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내 의식
내 하루를 멈춰 세워버린
그것을 따라 발을 옮기고
그것을 목격하느라
짓물러버린 두 눈
슬프지 않았다
하지만 슬퍼하고 있었고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흐르고 있었고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아파하고 있었다
작고 가녀린 활자들이
베이고 피 흘리고 물컹거리고
‘검은 숨’을 뱉어내고
그 살아있는 활자들 앞에
내가 뱉어낼 수 있는 건 오로지 침묵뿐
침묵으로 움켜쥔 그때 그곳 아이들과
오늘 학교에서 돌아온 내 아이를
번갈아 바라본다
희뿌옇게 짓물러진 두 눈으로
번갈아 안아본다
더는 차가워지지 않게 아직은 덜 식은 심장으로
한강 ‘소년이 온다’를 읽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