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네고 Nov 15. 2019

영어권 사람들과 논쟁하기

한 때  온라인 음채팅으로 알게 된 외국 친구들과 음성 채팅의 재미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대화의 빈도와 시간이 늘어가면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특정 문제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가끔 생겼다. 때로는 주제가 민감해서 논쟁이 꽤 격렬한 양상으로 진행되기도 했는데 나는 그 과정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논쟁이 벌어질 때와 아주 다른 현상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끝내 합일점을 찾지 못하면 서로 원수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자리가 아니면 다시는 볼 일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해 한 순간에 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상반된 의견을 가진 두 집단이 서로를 적대시 하며 상대를 깎아 내리고 공격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모든 분야에서 비일비재하다.


반면 다문화 사회인 영어권 사람들의 경우에는 한바탕 불꽃처럼 신랄한 논쟁을 벌이고 나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관계 자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장을 펼치고 대립한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마찬가지겠지만, 필요하다면 반대 진영과도 교류를 하는 일에 상대적으로 유연한 편이다. 서로 대립을 하더라도 순수한 적개심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방송의 토론 프로그램들을 보면 예외 없이 보게 되는 풍경이 있다. 한 쪽이 자기의 논리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을 때 상대는 적개심이 가득한 표정을 애써 억누르며 오직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어떻게 공격을 할까를 생각하며 종이에 뭔가를 열심히 적는다. 상대가 자기의 말을 가로채기라도 하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임을 강조하며 예의가 없다고 상대를 꾸짖기도 한다.


내가 볼 때 근본적으로 한국인은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를 불편하기 느끼는 것 같다. 즉 서로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잘못된 것으로 규정짓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뜯어 고치거나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아예 상종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깊이 들여다 보자면, 논쟁을 할 때 한국인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태도는 어떤 논제에 대해서 정답은 오직 하나이며 논쟁을 한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이 이겨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거나 아니면 양 쪽의 논리를 절충하여 종합적인 하나의 정답을 도출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강박적인 태도는 자기 차례가 되었을 때 상대의 주장을 일부 인정해 주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척하며 자신이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만약 상대가 승복하지 않고 주장을 이어가면 좀처럼 다음 주제로 진도를 나가지 못하게 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화를 버럭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리거나, 골치 아프니까 다른 이야기나 하자고 해 버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CNN 같은 외국 방송에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양상이 조금 다르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상대가 말을 하고 있는 중간에도 가차 없이 끼어들어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인데, 이 때 자기 차례를 주장하는 일은 없고 그냥 자기 말을 퍼부어 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에티켓의 화신들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의 말을 기다려 주지 않고 말을 서로에게 동시에 퍼부어 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예의범절을 강조하는 유교 문화에서 자란 우리에겐 이채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런 문화가 우월하다거나 하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모습을 보면 두 마리 개가 서로에게 짖어 대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에게는 결론이 반드시 한 가지여야 한다는 의식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가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야 한다거나 뭔가 절충안을 도출하려는 강박이 없다. 상대의 견해를 부분이라도 인정하는 일도 오히려 드물고 상대에 개의치 않고 단지 자기 의견을 전력을 다해서 피력할 뿐이다.


이에 비해 한국 사람들의 논쟁에서는 상대를 인신공격하거나 자기 차례를 주장하고 상대의 말투를 문제 삼으며 태도를 나무라거나 서로 결론을 내리는 쪽이 되기 위해 한 가지 논점을 맴돌며 상당한 시간이 낭비되고 결국 마칠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끝을 내고 만다.


온라인에서는 양상이 더욱 심각하다. 게시판에서 덧글로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보면 논쟁이라기 보다는 서로에 대한 천박한 인신공격이 난무한다. 욕설은 기본이고 상대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모든 비난과 저주가 포화처럼 오간다.


이러한 현상은 심각한 사회문제와도 연결된다. 흔히 한국을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화라고 하는데 그 기저에는 이러한 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특별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게 아니라면 단순히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반드시 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는데도 서로 원수가 되어 불필요한 반목과 대립이 일어나는 경우가 너무도 많은 것이다. 지역 감정, 당파 간의 갈등, 대북 논쟁 등도 결국 이러한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한다. 미국 면적의 약 100분의 1 크기 밖에 안 되는 조그만 나라에서 이렇게나 많은 종류의 갈등과 분열이 있다는 건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이다.


영어 공부를 한다는 건 결국 영어권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고 대화의 기술이 향상되면 그들과 논쟁을 할 기회도 필연적으로 생긴다. 이 때 서양인들의 대화 문화와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한다면 반드시 오해가 발생할 것이다. 예컨대 민감한 이슈에서 무조건 논쟁을 피하거나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결국은 깊이 있는 소통이 힘들어 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서양 문화와의 교류가 양적으로 활발해 지더라도 결코 질적인 발전은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문화의 장벽은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사람들의 수만큼 많은 의견들이 존재한다는 것, 따라서 나와 전혀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적으로 여길 필요가 전혀 없으며 친구라고 해서 반드시 같은 생각과 느낌을 가져야 할 이유 또한 없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영어권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좀 더 쉬워질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우리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대립을 넘어서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전 05화 우리 말에 대한 고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