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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May 22. 2024

빵집아줌마는 만능 재주꾼

나는 빵집을 열 때까지 장롱면허였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바로 큰길 옆에 있었는데 늘 자동차들이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그러니 운전대를 잡으려고 애써 마음을 다지고 나왔다가도 가슴이 떨려 그만두기 일쑤였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0년이다.  그러나 빵집을 열고나니 차를 가지고 움직여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툭하면 고장 나는 빵 기계를 고쳐 와야 했고 가정주부다 보니 집안일이 생기면 부리나케 일을 보고 와야 해서 운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딱 운전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바로 크리스마스 케이크 주문이 들어왔을 때다. 지인의 소개로 100여 개가 넘는 케이크를 목동아파트 여기저기로 배달을 해야 했는데 남편은 회사에 출근을 했고 딱히 부탁할 곳이 없어 급히 친구를 불렀다. 그런데 그 친구도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 목동은 일방통행인 데다 흩어져 있는 아파트의 입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아냐, 이쪽이 아니라 반대편이다"

"그래?"

하고 다시 찾아 나서면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돌아야 했다. 지금이야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일방통행인 목동아파트의 지리가 익숙하지 않아 바로 앞에 있는 아파트 입구를 찾느라 얼마나 돌고 돌았는지 모른다. 게다가 겨우 찾아가면 집이 비어 있었다. 케이크 주문한 사람이 연락처까지는 주지 않았던 것이다. 케이크라  문밖에 그냥 두고 올 수도 없었다. 성질이 꽤나 급한 나는 느긋하기 짝이 없는 친구와 같이 케이크 120여 개를 배달하다가 정말 속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내 연수를 했고 드디어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빵집에는 제품을 포장하는 일이 많다. 각종 행사 때마다 그럴싸하게 상품을 포장해야 해서 포장 법도 배우러 다녔다. 포장지를 몇 번 접고 리본까지 만들어 붙이면 훨씬 고급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똥손으로 배우느라 고생은 했지만 사실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니 각종 포장지와 리본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면 빵집 문을 닫은 한 밤중에 남편과 함께 고속버스터미널이나 남대문 시장에 다녀와야 했다.      

 

다른 빵집에서는 빵이나 과자에 일반 빵끈으로 묶었지만 나는 알록달록하게 리본끈으로 장식했다. 그러니 그 많은 빵을 포장하기 위해서는 가게에서 시간만 나면 그 리본끈을 만드는 것도 일이었다. 손님들은 그냥 스치고 지날 일이었지만 내게는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 대한 나의 깍듯한 마음이었다. 

    

각종 행사에 쓸 플래카드도, 가게에 붙일 포스터나 아파트에 붙일 벽보도 다 내가 만들었다. 그러니 나는 뜬금없이 POP까지 배웠다. 나는 노래나 무용 그림 등에는 정말 소질이 없다. 그런 내가 그림을 그리고 POP라는 글씨체를 배워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러니 그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문화센터에도 갔다. 처음에는 필요해서 배우기 시작했지만 차츰 재미가 붙어 자격증까지도 욕심냈다. 그러나 돈도 많이 드는 데다 또 그렇게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아  중도에 포기했다.  

   

매장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점점 직원 수를 줄이다 보니 가끔은 빵도 성형하고 도넛을 튀기는가 하면 아예 샌드위치는 내 일이 되었다. 내게는 직원들에게도 없는 제과제빵사 자격증까지 있으니 빵을 만드는 게 아주 낯선 일도 아니다.

      

내가 샌드위치를 만들 시간이라고는 그들의 휴식 시간인 식사 때나 퇴근 후였다.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마쳐야 하니 빠르게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쌓은 실력으로 빵집을 그만둔 후에도 툭하면 이곳저곳에 샌드위치를 만들어 갔다.     


이렇게 빵집을 한다는 것이 백조처럼 우아하게 카운터에 앉아 빵만 파는 것이 아니다. 아침부터 직원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겼나? 나는 늘 이런 긴장 속에 살았다.      

그러나 가슴 따뜻한 전화도 있었다. 찬바람이 가게 곳곳으로 스며드는 한 겨울, 문 닫을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때 시아버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얘, 아직도 가게에 있니? 춥다. 얼른 문 닫고 들어가“

난 한 번도 12시 전에 문을 닫은 적이 없다. 나를 믿고 한밤중에 빵을 사러오는 손님을 그냥 돌아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님의 이 따뜻한 한 마디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다정다감한 시아버지가 또 계실까? 

     

남편도 딸들도 가게에 혼자 있을 나를 걱정해주지 않았는데 우리 아버님은 그 멀리서 며느리 걱정을 하고 계셨다. 어릴 때 돌아가신 친정아버지한테도 그런 따뜻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올해로 95세가 되신 아버님은 이제는 한쪽 귀도 안 들리시고 허리는 굽어 자전거를 타지 않으시면 10 미터도 걷지 못하신다. 

"아버님 오래오래 사세요. 제가 아버님 이만큼 사랑하는 거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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