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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May 19. 2024

남편은 빵집 배달부!

화면에서 터치 몇 번만 하면 원하는 상품을 바로 문 앞에서 받아보는 시대다 보니  장사를 하려면 배달은 기본이다. 게다가 보통은 오육천 원 정도의 빵을 사가는 데 이삼만 원 정도의 빵이나 케이크를 주문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달려갔다.   

  

많은 빵을 담으려면 빈 상자가 필요했다. 큰 비닐봉지가 있긴 해도 방금 구운 빵을 비닐봉지에 담으면 찌그러지기 때문에 종이 상자에 담는 것이 좋다. 다행히 바로 옆에 슈퍼가 있어 가게 앞을 오가다 깨끗한 상자만 보면 나는 그것부터 챙겼다. 아파트에는 빈 상자를 모으러 다니는 어르신이 몇 분 계셨는데 혹시라도 상자를 챙겨오다 그 어르신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마치 그분들의 물건을 훔쳐오기라도 한 것처럼 뒤통수가 당겼다.     

빵집 주위에는 초등학교가 두 개 그리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있어 우리 두 딸은 그 어딘가에 다니고 있었다.  아마 딸들은 빵 배달 오는 엄마가 창피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바로 옆 초등학교에 배달하러 갔을 때다. 상자를 들고 학교에 들어섰을 때 바로 앞에서 작은 딸의 담임선생님이 양팔을 벌리며 달려 나오셨다. 

"아이 이런 것까지 가져다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아, 아니 저 그 그게 아니라...  다른 반에 배달 왔는데요."

그 순간, 선생님도 나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물론 다음 기회에 빵과 선물을 준비해 갔지만 정말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빵은 학교뿐만 아니라 주변의 교회와 성당 그리고 각 문화센터에서도 필요하다. 하루는 현대백화점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솔직히 백화점이 생기고 나서 한두 번 가보기는 했지만 주차장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자동차를 주차하고는 커다란 빵 상자를 들고 교실을 찾아 가는데 족히 삼사십 분은 헤맸던 것 같다. 약속한 배달 시간은 다가오고 이리저리 허둥대다 보니 차츰 상자를 들고 있는 양팔이 부들거리기 시작했다. 겨우 도착했을 때는 상자는 거의 부서져 빵이 바닥으로 쏟아질 지경이었다. 상자를 건네줄 때 정말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고 기진맥진한 나는 그저 한참 동안 차 안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정말 황당했던 사건도 있다. 화이트 데이는 물건을 파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한 날이다. 하루는 어떤 중년신사(?)가 오더니 사탕바구니 중 가장 큰 것을 몇 동 몇 호로 배달해 달란다. 당연히 나는 정확히 배달을 했다. 그런데 잠시 후 굵직한 목소리의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누가 이것을 주문하고 갔냐는 것이다. 나는 정말 왜 그렇게도 눈치코치가 없을까? 그냥 대충 설명해 주면 될 것을 그 사람의 생김새와 말투까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물며 그가 타고 온 자동차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여자와 남자로부터 연달아 전화가 걸려왔다. 

"도대체 물건이나 팔면  되지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 고소할 거야"

"저기요, 남편이 찾아가서 그 사람이 맞느냐고 하면 제발 다른 사람이라고 해 주세요"

"아,..."

난 그 일로 며칠이나 시달렸다. 그러나 요란하게 전화만 오갔을 뿐 그들이 가게까지 찾아오지는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지 않았다면 세 사람 앞에서 과연 내가 제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었을까?     


기억에 남는 가장 큰 배달 사고는 안양천 부지에서 고등학교의 걷기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빵 개수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전교생에게 나눠줄 양이었으니 아마 몇 천 개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용달을 부를까도 생각해 봤지만 내게는 무료배달을 해 줄 남편이 있지 않은가. 전날 종일 빵을 만들어 놓고 빵 배달 시간을 한 시간 정도 잡고 느긋하게 가게에서 출발했다.  

    

아, 그런데 바로 러시아워였다. 차는 안양천 둑길에서 꼼짝도 못했고 바로 눈앞에 있는 안양천으로 자동차가 내려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다리와 다리 사이를 한 바퀴 돌려면 거의 30분 정도 걸렸는데 남편은 한 바퀴 돌고 또다시 돌며 

"도대체 어디로 내려가야 되지"하며 태평하게 길만 찾고 있었다. 


점점 약속 시간은 다 되어가고 빵을 주문한 엄마는 거의 울부짖고 있었다. 급히 직원들에게 나머지 빵도 배달업체에 싣고 오게 하고는 나는 자동차 안에서 다리만 동동 굴렀다. 급기야 서부간선도로에서 깜빡이를 켜놓고는 빵상자를 들고 껑충껑충 뛰어내려갔다. 몇 번 나르고 있을 때 배달업체가 가져온 빵도 도착했다. 그날 난 빵 주문한 엄마에게 수도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벌써 행사는 끝이 나 아이들이 흩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모님, 바지 자크 내려왔어요" 

안양천 돌계단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나를 보며 공장장이 귓속말을 했다. 얼마나 방방 뛰어다녔는지 바지 자크가 이만큼이나 내려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내게는 정말 바지의 자크를 올릴 힘도, 남자 직원 앞에서 창피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모든 원망은 남편에게로만 향했다. 한 바퀴 돌다 못 찾겠으면 대충 내려주면 될 것을 정말 융통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사람이 밉고 또 미웠다. 그다음 해 행사는 서울대공원에서 열렸다. 그때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배달업체에 맡겼다.  

   

남편은 회사에서는 거들먹거리는 상사였지만 퇴근하고 와서는 빵집 배달부였다. 직원들이 퇴근하고 나면 나는 홀로 가게를 지켰는데 갑자기 케이크 주문이라도 들어오면 가게를 비울 수가 없어 남편에게 부탁했다. 처음 한두 번은 아무 소리도 안 하고 해 주더니 차츰 케이크나 배달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이까짓 돈 벌자고 굳이 내가 배달까지 해야 해?"

 

어쩌겠는가? 욕심 많은 마누라가 빵장사를 하고 있으니. 그렇게 투덜거리기는 해도 늘 옆에서 이리저리 도와준 남편이 없었다면 난 10 년 넘게 장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보, 그때 정말 미안하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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