 '아이디어를 실제로 되게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알게 됐죠.


광고주는 늘 많은 걸 따집니다. 이게 팔릴 수 있을지, 브랜드에 타격은 없는지, 기존 소비자들이 불편하게 느끼진 않을지. 요즘처럼 예산이 줄고 모두가 리스크를 피하고 싶어 하는 시기엔 이런 ‘센’ 카피를 통과시키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을 거예요. 니 롯데로 사세요 같은 카피는 실제로 누군가는 "이게 무슨 말이에요?", "조금 가볍지 않나요?", "이런 말투가 브랜드에 맞을까요?" 같은 말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은 광고로 나왔고 이목을 끌었고 사람들이 벌써 SNS에 캡처해서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지금 누군가의 휴대폰 갤러리 스냅샷에 저장되어 있거나 아이디어 노트에 이 문장이 적혀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도 이런 거 할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도 있죠.


요즘 문장의 힘을 앞세운 광고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미샤의 <밋샤옵니다> 광고 영상 보기

칠성 사이다의 <젤로 맛있는 제로> 광고 영상 보기

키움증권의 <20대의 투자를 시작부터 키움> 광고 영상 보기

티즐의 <My Tea향저격> 광고 영상 보기


미샤의 밋샤옵니다, 칠성 사이다의 젤로 맛있는 제로, 키움증권의 20대의 투자를 시작부터 키움, 티즐의 MY Tea향저격. 이런 문장들은 단순히 “요즘 텍스트가 대세입니다”라는 말로는 설득할 수 없는 일입니다. 브랜드가 처한 상황, 타깃의 언어, 경쟁사들의 톤, 그리고 시대적 분위기를 정교하게 읽어낸 결과일 거예요. 지금, 광고는 다시 단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꽤 재미있고 똑똑하게요. 마치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말의 시대가 또 한 번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괜히 반가웠습니다. 카피라이팅이 그저 재치 있는 말장난이 아니라 브랜드의 말투를 바꾸고 있다는 사실이요. 그리고 이런 흐름을 보고 있으면 문장을 고르고 믿고 밀어붙인 누군가의 선택이 어쩐지 반갑게 느껴집니다.


그 문장 덕분에 우리는 지금 다시 말을 꺼내게 되니까요. 당신은 최근 어떤 문장에 마음이 끌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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